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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joru?
운조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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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건물과 가옥구조
운조루 건물
 
민속자료로 지정된 '운조루'는 조선시대 대군들이 집을 지을수 있는 칸수 60칸을 넘겨 99칸짜리 집을 지은탓으로 다른 흑심이 있는 집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집 주인은 집을 짓기전에 이미 삼수(三水)로 유배되었다가 풀렸지만 뒷날 사람들은 "99칸집을 지어 반심(反心)을 품은 탓으로 귀양살이까지 했다"는 구전을 만들었다.

집을 지은 12년만에 그의 양자 아들에게 넘겨준 ≪長子區處記≫ (장자구처기)에는 이집이 78칸 집이었으나 불이나 줄행랑채(5칸) 안사랑(4칸) 남쪽행랑(4칸) 서쪽협랑(3칸) 중외사채(3칸) 아랫외사채(4칸) 협문과 중문(2칸)이 타고 다시 복구도 하고 손질도 하여 지금 남아 있는 칸수는 모두 73칸 129평이다. 담장의 길이가 동서로 165자, 남북으로 156자로 모두 710평의 집터이다.

크게 나눠 안채, 사랑채, 행낭채, 제실로 나눌수 있다. 사랑채는 큰사랑, 아랫사랑채로 나뉘고 주인은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거나 손님을 재웠다. 큰사랑채 서쪽에 세 방향이 툭트인 누마루가 있어서 여름거처로 쓰였다. 이 사랑채에 二山樓(이산루) 足閒亭(족한정) 雲鳥樓(운조루) 歸晩窩(귀만와) 등 현판이 걸려있다.

큰사랑채에 잇대 ㄱ자형으로 대문쪽으로 뻗은 아랫사랑채에도 누마루가 있고 이곳을 歸來停(귀래정)이라 한다. 아랫사랑채는 弄月軒(농월헌)이라고도 했다. 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주인이 거처하며 자식들과 며느리가 산다. 부엌과 찬칸, 곡간, 대청들이 자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행낭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남쪽 담장 대신 18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굿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 대문 동쪽으로 작은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

대문에는 옛날 '호랑이 머리뼈'를 걸어 두었지만 도둑 맞아 지금은 '말머리 뼈'로 대신하고 있다.
건축당시 이 행낭은 대문을 중심으로 각각 12칸씩이었으나 지금은 동쪽이 11칸, 서쪽이 7칸만 남아 있다.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있다. 옛날에는 신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대문 밖에 2백평 가량의 연못터가 있다.

순천대학 박익수 교수는 이집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 안채는 일반 민간집의 구조이면서 사랑채는 누마루 중심의 궁전주택 영향을 입었다.
② 행낭채가 25칸이나 되는 일자형으로 궁전주택 영향을 입은 것 같다.
③ 사랑채와 안채의 출입문을 따로 두었다.
④ 집의 규모에 비해 장식적인 의장이 적다.
 

 
운조루 가옥구조
 
운조루가 아직까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것은 명당주의 명당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지만 이 저택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역사적 유물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 고 있기 때문이다.  유이주에 의해 창 건된 운조루는 7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완공될 만큼 규모가 대단했다.  조선시대 대군 들이 지을 수 있었던 60칸을 넘어 99칸 규모였다. 일부에서는 운조루 창건 당시에는 1백칸을 넘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유이주가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79칸이라고 돼 있으나 기타 친인척들의 거처를 위해 만들어졌 던 방을 생각하면 1백칸은 족히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2백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가 노후되어 오늘날 에는 60여칸만이 전해진다.    운조루의 규모 및 구조는 조선 왕조의 양반가옥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데 호남지방에서는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 들만큼 그 규모가 웅장하다.  집의 구성은 T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중문간, 행랑채 등과 서로 연이어 있고 사당이 동북부에 있다.    
 
 구조양식은 민도리집 양식으로 집은 사랑채, 안채가 연이어 있으나 합각을 형성해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사당, 연당 등으로 돼 있고 벽은 이중으로 안팎에서 발라 외부온 도 변화에 적응하도록 되어있어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과학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문 앞으로는 도랑을 내어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연못의 흔적도 보이는데 문앞 에는 말을 묶어 두는 하마석도 있다.   지금은 도랑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넓은 연못이 있었다.  문의 형태는 솟을 문 형에다 문 위에 홍살을 세웠고 화강석의 초석위에 사각 한변 22 ㎝의 기둥을 세웠다.    문짝은 높이 303㎝,  너비 135㎝으로  원래부터 문턱은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큰 사랑채가 턱 버티고 서서 오는 이를 맞이하낟.  높이1.2 m의 축대위에 약 22㎝의 단이 있어 그 위에 세웠고 석재는 할석이다.  전국적으로 150년 이상된 30칸 이상의 고가는 19채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운조루는 건물 재료의 단단함 이나 문의 크기, 운조루에서 살았던 유씨 집안의 생활용품 등 자료가 그대로 보존돼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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