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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11-01-09 (일)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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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수난시대
머리카락 수난시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퍼머(Perm)를 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목은 붓고,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늘 이런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석 달마다 퍼머를 한다. 그것도 이십 년 단골 미용실이 있는 서울로 간다. 빠글빠글하게 볶는 옛날식은 아니고 단발머리 형태의 퍼머를 하는데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왕복으로 두어 시간 운전까지 하고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집안에서 내 별칭은 ‘대갈 장군’이다. 마른 몸에 비해 얼굴이 좀 큰데다가 머리 모양도 부풀어 있어서다. 머리숱도 많고 약간 부풀어 보이도록 퍼머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카락이 두피(頭皮)에 얌전하게 붙어 있는 것보다 속을 부풀려 풍성해 보이는 헤어스타일을 좋아한다. 머리를 감은 뒤에도 드라이어로 말리며 봉긋한 형태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방금 미용실에 다녀왔냐고 묻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상할 염려가 있어 먹는 음식과 모발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머리카락의 주성분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다. 검은색 식품이 탈모 예방이나 발모 촉진에 좋다고 하나 우유나 달걀, 육류 등의 고단백 음식과 오이나 해초류의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더 좋다. 머리카락도 나이가 들면 숱이 적고 가늘어 지며 건조하고 푸석푸석해 진다. 특히 여성은 임신이나 폐경으로 호르몬이 변하면 모낭(毛廊)의 형태도 바뀌어 머리카락도 영향을 받는다. 겨울철에는 찬바람으로 인해 건조해져 가렵거나 각질이 일어나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지속적으로 하루에 100개 이상 빠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모발은 신체 모든 부위 중에서 그 생장 속도가 빨라 한 달에 2센티미터 가량 자란다.

퍼머는 클레오파트라가 최초로 시작했다고 한다. 머리카락에 알칼리 성분이 들어 있는 나일 강의 진흙을 발라 나무 막대기에 둥글게 감고 햇볕에 말려 웨이브를 만든 것이 시초다. 이렇게 하는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니 그녀가 얼마나 외모에 치중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 뒤 이집트 상류층 여자들이 이를 따라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루이 14세 때에는 웨이브가 있는 모발을 가장 아름답게 여겨 남녀를 불문하고 둥글게 말아 올린 가발이 유행했다고 한다. 옛날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남자들이 성장(盛裝)을 하고 웨이브 가발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퍼머 기법은 1906년 독일인 칼 네슬러가 처음 실시하였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거리에 미용실을 열어 아내 카타리나의 머리카락에 수산화나트륨을 바르고 12개의 놋쇠 롤러에 머리카락을 감아 전기 장치로 달궈 굽실굽실한 퍼머 머리를 선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퍼머의 시작은 1933년 ‘오엽주’란 사람이 서울 화신 백화점에 미용실을 열어 당시 신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영화배우 이월화, 소설가 김명순, 이화학당 출신의 문마리아가 대표 인물이며, 가격도 꽤나 비싸 5~6원으로 쌀 두 가마니를 살 돈이었다. 그래서 일반 여성들은 최대한 잘게 말아 풀리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을 했으며, 용산 해방촌의 유명한 미용실은 새벽부터 몇 백 미터씩 줄을 서 있기도 했다고 한다.

퍼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직모(直毛)에 웨이브를 넣거나 곱슬머리를 곧게 펴는 것이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곱슬머리를 갖고 있는데 심한 사람은 빗질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햇빛이 강하고 더운 지역에 살게 되면 멜라닌 색소가 많아져 머리카락이 검고 두피를 보호하려 모발이 구부러지게 되는 것이다. 온화한 지역에는 갈색머리가 많으며 햇볕이 적게 쬐는 북구인들은 금발에 머리카락은 물결형이다. 황인종은 모발이 검고 곧은형이 많아 퍼머로 웨이브를 넣기도 한다.

나는 ‘롤 스트레이트’란 명칭의 퍼머를 한다. 윗부분의 머리카락은 약품을 발라 옛날 책받침처럼 생긴 길고 좁은 플라스틱판에 머리카락을 붙여 둥글게 말아 핀으로 고정시킨다. 아래쪽 머리는 잘게 말아 안쪽으로 구부려 넣는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봉긋해 보인다. 이런 작업이 몇 시간 계속 되다 보면 두피도 아프고 목도 뻣뻣하지만 멋을 내려니 참아야 한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하며 미련 없이 잘라 낸 것 같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려 빗으니 모양이 근사했다. 퍼머에 염색도 하느라 머리카락이야 좀 상하겠지만 멋쟁이 대열에 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폼생폼사 아니겠는가.

(20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