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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10-06-01 (화)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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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의 생일
내가 쓴 글의 생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오늘은 음력 사월 초열흘, 내 생일이다. 내가 태어난 단기 4270년 음력 4월 10일은 양력으로는 5월 19일이었다. 생일이면 아들과 며느리, 손녀, 손자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이는 것이 통례다. 오늘은 하루 내내 아내와 단둘이서 보냈다. 지난 주말 부산에 있는 큰아들이 와서 그 집에서 요리연구가 큰며느리가 장만한 음식과 케이크로 생일잔치를 앞당겼기 때문이다. 용돈과 선물도 미리 받았다. 올해는 막둥이 내외에게서 받은 선물이 색다르다. S1 Mini. Quick Start Guide. External Hard Disk Drive다. 컴퓨터 이동식 하드웨어로 저장 용량이 120기가다. 내 컴퓨터에 있는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도 남는다.

“아버지도 이제는 이 정도는 가지고 계셔야지, USB정도로 되겠습니까?”
막둥이의 말이 감동적이어서 다이돌핀이 솟았다.

지금 이 시각 큰아들네 식구 4명은 부산에, 둘째네 식구 4명은 미국 뉴욕에, 막둥이네 식구 3명은 서울나들이 중이다. 축하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목욕탕에 들어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내가 쓰는 글의 일생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내 생일이 있듯이 내가 쓴 글도 생일이 있을 텐데 그게 언제일까? 내 열 손가락과 컴퓨터자판이 아기자기하게 눌렀다 올렸다 밀었다 당겼다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며 사랑을 속삭인다. 주제선정, 소재 모으기, 틀 짜기로 잉태가 된다. 꾸미기, 다듬기로 태교를 한다. 원고를 ‘저장’하는 시각이 생일생시라고 하면 맞겠다. 지도 교수님께 올려 행촌수필문학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출생신고를 한다. 잘된 글은 원고로 보내져 어느 월간, 격월간, 계간지 등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잡지사에서 데릴사위 삼듯 업어가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보내지기는커녕 작품집인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

나는 흥보가 아들을 낳듯 글을 써서 수필집 《노래하는 산수유 꽃》을 냈다. 제2집을 출간하려고 저장고에 들어가 보니 150편이 넘게 쌓여 있다. 그중 70편 정도를 선택해야 한다. 낌새를 알아챈 새끼들이 서로 족보에 실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제3집을 낸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할 것이다. 부모는 못난 자식이 애잔하여 더 사랑스럽다. 열 손가락을 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제2집에 실리지 못한 글도 그냥 버려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버지 어머니가 73년 전 나를 낳아주셔서 무척 고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 이렇게 되도록 마음먹고 퇴고를 한 것이 아닐 게다. 내가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듯 해서 낳은 것은 아니리라. 사랑을 하다 보니 생겼는데 산아제한도 없을 때여서 그냥 낳은 대로 길렀을 것이다. 일단 낳고 나서 유별나게 애지중지 키운 것은 확실하다. 흥보가 자식 낳듯 글을 쓸 일은 아니다. 며칠,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마음먹고 꼭 족보에 오르고 시집장가를 가서 사랑을 받고 잘 사는 자식이 되도록 생산할 일이다.
[2010.5.23.日.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