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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정원정
ㆍ작성일	2010-05-25 (화)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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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은 곱기만 했다
하늘색은 참 곱기만 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원정

4, 5년쯤 지난 일이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부엌에 나갔다. 뒷문 밖에서 자드락자드락 별난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보았더니 한 뼘이나 넓힌 베란다가 거기 있었다. 알루미늄 사시로 만들어진 사각 기둥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알루미늄 사시 기둥은 겉은 사각으로 된 쇠기둥 같지만 속은 빈 공간이다. 처마 밑 윗머리 쪽은 당연히 비어 있다. 틀림없이 그 안에 쥐가 빠진 것 같았다. 밤에 나대고 다니다 발을 헛디뎠을까 아니면 그렇게 깊은 줄 모르고 넘보다 분간 못할 깊은 수렁으로 떨어져 버렸을까. 쉬지 않고 쩔거덩쩔거덩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알루미늄 벽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듣고 있자니 좁은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쥐의 몸부림치는 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몇 년 전 그맘때 똑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사시 기둥 안에서 쥐인 듯싶은 물체가 힘을 다해 사시를 긁어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알루미늄사시 기둥 안에 있는 쥐를 살려 낼 재간은 없었다. 하루 반 절박하게 긁어 대던 소리는 사그라지더니 쥐는 캄캄한 그 속에서 영영 한 생을 조용히 마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언짢았지만 평소 쥐라고 하면 잡아서 없애는 걸로 마음에 새기고 있는 터였다. 스스로 함정에 빠진 쥐를 내팽개쳐도 크게 시쁠 게 없었다. 그 때는 그랬었다.

그동안 쥐는 어지간히 미운 짓을 한 게 아니다. 시골집이라 허드재비를 넣고 유용하게 쓰는 창고가 있었다. 부엌에 연이어 있는 창고에 쥐가 들락거리면 부엌까지도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한 두어 달 집을 비워두고 돌아오면 옷 서랍장에 죽어 말라버린 생쥐가 있기도 하고, 깨알 같은 쥐똥도 흘려 있었다. 단속을 해서 부엌은 차단이 되었지만 창고 쪽은 계속 쥐가 들락거렸다. 쥐가 들어 갈만한 데를 찾지 못해 답답한 노릇이었다. 높은 천장 밑이 의심스러워 일꾼을 시켜 손을 봐도 소용이 없었다. 하다못해 내가 나서서 창고 안에 높은 사다리를 갖다 놓고 슬레이트 지붕 밑 베니어합판 사이사이의 이음새와 벽 틈 사이를 철망으로 막았다. 벽 쪽은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질컥하게 해서 잡도리를 했지만 허사였다. 한 겨울을 지내고 나면 쥐의 흔적은 여실했다. 박스를 포개놓은 구석구석에 온갖 것 다 짓이겨 푹신하게 깔아 놓고 거기다 영락없이 쥐똥과 오줌을 묻혀 놓는 것이었다. 그러니 쥐라고 하면 성가신 동물이어서 살려 줄 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측은하게 여겨졌다. 아무리 절재(絶才)의 재주꾼인 쥐라해도 좁은 쇠기둥 속에 갇혔으니 어쩔 것인가. 저리 팔팔 뛰며 튀어나오려 해도 판세는 틀린 것이다. 못 견디게 자닝스러웠다. 사람도 대등할 적에 겨루는 거지 상대가 약세가 되면 도와주어야 하기에 저 미물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투명한 유리라면 깨서라도 살려 낼 터인데 난감했다. 갈수록 안에서 달그락대는 소리는“나 좀 살려 주세요.”하는 게 아닌가. 퍼뜩 어딘가 부스러뜨리면 될 성싶은 생각이 스쳤다. 허둥지둥 연장을 가지고 나왔다. 망치, 펜치, 장도리, 큰 드라이버를 앞에 놓고 궁리를 했다. 사시 기둥 한 면을 부수면 될까. 사시를 부수자니 쇠의 두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건 불가능했다. 생각해 낸 것이 바닥에 기둥 이음새의 턱진 시멘트바닥을 부수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기둥은 신발 벋고 드나드는 둔덕의 각진데 세워져 있다. 굳어진 시멘트를 쪼게는 작업은 어디 쉬운가. 하지만 그 방법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돌도 십 년만 보고 있으면 구멍이 뚫린다는 말이 있는데 쥐 한 마리 못 살리겠냐 싶었다. 석공처럼 드라이버와 망치를 동원해서 돌처럼 단단한 시멘트바닥을 쪼기 시작했다. 부수고 또 부쉈다. 불똥마저 튀겼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쥐가 움직인다면 긴 꼬리가 먼저 보일 것을 기대하면서……. 가까스로 구멍이 트였다.

아주 작은 구멍에 쥐 발톱일까, 이상한 게 보였다. 구멍에 든 뱀 길이는 모른다더니 긴장이 되었다. 조금 더 있는 힘을 다해 애면글면 시멘트벽을 깼다. 웬만큼 구멍이 뚫렸을 때 '아니! 이럴 수가?' 엉뚱하게도 참새머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그 예쁜 머리가……. 아까 쥐 발톱인가 했던 것은 참새 조동이었던 것이다. 더 바닥을 팠다. 이번에는 참새 머리가 삐죽이 나왔다. 똥그란 눈을 달고 내민 머리라니,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이었다. 더 파야 몸통이 수월하게 나올 수 있으려나. 머리만 내밀었다 들어가기를 연습하듯 거듭하는 것이었다. 역시 참새답게 방정을 떨었다. 시멘트 바닥을 더 파야 했다. 곱게 다져 만든 기둥 밑 집 구조는 구멍을 팔수록 볼품없이 절단되어 갔다. 참새는 몸통 반을 내밀고도 금방 나오질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고개를 내밀고 도리도리하며 살피다 구멍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푸떡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냥 날아 갈 줄 알았는데 폴딱폴딱 몇 발 뛰며 맴돌았다. 긴 시간 갇혀 있어서 날개가 굳어졌나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주변을 살피는 척하더니 넓은 하늘을 향해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숨 가쁘게 긴박했던 순간을 겪고 난 뒤끝처럼 나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부쳐 연장을 치울 힘도 없었다. 그대로 우두커니 시멘트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있었다. 흉물스레 상처로 남아있는 기둥 밑 시멘트벽의 구멍이 눈에 들어 왔다. 참새는 살아서 끝내 어디론가 날아갔다. 끝 모르게 넓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도 하늘색은 참 곱기만 했다.
(201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