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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서미선
ㆍ작성일	2010-04-16 (금)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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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지금 기초공사 중
남편은 지금 기초공사 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서미선

아들이 왔다. 아들이 오는 날은 우리 집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던 아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서둘러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니 온 집안이 음식 냄새로 점령당해 버렸다. 하룻밤 자고 나면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을 위한 남편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아침부터 토종닭을 사러 김제까지 다녀 오더니 닭볶음탕을 만들고 돼지고기 수육에다 상큼한 미나리와 시금치도 참기름ㅡㄹ 듬뿍 넣고 맛깔스럽게 무쳤다. 하루 종일 동당거리며 정신 없이 바쁘게 움직였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내의 귀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 배탈이 나면 어쩌나 싶을 만틈 끝임없이 아들의 밥그릇에 이것저것을 올려 놓고 있다.

내 어릴적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회색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걸치신 아버지의 자전거엔 언제나 늦둥이 막내딸을 위한 사과가 누런 봉투 속에 서너 개 들어 있곤 했었다. 먹을 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아버지의 외출은 내게 기다리는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새콤 달콤한 사과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온 몸으로 표현하는 나를 빙긋이 웃으며 바라 보시던 아버지. 엄마가 안 계신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손수 작은방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옹기종기 앉아 있는 나와 언니에게 후후 불며 먹여 주셨다. 그때의 아버지가 문득 남편의 모습에 겹쳐지며 그리움이 물결쳤다.

축구를 하는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았다. 왜소한 체구 탓에 시합 때마다 잦은 부상으로 수시로 병원에 다니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아들이 방학을 이용해 일주일 정도 특별 휴가를 받아오면 정형외과로,

한의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좋다는 약은 다 구해 먹이고 보살폈다. 그 덕분인지 고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키가 178cm에 체격이 건장한 아이로 자랐다.

요즘 남편은 주말이면 무척이나 바쁘다. 얼마 전부터 축구경기가 주말 리그로 전환하면서 이른 새벽부터 일상생활용품과 피로회복제, 한약 등을 꼼꼼히 챙겨서 경기도로 출발한다. 몇 시간을 달려가서 시합을 지켜보고 또다시 전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 힘들고 지치기도 하련만 남편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들과 전화통화를 시도한다. 경기에서 잘못한 부분을 세밀하게 지적해 주기도 하고 때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열심히 뛰라고 다그친다.

축구를 하는 학생들은 일반학생들보다 그 부모들이 감당해야하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감독, 코치 급여에서부터 하계, 동계 훈련비용 등 모든 것이 부모들의 몫이다. 경제적 무게가 예상밖으로 크지만 내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는 꿈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이달의 경기일정을 살펴보며 아들이 3경기에서 2골을 기록해 현재 5위라며 좋아한다. 가만히 남편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프다.

아이가 축구를 시작한 이후로 남편에게 자신은 없는 듯 보인다. 오로지 남편의 촉각은 아들에게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남편은 지금 아들이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기초공사를 다지고 있는 중이리라. 아들의 집이 완성되는 날

남편은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편이 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며 가슴벅찬 기쁨과 설렘으로 살 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