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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서미선
ㆍ작성일	2009-12-21 (월)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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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염원
엄마의 염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서미선

"이번 아버지 제사에는 꼭 내려와야 한다."

엄마의 간절한 목소리가 자꾸만 날 따라 다니며 괴롭히고 있었다. 30여년 동안 해마다 다녀온 아버지 제사이기에 1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는 이유로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올해로 85세가 되신 엄마는 얼굴 여기저기에 검버섯이 수를 놓고 있지만 눈망울은 여전히 깊고 그윽하며, 맵시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계신다.

스무살, 나의 하루하루는 겨울날 흐릿하고 우중충한 하늘만큼이나 우울한 날들이었고 그로 인한 원망은 온전히 엄마 몫이 되었다. 대학을 갈 수 없는 현실에 전율하며 대학에도 못 보낼 거면 왜 나를 낳았느냐며 무던히도 엄마를 괴롭혔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겠다고 지금의 남편을 데리고 집에 갔을 때 "우리 딸 대학 보내주게." 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나를 낳았을 적 불혹의 나이를 넘어 중년의 문턱에 들고 보니 그 시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때는 철이 없었다라며 묻어버렸다.

겨울날씨답지 않게 맑고 화창한 토요일 오후, 엄마가 계시는 남원으로 갔다. 언제나 변함없는 정겨운 고향 마을을 보니 친구들에겐 미안했지만 내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는 언니들이 큰올케와 함께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직장에 다닌다는 핑게로, 아니 막내라는 이유로 제일 늦게 등장하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았다.

2남 2녀 중 막내인 나는 우리집 돌연변이다. 큰 오빠가 65세, 작은 오빠는 63세, 언니는 59세이다. 언니와는 15살 차이가 난다. 뒤늦게 생긴 늦둥이라 엄마는 반기지 않으셨다고 했다. 큰오빠가 군대 휴가 나와서 보니 웬 아이가 있어 며칠 가슴앓이를 했었다고 했다. 또한 나의 정체를 알려야 하는 부모님은 민망해서 말을 못하고 며칠을 고민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없었으면 어찌 했을까 몰라." 하신다.

언니들 곁에서 이것저것 참견을 하시던 엄마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오셨다. 10년 전에 사 드렸던 장롱을 여시더니(엄만 장롱이 나로 착각하시는지 매일 닦아 반짝반짝 윤이나게 해 놓고 계신다) 얼기설기 꿰매어 만든 갈색 복주머니를 꺼내 조용히 내 손에 쥐어주시며 "큰 아이 대학 등록금에 보태라.이것 주려고 꼭 오라고 했다." 하셨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친정에 데리고 갔더니 큰아이 손을 잡으시고 "네가 크면 너희 엄마 대학에 보내 줘라."하시는 게 아닌가. 그 아이가 이번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내 기분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쉽게 던진 이기적인 말 한마디가 이리도 오랜 시간동안 엄마에게 치유할 수 없는 멍에가 되어 아프게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고 아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복주머니를 열어보니 만 원짜리 신권이 발행되기 전에 사용하던 만 원짜리 큰 지폐가 십만 원씩 묶여져 있었다. 이백만 원이었다. 오빠와 언니들이 주고간 용돈을 쓰시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셨을 그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자신을 위해선 돈 한 푼 쓰지 않은 엄마 인생이 가엾고 존경스럽다.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 짐이 되기 싫다며 자식집에 며칠 머무는 것마저도 손사래를 치시며 당신 집이 제일 좋다고 하시는 우리 엄마. 맹목적인 엄마의 사랑에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져보며 큰 아이를 불러 할머니가 주신 복주머니를 열어 돈을 직접 세어보게 했다. 할머니가 너를 위해 몇년 동안 모으신 사랑과 염원이 가득 담긴 돈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의 간절한 소망만큼이나 나도 우리 아이가 정말 가슴이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어 모든이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멋진 젊은이가 되라고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