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오거리 문화광장에서 손자 정빈이가 첫 무대에 오른다는 큰딸의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모델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키워야 하는데 허세의 꿈을 키우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두움을 가르며 호기심과 들뜬 마음으로 손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꽃바구니를 들고 만남의 장소에 도착했다. 조명이 대낮처럼 밝고 무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패션쇼라고 하면 앙드레김 패션쇼를 연상하지만 모델들의 옷이 화려하지 않고 초라해 보였다.
“정빈아, 잘 할 수 있지? 파이팅!”
할 때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로 패션쇼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제14회 환경의 날을 맞아 열리는 ‘환경문화축제 리폼 패션쇼’다. 모델 83명, 일반인63명, 유명인사 20명, 유치원·초·중·고·대학생 등, 다양한 그룹에서 선발된 모델들이었다. 해마다 폐기되는 1억 톤의 옷들을 재활용하여 패션쇼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도 폐기처분될 뻔했던 옷을 전북대, 경상대, 전주대, 용인 송담대, 건양대, 원광대학교의 패션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제작하여 새롭게 탄생된 옷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지구는 후손에게 빌려온 소중한 재산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숨 쉬는 아름다운 지구를 위해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패션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입지 않고 버려둔 옷을 소재로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리폼 패션쇼를 열게 되었습니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옷들이 대학생 디자이너 손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불어 넣은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기증받은 옷들을 새롭게 구상하고 해체하여 다시 꼼꼼한 바느질로 재탄생시킨 리폼 작품은 모두에게 즐거움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작품을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 봐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레 같은 박수 소리는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환경오염과 인구증가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앙증맞은 옷을 입고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정빈이가 무대에 올랐다. 자원 재활용을 위해 '물 사랑, 지구사랑, 환경 문화 축제'에 함께 하고 있는 손자가 대견스럽다.
세계적으로 대지의 오염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해서 환경문제에 대처하기위해 유엔회의 178개국 정부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제 협약만 받아들이고 있는 데 오늘밤 리폼 패션쇼에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지구 온도가 3℃ 정도 상승할 경우 남극대륙의 빙하가 녹아 약7m 정도 해수면 상승이 예측된다고 한다. 그럴 경우 물속에 잠기는 대륙의 면적은 약3%에 불과하지만 그 재앙은 엄청나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자원화가 이뤄지고 폐기물도 에너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패션쇼를 보면서 국제 통화기금(IMF)의 여파로 대량실업 사태가 일고 있을 때 나라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 종교계와 시민 단체에서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섰던 '아나바다 운동'이 선하게 다가왔다. 리폼 패션쇼는 봉사 정신으로 지구의 재앙을 미리 막아주는 정신이라면 아나바다 운동은 경제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쇼라고 하면 의상이 화려한 줄만 알았는데 재활로 탄생된 옷들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웠다. 난 오늘 손자 때문에 많은 것을 알았다. 손자가 자라면서 봉사하는 모델로 인격체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리폼 패션쇼를 통하여 세상에 버려지는 아이들이나 거리의 노숙자들도 빨리 사회의 일원이 되어 일했으면 좋겠다. 이제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방지에 적극 대응하고, 온 국민이 에너지절약을 실천하여 리폼 패션쇼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퍼져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2009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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