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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해진
ㆍ작성일	2009-04-02 (목)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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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좋은 친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해진

내게는 정말 멋진 친구가 하나 있다. 참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처음엔 이런 깊은 우정을 예감하지 못했다. 그저 늘 내 곁에 있었기에 당연히 그래야 할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그렇게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하며 지내다가 얼마 전에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1년 전 그러니까 작년 이맘 때 그 친구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신시가지로 조성된 아파트였다. 완전히 개발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터라 그 특유의 낯설음과 휑한 기운이 한참동안이나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상점이나, 아이들이 가야할 학교와 학원, 또 우리 가족이 섬겨야 할 하나님의 집인 교회까지 모든 것이 새로 선택해야 할 숙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필요했다. 전에 살던 곳에 두고 온 오랜 이웃들이 그리웠고 나는 참 외로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점들, 학교와 학원, 교회를 결정하고 또 하나둘 이웃들을 알게 되었다. 핸드폰 전화부 공간에 새로운 그룹명을 만들었고, 한 명 두 명 늘려가기 시작했다. 새로움 때문에 생기는 낯설음은 차츰 가시고, 새로움으로 인한 설렘이 생길 무렵 한 명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로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집사님이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맘을 열게 되었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것처럼 알수록 편해지는 친구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둘은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참 비슷한 감성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에 놀라고 신기해했다. 하나를 말하면 여러 개를 다 이해하는 것 같아 편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이가 들고도 나를 알아주는 진실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생긴 것에 맘을 놓고 지내던 어느 날,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지 못한 작년 겨울에 친구가 남편의 발령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참 속이 상했고 가슴이 휑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함께한 시간은 그다지 길진 않았지만 참 많이 의지하고 섬기고 나누면서 지냈었던 시간들이 아쉬웠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책상 앞에 앉아 참고서 밑에 소설책을 숨겨 놓고 읽을 때면 오빠가 들어와 한심한 사람 취급을 하곤 했다. 가끔은 책 한 권을 들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앉았다 누웠다 하루 종일 책만 보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나는 결혼할 때 어려서부터 읽고 간직했던 많은 책들을 가져왔고 그 어떤 혼수품목보다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었다. 남편은 이 책들이 모두 자신의 것이 되는 거냐며 부자가 된 듯 즐거워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신혼 때 나의 책사랑은 싸움거리가 되곤 했다. 나는 가냘픈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토록 그것이 싸움거리였는데 어느새 남편도 변하여 지금은 책을 읽다가 잠을 자곤 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 오전 시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집안 청소를 마치고, 차분히 차를 한 잔 마셨다. 나는 여유로운 시간에 책을 집어 들었다. 어쩌면 친구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더 열심히 책을 읽었다. 빈 마음을 책으로 채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 말고는 집중할 만한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다가 문득······.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관계는 번번이 유한함을 보이고 만다. 텔레비전을 통해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고나면 그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순식간에 색다른 분위기의 광고가 튀어 나오면서 당황케 하고 머릿속을 헝클어버린다. 내가 관계 맺으며 정성을 쏟았던 만남이 어느 순간 광고와 같은 재빠르고 날렵한 그 무엇의 침투로 손상되는 것을 몇 번 느꼈다. 내가 손을 뻗어 내가 펼쳐 본 그 친구는 절대로 나를 먼저 당황하게 하진 않는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 곁에 늘 변함없이 있으면서 내가 찾아가면 다정하게 맞아주었고, 내가 눈치를 보거나 감정을 맞추고자 애먹지 않아도 되며, 내가 필요한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변하기 전에는 헤어질 것에 대한 염려 같은 것도 필요가 없는 신실한 친구. 그런 친구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영락없는 좋은 친구가 아닌가. 오늘은 책꽂이에 손을 뻗어 내가 먼저 그 좋은 친구인 책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