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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학
ㆍ작성일	2009-06-07 (일)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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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쓴 편지
연필로 쓴 편지
김 학

어버이날이 지나간 5월 어느 날, 우표 붙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여섯 살 난 큰손자 동현이가 보내 준 연필로 쓴 편지였다.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큰손자가 지난 설날 집에 왔을 때 한글을 줄줄 읽기에 퍽 기특하게 여겼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렇게 편지까지 보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를 씁니다. 사랑해요.

2009. 5. 8.

동현 드림

그 편지는 겨우 다섯 줄 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는 다 들어있었다. 이 편지를 받고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어떤 편지가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가? 어깨 너머로 손자의 편지를 읽은 아내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난 어버이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강의시간에 칠순의 수필가 김길남 선생께서 여섯 살 난 손자가 편지를 보내주어서 기뻤다며 손자를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은근히 부러웠다. 나에게도 여섯 살 난 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며칠 뒤 나도 큰손자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동현이가 보내 준 편지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내용이었다. 굵직굵직하고 삐뚤빼뚤 쓴 편지였지만 힘이 느껴졌다. 동현이가 이 편지를 쓰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으리라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았다. 동현이에게 편지를 쓰라고 일깨워 준 것은 큰아들내외였을 것이다. 우체국까지 데리고 가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발송하게 한 큰아들내외가 무척 고마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왜 2남 1녀 내 아이들에게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도록 가르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다. 비록 한 집에서 함께 산 까닭이었지만 생전에 어머니께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드리지 못하여 몹시 죄송스러울 뿐이다.
내가 이렇게 육필(肉筆)로 쓴 편지를 받아 본 게 얼마만이던가? 너무 오래 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육필편지가 사라지다시피 한 것은 전화와 인터넷의 발달 탓이다.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육필편지는 더 위축되었다. 또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종이편지보다는 전자편지인 e-mail을 보내는 게 훨씬 편리해졌다. 더구나 e-mail은 우표를 붙일 필요도 없고, 국경도 따지지 않으며, 거리의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않은 채 3초 안에 즉각 전달된다. 그런 세상이니 누가 종이편지를 쓰려고 할 것인가?
연필로 쓴 동현이의 편지는 우리 집의 소중한 보물이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보물들은 더 불어날 것이다. 나는 큰손자 동현이의 편지를 받고 바로 답장을 띄웠다. 간단한 내용을 컴퓨터 큰 글씨로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어제 할아버지의 편지를 잘 읽었다는 동현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내외가 동현이에게 편지글의 뜻을 보충하여 설명해 주었으리라.
이제 큰손자와 할아버지인 나 사이에는 편지글로 문통(文通)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외손자 안병현, 안병훈 형제나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의 큰아들 동윤이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동윤이는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영어로 편지를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는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려니 싶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손자는, 외손자든 친손자든, 왜 그리도 예쁜지 모르겠다. 손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맨 처음 창안한 이가 누구일까? 뒤늦게라도 그분에게 창안상이라도 드려야 할 것 같다.
(2009.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