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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10-04-15 (목)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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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연어처럼
회귀한 연어처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것 같다. 지난 두 달여 동안의 일들이 하룻밤의 꿈인 듯하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나는 지금 고향 땅에 누워있다. 내가 태어난 곳, 그리고 한동안 떠나있던 곳에 다시 돌아와 고단한 몸을 길게 뉘었다. 고향으로 이사를 왔다. 마치 정해져 있는 수순을 따르는 것처럼 신속하고 걸림이 없이 진행되었다. 한 달이 지나니 살림살이들이 대충 자리를 찾았다. 이 생(生)을 마칠 때는 몸 하나만 가지고 갈 뿐이라는데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커다란 트럭도 모자라 작은 차 하나를 더 이용하여 차곡차곡 싣고 왔다.

오랫동안 멀리도 돌아서 온 것 같다. 철없는 10대 시절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청춘을 보내고 적당히 늙은 중년 아줌마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다. 그제는 선조들이 잠들어 계신 선산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자그마한 야산에도 다녀왔다. 거기엔 큰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묘소 앞에 꽃다발을 놓고 하얗고 예쁜 철망 울타리도 둘러 꽂았다. 능선에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나는 끝없는 상념에 빠져 들었다.

연어라는 어류가 있다. 북태평양에 주로 서식하며 몸에 반점이 있고 몸무게는 대략 4킬로가량 나간다. 산란기는 가을이며 봄에 부화하여 몇 주일 뒤부터 바다로 나간다. 3~4년 성숙한 뒤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회귀한다.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이 물고기는 하천에서 태어나 바다를 오가며 온갖 역경과 마주친다.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염도가 다른 물을 드나들며 삼투압 현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적응한다. 이렇게 무수한 고난을 넘기며 알을 낳기 위해 돌아 온 뒤 숨을 거둔다. 연어의 삶에 내 인생을 투영(投影)해 보았다.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를 배웠고,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웠다. 소녀에서 숙녀로, 새댁에서 아줌마로, 여러 역할을 거치며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는 남편을 따라 따스한 남쪽의 도시에 가서 살며 중년을 수필로 갈무리해 보기도 했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나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연로하여 약에 의존해 사시는 부모님은 외로웠고, 뒤늦게 찾아 본 선산은 피폐해져 있었다. 내일은 산소 정리작업을 하기로 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겨우 모시고 둘러 본 뒤 내린 결정이다. 오르고 내리는 언덕에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떼가 벗겨져 조금씩 허물어진 조부모님의 봉분에는 떼를 입힐 것이다. 이런 일을 맡기려 조상들이 나를 불러들이신 것인가.

야산(野山)의 땅을 삽으로 팠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흙의 촉감, 나는 이곳에 꽃씨를 심을 것이다. 늦봄이면 예쁜 꽃들이 큰아버지 묘소 아래서 빛날 것이다. 아래쪽 밭에는 채소도 모종을 옮겨 심어 어머니의 즐거운 외출 기회를 마련해 드리려 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고요하다. 고향 지명(地名)의 한자말 풀이 그대로 평평한 땅에 있는 내 마음도 잔잔하다. 새 생명을 낳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 회귀하는 연어처럼 고향에 나를 묻으려 한다.

(20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