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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윤효숙
ㆍ작성일	2009-09-30 (수)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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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줄
계란 한 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나이가 들면 가끔 옛 생각을 하며 잠을 설치는 때가 있다.
난 날마다 새벽기도를 다니기 때문에 잠이 늘 부족하고, 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담감으로 자정 전에는 잠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밤 12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는 때가 있다.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내 마음은 두둥실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1학년 때로 날아가 그 시절의 추억들이 또렷이 떠오른다. 누워서 잠을 잘 때도 아스라이 파도소리를 들을 정도로 변산 해변과 가까웠던 그 곳으로 달려갔다. 아울러 항상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선생님과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유명인사라면 텔레비전의 스승 찾기 프로그램에라도 나갈 테지만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난 경찰관이시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변산초등학교에 다녔었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단발머리의 티를 아직 벗지 못한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신 처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의 고향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조그마한 방에서 자취를 하고 계신 것으로 보아 그 곳 변산이 객지인 것만은 확실했다.
평소 인정이 많고 나누기를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짚으로 정성껏 포장한 계란 한 줄을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라는 것이었다. 난 의기양양하게 계란 선물을 가지고 선생님 자취방으로 갔다.
선생님께서는 심심하셨는지, 아니면 나와 놀아주고 싶은데 마땅한 놀이 기구가 없었던지 어린 나를 데리고 민화투를 치자고 하셨다. 1학년 꼬마와 처녀 선생님이 치는 민화투! 그 생각을 하면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 뒤로도 선생님과 나는 새끼칼을 가지고 4킬로미터쯤 떨어진 변산해수욕장으로 석굴을 따러 가기도 했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정신없이 석굴을 따다보면 밀물이 들어오는 줄을 몰라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듣고 조마조마하며 석굴을 따던 기억이 생생하다.
운동회 때의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본부석 중앙에 밀가루와 사탕을 섞어놓고 어린이들로 하여금 달려가서 사탕을 찾아 먹고 오게 하는 게임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골 게임이었다. 난 처음엔 4등으로 달려갔었는데 사탕을 찾으려고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 달리기 조 친구들이 와서 툭, 툭, 치며 내가 찾은 사탕을 다 가져가 버렸다. 출발선에서 너무 빨리 출발을 시켰던 것이다. 난 그만 그 자리에서 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트려 버렸다. 본부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때 우리 선생님이 재빨리 나타나 울고 있는 나를 업고 결승선 끝까지 달려가 주셨다. 나의 기억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학년 때의 그 선생님과 변산 바닷가의 추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이 떠오른다.

어떤 교수님이 강의를 하다 쉬는 사이, 어떤 학생이 자기가 먹으려고 커피를 뽑아 왔다가 자신이 먹지 않고 교수님께 드렸다. 그 교수님도 마침 커피를 마시고 싶던 차에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커피 한 잔이 교수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다음 어느 기업체에서 성실한 학생 하나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 교수님이 제일 먼저 떠올린 학생이 바로 커피 한 잔을 대접한 그 학생이었다. 결국 그 학생은 커피 한 잔으로 직장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진심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을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신 그 교수님께 직접 들었을 때 나 또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교직에 있을 때, 학년 초 학부모 총회를 하면 이 말을 하곤 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선포하고, 선생님께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 마음의 의미를 인성교육적인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소풍을 갈 때, 저마다 자기가 먹을 간식을 싸와서 먹다가 선생님께 하나 드리면서,
“선생님 드세요.”
하며 건네는 따뜻한 마음의 제자가 있을 때, 선생님들은 감동을 받는다..
농촌에 있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인성검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 결과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대가족 어린이들의 인성지수가 대부분 95점 이상으로 나왔다. 나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저절로 생겨났던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촌지를 받는 선생님들을 처벌한다는 방송보도를 들은 일이 있다. 마땅히 봉급을 받으면서도 그 외에 무엇을 바란다면 그러한 선생님들은 먼저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법적으로 제도화시키면서까지 사회문제가 될 만큼 우리의 교육풍토가 변했나 싶어 씁쓸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눈높이를 낮춰 제자의 편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내어 놀아줄 수 있는 선생님, 학생과 사적인 시간을 내어 현장체험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의 고마움을 짚으로 정성껏 포장한 계란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었던 그 옛날이 그립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한 커피 한 잔과 계란 한 줄, 이 세상은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더욱 더 모아지고 메아리처럼 더 퍼져나가야 하지 않을까?
(2009.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