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결혼식 때의 기억들을 잊지 못한다. 백합같이 곱던 아내의 얼굴, 늠름했던 남편의 모습, 더구나 식장에서 실수한 일이 있다면 더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식장에 늦게 도착한 사연이나 드레스를 밟아 넘어졌던 일, 순서가 바뀌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 일들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이다.
나는 주례를 섰을 때의 일들을 잊지 못한다. 주례를 세 번 섰다. 그것도 모두 40대 때의 일이다. 그 중에서 제자의 주례 때 있었던 눈물의 결혼식과 초등학교 동창의 딸 결혼식 때 있었던 웃음의 주례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마 42살 때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김동준이라는 제자가 찾아왔다. 술 한 병을 들고 찾아온 제자는 결혼날짜를 잡았다는 말과 함께 나보고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고 나이가 40대 초반인 내가 주례를 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두절미하고 거절했다. “동준아! 내 나이가 몇 인데 주례를 서냐, 내 나이라면 장가갈 나이다. 너희 학과 교수님한테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제자는 막무가내였다. “선생님 저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 때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장가가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내도 해주라는 눈치였다.
주례를 승낙한 후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는 수 없이 휴일을 이용해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며 현장학습을 다녔다. 그래도 인생경험이 미천한지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례사를 쓸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서점에 가봤더니 다행히 명사들의 주례사를 모아놓은 책이 있었다. 그날부터 책에 있는 좋은 문구는 모두 다 모았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요, 집안과 집안과의 만남이고,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니 백년해로해야 한다.’ ‘장미꽃을 바치는 사람은 그 장미의 향이 자신의 손에도 묻어 같이 행복을 느낀다.’는 등등.
그리고 그날부터 주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마치 웅변대회에 나가는 사람이 원고를 외우는 것과 같이 집에서나 직장, 심지어 차안에서까지도 원고를 놓지 못했다. 그리고 3월 첫 번째 일요일 서울의 한 예식장,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신랑의 어머님이 휠체어에 앉은 채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동준이 어머니는 약국을 경영했었고 학교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어머니이셨다. 그리고 한국적인 여성의 자태에 얼굴이 참 고왔던 어머니이셨다. 그런데 오래 전에 뇌졸중으로 떨어져 힘든 생활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준비한 원고대로 하다가 순간 휠체어에 앉아있는 동준이 어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좀 더 그리우면 전화 한 통화라도 해주십시오! 저기 앉아계시는 부모님들을 보십시오. 부모님들은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꾹 참으면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사신 분들입니다.” 갑자기 주례사가 열변으로 변했다. “여러분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도 부모님을 생각해 주십시오!”
신랑 신부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복받쳐 올랐던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님이 생각나서 주례를 하다말고 눈물을 닦았다. 신부의 눈은 이미 검은 색으로 변했고 신랑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만 닦고 있었다. 그리고 신랑신부는 화장을 다시 한 뒤 다음 순서를 진행해야 했다.
그 뒤로 초등학교 동창의 딸 결혼에 또 한 번 주례를 서게 되었다. 장소는 경상북도 김천, 동창들은 여행가는 기분으로 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너는 오늘 술 먹으면 안 되니까 맨 뒷자리에 가서 앉으라.”며 관리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12시가 넘고 도착할 때쯤 되니까 배가 고팠다.
그래서 차안에 있던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있었더니 옆에 앉아있던 여자동창이 종이컵에 물을 갖다 주는 체하면서 청하(술) 한 잔을 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또 한잔, 또 한 잔. 술 한 잔 해야 말이 잘 나온다며 몇 잔을 연거푸 마시게 한 것이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고 주례를 하는데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드디어 실언을 했다. “오늘 사랑하는 OOO군과 OOO양의 백년가약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오신 피서객 여러분! 이제 두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힘차게 박수 한 번 보내 주십시오! 네, 피서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다고 웃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객 여러분!’을 ‘피서객 여러분!’이라고 두 번이나 했다는 것이다. 그해 여름에 해수욕장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피서객 여러분, 피서객 여러분!”을 입버릇처럼 했던 것이 불쑥 튀어 나왔던 모양이다. 결국 당황해서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하는 순서도 빼먹고 신랑신부를 퇴장시켰다. 식이 끝난 뒤 나에게 술을 준 여자동창은 친구들의 노리갯감이 되었다. “야, 우리가 미쳤다고 이 가을에 피서하러 김천까지 왔냐?” “술 먹인 ×는 어떻게 책임질래!” 그런 일로 많이 웃고, 재미있는 추억거리도 생겼지만 지금도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던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맘이 든다.
매년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선조님들은 어떤 지혜가 있었기에 백년해로 하면서 살았는지 알고 싶다. 칠순, 팔순잔치를 마치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가족사진을 찍는 어르신 부부의 넉넉하신 모습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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