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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10-05-30 (일)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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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호칭
그럴듯한 호칭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세상만물은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동식물과 광물을 막론하고 다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냥 사람이라고만 하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고유명사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람 아닌 짐승도 이름을 지어 부른다. 특히 개가 그렇다. 또 드러난 이름 말고 달리 이름 지어 부른 것이 호칭이다.

호칭은 참 중요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공직이나 기업체에서 부르는 계급이나 직위에 따른 호칭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어떻게 부를지 문제다. 흔히 현직 때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듣는 사람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경찰에서 경정과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경정도 서장출신은 서장이라고 부르니 문제될 게 없다. 서장으로 퇴직한 사람과 모임을 갖고 있다. 그는 나를 회장이라고 부르고 나는 그를 서장이라고 부른다. 무난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에게 현직 때 호칭 그대로 과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회장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듣기가 좋지 않다.

30여 년 전 이리경찰서 수사과장 때의 일이다. 국토관리청에 근무한 10년 넘은 고향 후배와 그 지역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기연이라서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고 노래도 많이 불렀다. 그때 호칭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를 다정하게 '용덕이!'라고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그는 나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 문제였다. 그의 누나는 나와 학교 동기이고, 그의 형은 내 조카의 친구라서 나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보니 삼촌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흔히 연장자에게 하듯 형님이라고 할 수도 없었나보다. 가장 무난한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럴듯한 호칭이었다. 선배라고 부르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 때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고향 선후배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 둘에게는 그 이상의 속정이 흘렀다. 그는 임실 운암대교 공사 현장감독을 했다. 서기관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 고향에 고택을 구입하여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하게 별장을 만들어 놓고 색소폰을 불면서 멋지게 살고 있다. 지난봄 고향 산수유 축제 때 우리 내외는 초등학교동창회에 가면서 그 집에 들러 감 아이스크림과 맨드라미꽃 차를 생전 처음 먹어보고 이리에서의 추억에 젖었다.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어떤 호칭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일단 공무원 풍의 사람에게는 ‘선생님’ 사업가 풍인 분께는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살짝 불렀더니/ 열에 열 사람 모두가 돌아보데요”
가수 현미가 부른 노래 ‘몽땅 내 사랑’의 앞 소절이다. 사장이란 호칭이 좋아서 여러 사람이 돌아보았지 싶다.

퇴직 후 15년 만에 만난 신문사 국장이 나더러 어떻게 부를 거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신문사 국장이라 남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회장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초등학교동창회장을 비롯해서 모임의 회장을 5개나 맡고 있으니 그럴법하지 않은가? 떫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웃고 싶은 생각은 덮어야겠다. 시조(時調)를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호(號)를 부른다. 옛 조상들은 역시 지혜가 뛰어난 것 같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조선 후기의 추사김정희(金正喜)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500여 개나 된다.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닠네임을 사용하기도 한다. 노인사회에서는 컴맹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이어서 좋다.

교수, 박사, 시인인 후배에게 무어라고 부르면 좋으냐고 물었다. 후배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교수 재직 시에는 교수라고 불렀고 지금은 시인이라고 부른다. 호칭은 화두에 주는 첫 번째 칭찬이다.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말의 힘 그 위력을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경찰 총경이 못되어 서장이라는 호칭을 받지 못한데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과민하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의 면장 벼슬이 좋은 것은 대통령, 장관, 도지사, 군수 다음으로 높은 벼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은 뒤에도 면장집이란 호칭이 좋아서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요란스럽다. 교통의 요지인 우리 집 옆 전주 홈플러스 네거리에서는 무대처럼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선거운동을 한다. 그냥 보기에는 멋진 가무공연(歌舞公演)이지만 따지고 보면 호칭쟁탈전(呼稱爭奪戰)이다. 무조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명함을 주고 표를 달란다. 당선된 뒤에도 '선생님'이 '여보시오'로 바뀌지 않을 사람에게 깨끗한 한 표를 던져야겠다. 좋은 호칭은 돈 힘 안들이고 호감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생님! 회장님! 선배님!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호칭 사용으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며 살아야겠다.
[2010.5.20.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