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 살인 그는 그의 부모가 사십이 넘은 나이에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의 아버지 또한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거나 인색했다. 따라서 자식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늦게 얻은 아들이라서 그랬을까. 그는 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 마실을 다녔고, 장보러 가는 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시장구경을 다니기도 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갑자기 생모(生母)가 돌아가셨다. 그날 느닷없이 사람들이 몰려들고, 고소한 음식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우자 그는 신이 났다. 노란 참외 한 개를 통째로 껍질도 안 벗기고 물어뜯고 다녀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흘러내린 참외 속과 땀으로 범벅된 옷이 몸에 달라붙어 끈적이는 것이 불편했을 뿐이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엄마를 찾으며 울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태가 지나고 그에게 어머니가 생겼다. 붉은 넝쿨 장미가 피어나서 우중충하던 시멘트 담장이 환해지던 5월 어느 날이었다. 누나들이 많았지만 엄마의 정과는 달랐던지 그는 다른 자식들에 비해 어머니를 잘 따랐고, 어머니 또한 막내아들에게는 더 각별한 정을 쏟았다. 닮은 사람에게 서로 끌린다는 말이 있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 모자(母子)는 신기하게 얼굴이 참 많이 닮았다.
새색시 시절에 홀로 된 이래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그 어머니의 손은 농촌 아낙네들의 거친 손과는 달랐다. 포동포동한 살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기 손처럼 연하고 부드러웠다. 그 손으로 피를 뽑는다고 무논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손에는 벼 포기가 한 움큼씩 쥐어져 있어서 남편에게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해가 바뀌고 어머니는 어설픈 농사꾼이 되어갔다. 그리해서 그 많은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는데, 어떤 해에는 한꺼번에 세 명이 사립대학교를 다닌 적도 있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서 벼 포기가 제법 땅 맛을 알아갈 즈음이면 바쁜 농사일은 한 고비를 넘기고, 태양은 하늘을 달구기라도 하려는지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때가 되면 살갗이 익을 것 같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동네 여인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우렁이 잡이에 나섰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잡풀이 수북이 우거진 농수로 가장자리를 뒤져 우렁이를 잡아다 파는 일인데, 가을걷이가 끝나고 쌀을 사야만 돈을 만질 수 있는 그들에게 그것은 돈벌이의 쏠쏠한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일이었다. 샘이 많은 어머니 또한 뒤질세라 그들을 따라 나서곤했다. 그 돈으로, 대학 다니는 자식들의 자취방에 들여놓은 냉장고 안에 수박을 채워 주면서 어머니는 수박 속보다 더 밝게 웃었다.
그런 어머니와의 인연은 허망하게 끝났다. 어머니에게 ‘나의 어머니로 살아줘서 정말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할 참도 없이 그의 생모가 머물고 있을 그 먼 나라로 홀연히 떠나 버린 것이다. 그가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있을 즈음의 일이었다. 성하(盛夏)의 태양과 정면 승부라도 벌일 것처럼 우렁이 잡이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서모의 장례를 치르고 한 주일 후에 날아온 건강검진 결과표에 적힌 ‘고혈압 주의’ 라는 글자들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가 어머니를 많이 닮은 처녀와 결혼을 하면서 그에게 세 번째 어머니가 생겼다. 그 당시에는 직업도 변변치 않았고 부모도 없는 그를 남자 친구라고 소개하자 처녀의 어머니는 ‘사람이 참 선(善)하게 생겼다.’며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처녀가 오히려 당황스러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처녀와 결혼을 했고 장모(丈母)는 ‘성실하고 착한 사위’를 당신의 아들인 양 격의 없이 대했다. 맹물 같은 그 또한 장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소위 ‘처가 말뚝에 절하는 사위’가 되어 살았다. 늘 허기가 가시지 않던 ‘어머니’에 대한 갈증이 풀려가는 듯했다. 올해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도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두 살 터울인 아들을 낳고 몸조리도 채 끝내기 전에 장모가 또 그 먼 나라로 갔다. 그를 세상에 낳아준 생모(生母), 그를 길러 준 어머니, 그를 알아봐준 장모(丈母)와 이별하면서 ‘그와 어머니’의 인연은 끝이 났다.
아니, 그렇게 확언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는 장모가 떠난 뒤에 홀로 남은 장인과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 한 집에서 줄곧 사이좋게 살고 있는데, 만약에 장인이 새장가를 드는 날이면 또 하나의 어머니가 생길 것이다.
생모가 내리 딸 셋을 낳고 아들 하나를 얻었지만 딸을 남의 식구로 여겼던 그분은 아들이 둘은 되어야만, 이 험한 세상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덤으로(?) 딸을 둘이나 더 보태고, 일곱 번째로 얻은 귀한 아들이 그였다. 생모의 그런 선견지명이 증명되는 사건이 두 어머니 제사를 모시는 문제에서 발생했다. 그가 형에게 ‘둘째어머니 제사는 내가 모시겠다.’고 하자, 형이 거절한 모양이다. 큰 누나의 중재로 ‘둘째어머니 제사는 그냥 형네 집에서 모시되, 제수 마련은 막내가 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그의 큰 누나이다.
(2010.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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