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이의민
ㆍ작성일	2010-06-22 (화) 06:17

ㆍ추천: 0 ㆍ조회: 3470

못밥
못밥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세상이 변하였다. 농사짓는 기법도 발전하여 요즘은 비닐하우스 농사로 철도 없이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벼농사도 기계화되어 못자리부터 옛날과 달리 이앙기에 맞게 묘판을 만든다. 농촌풍경인 논갈이도 구경할 수 없다. 농부의 소를 모는 소리가 탈탈거리는 경운기소리로 바뀌었다. 비료도 많이 쓰지 않고 농약고 제초제도 안 쓰는 완전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때는 못자리 할 때 고래실이나,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논을 골라 초벌갈이를 하고 못자리 풀(봄의 어린 풀)을 베어다가 고랑에 넣어 썩히면 풀에서 거름물이 나왔다. 그때 재벌 갈고 또 세벌 갈아 못자리를 만들었다. 그때는 비닐도 나오지 않아 볍씨를 물에 담가 뜨는 쭉정이는 버리고 며칠 두면 작은 싹이 텄다. 그걸 미리 만들어 놓은 못자리 논에 뿌려 벼 묘목을 키웠다.

그 시절, 모심기의 적기는 하지(夏志) 전후 3일이었다. 그때가 되면 못자리 모가 어른 손가락으로 한 뼘쯤 되게 자란다. 그걸 쪄(모를 심기 좋게 뽑아 묶어 놓는 것) 지게에 지고 미리 써레질을 해놓은 논에 군데군데 던져 심기 좋게 놓았다. 이때가 부지깽이도 한 몫 한다는 농촌에서 가장 바쁜 때다. 비라도 올라치면 더욱 바빴다. 수리조합 물이 닿는 논에는 미리 놉을 얻어놓고 품앗이꾼도 약속해놓아 많게는 20여 명 내지 적어도 10여 명 정도의 일꾼이 모여 공동작업으로 모심기를 했다.

그 시절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못줄을 잡는 일이어었다. 왜 그리 허리는 아프고 바쁜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를 심은 면적이 늘어났다. 그때도 농번기 방학이 있었지만 날짜가 맞지 않으면 꼼짝없이 결석을 해야 했었다. 하지 전후 3일이 지나면 적기를 놓치고 가물어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 (天水畓)은 서종이라고 하여 조나 수수를 심었다.

고통을 참고 참으며 못줄을 잡다가 저만치 앞에는 아버님이 지게에 지고 뒤쪽 어머님께서는 광주리에 이고 손에 주전자를 들고 못밥을 가지고 오셨다. 세상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허리를 펴고 쉴 시간이기도 하고, 하지감자를 썰어 넣고 간 고등어 토막을 내어 빨갛고 매콤하게 지진 찌개맛은 별미였다. 밥은 쌀이 십 리를 가다가 하나씩 있는 햇보리 밥이지만 고봉밥이었다. 논두렁 풀밭에 빙 둘러 앉아 그 못밥을 먹는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른들은 막걸리도 한 잔씩 들고 고봉밥 한 그릇을 다 먹고도 더 먹어 허리를 못 펼 지경이지만 한참 일을 하고 나면 쑥 내려갔다. 요즘엔 기계로 모를 심고 못밥 대신 자장면을 부르면 논배미로 배달해 주는 세상이다. 그때 못밥을 먹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모를 심고 못밥을 먹던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2010.6.5.)

못밥 : 모를 심을 때 일하다가 들에서 먹는 밥

고래실: 논바닥이 깊고 물대기에 편한 기름진 논

놉 : 식사를 제공하고 날품삯으로 부리는 일꾼

부지깽이 : 부엌 아궁이의 불을 헤적이는 막대기

품앗이 : 힘드는 일을 거들어 서로 품을 지고 갚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