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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윤
ㆍ작성일	2010-04-12 (월)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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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앨리스
다시 만난 앨리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윤

난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많은 인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또는 혼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하얀 토끼를 찾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옷을 입고서 시계를 보며 바삐 어디론가 가는 그 토끼를 찾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다면 참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 만난 것은 일곱 살 때, 미국 디즈니사가 만든 만화영화에서였다.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 앨리스가 하얀 토끼를 따라 굴에 빠지게 되고, 이상한 나라에 가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이 퍽 흥미로워 동화책으로 읽기 시작하여 지금도 가끔 읽는다. 얼마 전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무삭제판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무삭제판으로 읽다보면 동화에서 보다 내용이 길어 좀 지루하다. 게다가 무삭제판에는 영국 속담이며 방언 등을 이용한 말장난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영국인이 아니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참 재미있는 동화다.

오랜만에 조조할인 영화를 보았다. 개봉되기 전부터 기대에 부풀었던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였다. 난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한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그가 만들었다니 정말 금상첨화였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그러다 끝까지 보고 나면
“삶이란 그리 환상적이거나 행복하지 만은 않다.”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감독이다. 그가 감독한 ‘가위손’ ‘빅 피시’ ‘크리스마스의 악몽’ ‘초콜릿 공장의 비밀’ 등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발하고도 독특한 생각을 가진 헐리우드의 괴짜 감독으로도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를 보니 그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같은 기발함이 덜 나타난 것 같았다. 약간 실망하기도 했지만, 언니의 말로는 루이스 캐럴의 원작이 워낙 상상력이 기발한데다가 완벽해서 감독이 그 이상의 상상력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앨리스의 아름다운 금발머리와 예쁜 의상은 나의 환상을 충족시켰지만 역시 팀 버튼 감독이 만들어낸 앨리스는 동화 속에서와는 달리 그저 행복한 소녀만은 아니었다. 악몽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다크 서클이 심한 창백한 얼굴에다 생활고에 시달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위기에 빠진 상태다. 그런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던지 주변에서 서성이는 하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며 모험은 시작된다. 그곳에서 모험을 하다가 자신의 이상한 꿈이 실제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서 겪었던 일이며, 위기에 빠진 이상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여전사가 자신임을 알게 되어 이상한 나라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팀 버튼 감독도 동화를 재구성해 영화화 시키는 동안 많은 고민이 했고, 새로운 앨리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지만 내용보다는 3D 영상미를 살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하는 의도가 많았던 영화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 팀 버튼과 가장 좋아하는 동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만나서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사실 영화가 동화보단 좋지 않았다. 아마도 비슷한 예술관을 가진 팀 버튼 감독과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붙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관계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앨리스를 생각한다. 그리고 앨리스처럼 이상한나라에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쌍둥이와 노래하는 달걀 험프리덤프리, 날 웃게 만들었던 모자 장수와 5월의 토끼와 차를 마시고 싶고, 돼지 아기를 가진 공작부인과 요리 못하는 요리사를 만나고 싶다. 여왕님을 만나 크로켓 경기도 하고 싶고, 여왕에게 목이 베일까봐 흰 장미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는 카드 병사들과도 만나고 싶다. 체셔 고양이는 정말 웃을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내가 현실에서 힘든 일과 마주칠 때마다 난 생각한다.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이 세계가 정말 이상한 나라가 아닐까 하고. 앨리스가 경험한 이상한 나라가 내게는 익숙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른이 되어 앨리스를 다시 만나게 되니 참 좋았다.

(20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