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문화유적답사회가 경남 거창군을 찾아가는 날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 말복날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더위가 만만치 않다. 아침부터 햇볕이 따갑다.
조금 이른 시각, 바쁜 걸음으로 집결 장소로 가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려 열어보니 O가 “형님, 자리 잡아 놨으니 천천히 오십시오.” 한다. “알았어, 고마워.” 응답을 한 뒤 종종걸음으로 몇 분 후에 당도했다. 반가운 그가 손을 내밀며 맞아주었다. 자리를 정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한 달 만에 만나는 회원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환하다.
여행을 할 때마다 총무와 재무는 당일 여행이 모든 회원들에게 만족감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본다. 참가하기로 약속된 회원이 제대로 왔는지 확인하는가하면 회비를 걷느라고 바쁘다.
기대와 설렘을 싣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에도 임원들은 쉴 틈이 없다. G회장은 인사를 통해 “오늘 하루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오자.”며 활기 넘치는 자신의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G재무는 오늘 수금한 액수와 지출예정인 액수를 회장에게 보고하고 나서 전 회원에게 투명하게 알려준다. O총무는 손수 작성한 견학자료들을 나눠주고 여정을 안내해준다.
친절과 운전기량에 있어 베테랑이라는 K기사가 운전을 한다. S여사는 매번 여행 때마다 정성이 가득 담긴 뜨끈한 떡을 가져온다.
목적지에 가서 보는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감미롭고 따스한 정을 느끼며 옆 사람과 담화를 나누는 동안 버스는 두 시간 남짓 달려 경남 거창에 도착했다.
첫 코스로 ‘동계고택’을 찾았다.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으로 이 집 건축물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에 대해 대강 알았지만 그 보다는 조선중기(선조 때)의 문신인 동계 정온鄭蘊이 사간, 이조참의, 대사간, 대제학, 이조참판을 지내면서 성품이 강직하여 당시의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음을 더 기억하고 싶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리 전통한옥마을이다. 덕유산 남쪽에 위치하고 청정한 개울이 마을을 안고 흐른다. 고풍스런 돌담과 한옥의 운치가 있어서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오후엔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갔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 제377호. 두 눈은 반쯤 뜨고 입에는 미소를 약간 띤 자비스런 표정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이 일대의 지명이 노혜老惠임을 미루어 노혜사 또는 금양사金陽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직 교사였던 해설사의 해박한 지식과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거창박물관에 이르렀다. 한옥 구조의 2층 건물로 2,600평의 부지에 1, 2층의 전시실과 강당, 별관, 야외전시장으로 이뤄졌다. 별관에는 시청각실, 자료실, 특별전시실, 학예연구실 등이 갖춰져 있다.
본관 2층에 대동여지도(유형문화재 제275호)가 첩시되어 있다. 실제 판목 22장을 그대로 붙여놓기 어렵기 때문에 사진으로 제작하여 실제 크기로 첩시해 놓았다. 김정호 선생이 그 중요성을 통감하고 지도를 제작한 그 안목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밖에도 조상들의 경제 산업 모습, 삶에 깃든 민속 문화예술 모습, 거창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알아보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 같았다.
오늘 마지막으로 답사할 곳은 거창사건추모공원이다. 이곳은 6•25전쟁 중 1951년 2월 9~11일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된 곳이다. 그렇게도 오지 않던 비가 우리가 추모공원을 찾으니 때맞춰 주룩주룩 온다. 천유문,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위령묘지, 역사교육관 등의 시설이 있지만, 늦은 시간에 비가 계속 오기에 견학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돌아섰다.
돌아오면서 비를 몹시 기다리는 정읍시민을 떠올렸다. 지금 오고 있는 비를 그대로 정읍으로 몰고 갈 수는 없을까? 아니, 지금 정읍에도 비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 하루를 보냈다. 우정을 확인하고 추억을 한 아름 가슴에 채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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