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연은 절묘해서 천생연분이란 따로 있나보다. 우리 집 막둥이가 이제 긴 터널 하나를 넘는 것인가.
조금은 과장된 말이지만 혼기를 놓치면 제 짝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라서, 그 동안 마음이 착잡하였다. 참한 아가씨가 있으니 한 번 맞선을 볼 거냐고 연락을 하면, 아들은 매번 전주아가씨가 먼 창원까지 시집을 오겠냐며 “제가 알아서 할게요.” 란 답변으로 엄마 입을 막아버리기 일수였다.
값이 비싼 우리 집 골동품인 막둥이를 싼값에 내 놓았으니, 좋은 규수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며 아들의 내력까지 써서 사진과 함께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도 있었다.
그렁저렁 올해도 상반기를 넘기나 했는데 아들의 전화가 왔다. 사귀고 있는 아가씨와 함께 오겠다는 전화였다. 호랑이 띠인 아들, 몸집만 호랑이만한 줄 알았더니 하는 행동 또한 현대판 손오공인가. 그렇게 허덕이더니 짝을 만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블로그에 올린 내 글을 그 아가씨가 읽었단다. 이렇게 되면 엄마도 단단히 한 몫을 한 셈인가!
빠르게 진행되는 아들의 혼사문제로 창원 가는 버스를 탔다. 딸 덕에 비행기를 탄다지만, 버스를 탄 기분이 비행기를 탄 기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들이 8년 동안이나 수도 없이 달린 길, 전주 창원 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무려 19개나 되는 터널을 만났다.
첫 번째 터널을 벗어났을 때는 햇볕이 솜털구름에 가려있었다. 제법 긴 터널을 벗어났을 때는 빗방울과 햇볕이 번갈아가며 달리는 버스와 동행했다. 그리고는 아주 긴 터널을 얼마간 달려 나가자 눈부신 풍경이 다가왔다. 어느덧 19개의 터널을 지나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터널 속에서는 햇빛은커녕 흙 한 줌,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모기조차도 만날 수 없었다. 불빛과 투지가 없다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 터널이다.
인생길이 꼭 터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의 세월과 맞서게 된다. 어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옷처럼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싫든 좋든 함께 가야하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러나 터널 그곳에 어둠과 두려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곳은 희망의 목적지를 향해 최고의 속력으로 달리는 곳,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치열한 경쟁 터, 반드시 열어야 하는 철갑문으로, 마치 보물섬의 지도를 손에 쥔 몽테크리스트 백작처럼 탈옥을 꿈꾸며 복수의 칼을 갈아 암벽을 뚫듯이, 희망의 불을 질러야 하는 곳이다. 터널을 뚫지 못한다면 산을 굽이굽이 돌아, 강을 건너고 건너도 평생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지름길을 뚫어준 값진 생명선과도 같은 터널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들아! 너는 이제 반려자를 만난 터널 하나를 지났다. 네가 오가는 전주 창원 간에도 19개나 되는 터널이 있을진대, 앞으로 가정을 이뤄가자면 또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야 할 것이다. 이젠 반려자와 동행하는 터널. 더욱 희망찬 터널을 함께 뚫어 가리라 믿는다. 터널이 없는 생활이란 제자리에 있는 거나 같다. 터널을 뚫고 지나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새롭고 너른 세계, 감동적인 절경도 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아파트 앞 동 어느 집에선가 수리를 하고 있다. 단 몇cm도 안 되는 나무판 뚫는 드릴 소리가 오늘따라 소음이 아닌, 개선행진곡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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