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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전성권
ㆍ작성일	2010-07-07 (수)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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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여행
혼자만의 여행

-첫 출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성권

근 한 달 전부터 집중적인 인터넷 검색 끝에 며칠 전 직거래로 중고 전문가용 카메라를 구입했다.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 카메라인가! 그날 이후 며칠동안은 카메라와 매뉴얼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매뉴얼에 나와 있는 해설이 기계치인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일반 디지털카메라도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익히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문가용이라서인지 그 기능을 매뉴얼로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 떠나자. 일단 찍어보면서 그 기능을 익히자.' 이렇게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부안군과 고창군의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새만금방조제는 오전 8시에 개방한다. 임시개통이라서 통행시간이 정해져 있다. 업무상 자주 다녀보았지만 기분이 들떠서 그날은 일찍 도착했다. 새만금방조제 입구 비응항에 도착하니 개방시간이 근 한 시간이나 남았다. 때마침 인라인스케이트마라톤이 예정되어서 주차장엔 전국에서 온 관광차가 가득하고 북적거리는 인파속에서 참가선수들은 몸풀기에 한창이었다. 어린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동호회인 듯 유니폼을 맞춰 입고 전략을 짜고 파이팅도 외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개방시간에 맞추어 방조제에 들어서니 출발선상에 부문별로 대기하고 있는 많은 참가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대단히 많은 사람들이네’혼자말을 하며 아주 천천히 달리다보니 어느새 선수들이 나를 앞지르지 않은가!

밑의 산업도로에서 올려다 본 관광도로의 인라인스케이터 행렬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이젠 제대로 된 카메라도 준비되었으니 저 멋진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까이 있는 휴게소에 주차하고 뛰다시피 언덕으로 올라갔다. 행사진행요원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몇 몇 카메라맨들은 아예 도로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달려오는 선수들을 향해 연실 셔터를 눌러댔다. 선수들에게 손 한 번 흔들라고 주문하면서 말이다. 나도 그 틈에 끼어서 폼을 잡고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렌즈를 대충 놀려가며 초점을 잡은 것 같은데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매뉴얼을 보며 카메라기능을 공부한다고 뒤둑박죽으로 맞춰 놓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폼을 잡고 카메라맨들 사이에 끼어들었으니 그냥 나올 수는 없고 대충 찍은 척하고 차로 달려와 매뉴얼을 펴고 기능공부를 다시 했다. 해결되었다 싶어 다시 올라갔을 땐 이미 선두그룹은 다 지나가고 거의 후반부 그룹들만 보였다. 그런데 내 눈엔 선수들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진작가인 듯한 사람들의 카메라만 눈에 들어왔다. 내 카메라가 제법 좋은 줄 알았는데 다들 대단한 카메라만 가지고 있었다. 렌즈도 티비에 나오는 기자나 파파라치들이 쓰는 렌즈들이었다. 복장도 그럴 듯하고 다들 모자를 뒤로 돌려썼으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양복바지에 슬리퍼를 싣고 남방셔츠 하나만 걸친 내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카메라가 아니라 자세부터가 다른 것 같아 내 자신에 웃음이 나왔다.

이 다음엔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전문사진작가처럼 보여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경치에 취해 달리다보니 어느덧 격포 채석강에 도착했다. 채석강이야 얼마 전에 다녀간 곳이지만 오늘은 그럴듯한 카메라를 둘러메고 갖은 폼을 다 잡고 다시 왔다. 해변가로 가기 전 해송숲에 앉아 매뉴얼을 꺼내들고 다시 한 번 정독을 했다. '이젠 실수하지 말아야지.' 멋진 광경을 앞에 두고 낭패를 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기능 하나 읽고서 옆에 있는 들꽃들을 찍어 보고 다른 기능을 읽어보고 풍경을 찍어보면서 말이다. 누가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기능을 하나씩 알아가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직 서투르지만 웬만히 찍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채석강에 다다르니 등산화를 신고 카메라르 둘러 멘 내 모습이 꽤 그럴 듯해 보였다. 카메라를 이렇게도 메 보고 손에 들고 다니기도 하며 걸었다. 어느덧 자연의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넓게 펼쳐진 푸르른 바다 한 가운데에 서보기도 하고 전 국민이 먹고도 남을 만큼 층층이 쌓인 떡시루를 엎어 놓은 듯한 채석강의 절벽에 매달려 보기도 했다. 건전지 하나가 다 닳도록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한 무리의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을 엿듣자니 격포 채석강은 퇴적암이라고 했다. 또 지나가는 광광객들의 말을 빌리자면 동해안이 너무 멋지지만 격포에 오니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이어서 좋단다. 막상 첫 출사라고 생각해서인지 자연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풍경 하나하나가 몹시 아름답고 조화로웠다. 얼마나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던지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다. 해송숲 너머 슈퍼에 들러 음료수 한 병을 사고서 음식점을 기웃거리다 말고 남쪽으로 향했다.

채석강과 멀지 않은 곳에 솔섬이란 작은 무인도가 있다. 솔섬은 육지와 거의 접해있는 아주 작은 무인도로 섬 중앙에 소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간조시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린다. 사진작가들에게 솔섬은 제법 유명한 것 같다. 솔섬 소나무에 걸친 석양이 아주 황홀하단다. 내가 도착한 건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인지라 소나무에 걸친 석양은 볼 수 없어도 물이 많이 빠져서 바닷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일단 같은 자리에서 간조 만조 석양의 모습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친구끼리 웃어가며 연신 호미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살아가는 맛이 느껴져서 한 분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고서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다.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니 멋진 풍경들이 많았다. 배가 고파서인지 바지락칼국수네 백합죽이네 하는 음식점들이 많았지만 왠지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자는 생각에 남쪽으로 달렸다. 어느덧 부안군을 지나 고창군 부안면에 이르렀다. 부안군은 뭐고 부안면은 또 뭐지? 군 경계지점에서 부안군은 안녕히 가라하고 고창군은 환영한다 하였는데 다시 부안면이라니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지도를 펴보며 달리다 보니 미당시문학관이란 안내판이 나왔다. 넓은 부지에 아담한 현대식 건물의 시문학관이었다. 폐교 부지에 시문학관을 지었다 한다. 초보시인이긴 하지만 문인으로서 한 번쯤 오고 싶었던 곳이다.

미당 서정주시인은 우리 고장 출신의 너무도 큰 시인이긴 하지만 전시되어 있는 친일작품 등을 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미당 시인은 해방 이후에는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하였으며, 여러 대학에서 후배양성과 한국문학의 큰 흐름을 완성하기 위해 큰 업적을 남기셨다.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편안한 곳이었다.

계획된 일정을 다 돌아보고픈 마음에 시간을 재촉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인터넷 블로그에 이색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구시포해수욕장에 다다랐다. 해수욕장 안에서 자동차 몇 대가 달리고 있고 모래사장 끝쪽으로는 텐트도 몇 개 보였다. 모래사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해안선을 따라 말이 달리고 있지 않은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멋진 광경인지라 서둘러 주차하고 카메라를 챙겨 모래사장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또 셔터가 눌러지지 않지 뭔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상이 없었다. 서둘러 건전지를 바꾸고 돌아오니 말은 아주 멀리 달아나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낭패다 싶어 나도 모래사장을 달려 말 가까이 다가가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재생모드로 보니 제법 잘 잡은 것 같았다. 첫 출사에서 작품 하나를 건진 느낌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혼자 여행이라 끼니때를 넘겨 힘이 없고 지쳤지만 님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 편했다.

반드시 다음 코스에 도착하기 전 식사를 해야지 하고 달리다보니 어느덧 청보리학원농장이었다. 명칭이야 어떻든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보리밭이 풍족해 보였다. 휴일이라서 연인들도 많고 카메라를 둘레멘 사람들도 많았다. 저마다 사진찍기에 바빴다. 보리 수확 후엔 곧바로 메밀을 심을 예정이니 가을에 메밀꽃을 구경하러 오라는 안내말이 나왔다. 풍요로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고서 야외 그늘막에서 보리비빔밤을 먹었다.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보았던 메밀꽃 필 무렵의 포스터가 보였다. 강원도 평창에서 촬영했겠지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귀가길을 서두르며 고창IC로 향하던 길에 무장면이란 곳에 이르니 무장현 관아와 읍성이란 이정표가 보였다. 혼자만의 여행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성은 무너지고 진무루란 남쪽 성문과 관아만 남아 있었으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음직한 큰 나무들과 일렬로 세워져 있는 공적비가 인상적이었다. 진무루에 역사인물들의 현판이 걸려있다는 안내판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한 자 한 자 새겨 볼 여유가 없었지만 대부분 한시가 걸려있는 것 같아 나중에 다시 시간을 내어 알아보아야지 생각하고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날 첫 출사의 작품들을 컴퓨터에 옮기고 괜찮다 싶은 몇 장의 사진을 카페에 올려놓았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찍은 사진들인데 반응이 썩 좋지가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진구도가 정면사진만 있고 앞의 모래사장이 너무 많고 하늘이 적게 잡혀 답답하단다. 그야말로 왕초보 카메라맨으로서 카메라 기능조차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나간 첫 출사작품이 오직하랴 싶었다. 그날 이후 서점에서 사진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샀고,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서 사진관련 내용만 보고 있다. 사진관련 정보를 알기 전에는 카메라로 찍기만하면 사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어렵고 공부할 것이 많았다.

혼자만의 여행. 혼자서 정해 놓은 일정인지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허기지고 참으로 벅찬 일정이었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고 혼자만의 여유와 멋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하루였다.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생각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만의 생활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비참해하기까지 한다. 이 세상에 혼자 나왔고, 혼자서 책임지고 인생을 살다가 결국 혼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던가? 내 직업상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사람들로부터 받는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속 깊은 말을 나누고 누구를 원망하란 말인가.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고 앞으로도 오래토록 해야 할 일인데 말이다. 앞으로 그러한 나에게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 자신과 대화하하기 위해서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모처럼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보니 참 좋았다. 앞으로 혼자 여행을 자주 가야겠다.

(2010년 5월 첫 출사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