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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양영아
ㆍ작성일	2010-06-30 (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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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들의 하소연
말벌들의 하소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양영아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우리가 이 동네 사람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해를 끼쳐 본 일이 없다. 우리가 나쁜 짓도 안했는데 이게 무슨 물벼락이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 인심도 야박하지. 아무리 무허가라고 이 넓은 공간에 조금 발 붙여 살아보려고 했던 게 이처럼 큰 죄란 말인가. 우리가 이 집을 짓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데 이건 말도 아니다. 방 한 칸 한 칸마다 육각형을 만들어 가면서 우리의 소망을 엮어가기 위해 흐르는 땀을 웃음으로 닦아냈었다. 온 동네 나무로 퇴! 퇴! 침을 발라가며 한 켜 한 켜 멋진 무늬 벽을 만들면서 우리의 사랑을 엮었다. 우린 화염병도 만들 줄 모른다. 더군다나 투척할 수도 없는 우리에게 119소방대원의 물대포가 웬 말이냐. 함께 울고 웃던 내 형제 친척들이 모두 죽어갔다. 하늘은 아직도 파란데 우리네는 반항 한 번 못한 채 붉은 울음 꺼이꺼이 삼키며 죽어가고 있다.
작년 추석날, 우리 집 지붕 위에서 죽어가며 울부짖던 말벌들의 하소연이 이명(耳鳴)으로 들리는 것 같다.

성묘를 다녀오자마자 아이들이 지붕 위에서 발견한 배구공만한 말벌 집! 수 십 마리의 말벌들이 윙윙대며 드나드는 모습은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산소 벌초하러 간 사람들이 간간이 벌에 쏘여 죽기도 한다는 그 말벌이었기 때문이다.

신고한 지 10여분 후 119소방차가 도착했다. 불도 안 났는데 웬 소방차냐며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긴 사다리가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원들은 소방차에서 긴 호스를 풀어냈다. 호스를 통해 흘러나온 물은 ‘쉬시식’ 소리와 함께 물대포로 돌변하여 말벌 집을 공격했다. 수압이 엄청났다. TV에서 본 119대원들은 불로 벌집을 태워 떼어냈었는데 물대포라니…….

우린 안전을 위해 비겁하게도 차속에서 구경을 했다. 당황한 말벌들이 하늘에 현란한 그림을 그리며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린 말벌 집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잔인한 살상 방조자들이 되었다. 말벌집의 일부가 찢겨져 튕겨 나갔다. 이제 더 이상 멋진 배구공의 모습은 아니었다. 망가지는 벌집을 보니 무허가 건물에서 살던 사람들의 강제철거 장면이 떠올랐다.

남의 땅일망정 무허가 건물을 지어 가족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도시빈민들. 결코 정당화 될 수도 없는 일이기에 허물어진 건물더미 옆에서 낙담과 허탈에 빠진 그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우리의 가슴은 아리기만 했다. 도시 정화와 균형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도시빈민들과 맞서야 하는 행정당국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의 불협화음은 때론 끈질긴 싸움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화염병과 시너가 동원되는 폭력으로 변한 것일까? 타협보다는 우선 집단행동부터 하고 보자는 이기적인 사회풍토! 이 땅의 상류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바쁜 시위 양상을 보면 더더욱 눈살이 찌푸려진다.

무허가 문제만 힘든 게 아니다. 미분양 아파트가 남아도는 데도 재건축이니 재개발이니 하면서 오래된 주택가들을 정비하려고 한다. 도시발전을 위해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하는 건 좋다. 그러나 살고 있던 소규모 주택 소유자들은 보상금이 적어 거리에 내몰리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들의 땅을 가져간다면 가족들과 함께 하늘을 가리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은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가 살던 집은 없어지고 그 땅위에 20층 30층 아파트를 짓는다! 그러나 정작 땅 주인은 반반한 전셋집도 구할 수 없게 된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찰 노릇인가! 대기업 건축업자들이 조금 양보해서 서민들의 가슴이 퍼렇게 멍드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 건가?

한참 만에 벌집은 지붕에서 떨어져 나갔다. 소방대원들은 임무를 마치고 우리의 조그만 사례도 마다하고 그냥 돌아갔다. 물세례에 죽어간 벌들의 시체가 현관 앞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이튿날 지붕을 올려다보는데 저걸 어쩌나. 그렇게 센 물대포를 쏘아댔건만 찢겨진 벌집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아닌가. 말벌 잔당들이 남아 언제 복수를 하려고 공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119를 또다시 부르기도 미안하고 벌들의 활동도 잦아든 것 같아 그냥 내년까지 두고 보기로 했다.

화사한 봄이 돌아왔다. 복수초가 먼저 봄소식을 전하고 비단결 같은 노란 잎을 접었다. 개나리와 영춘화도 앙증맞은 꽃들을 가지마다 매달고 지나가는 바람과 그네를 탔다. 노루귀도 그 작은 몸짓으로 봄을 노래한다. 향기 그윽한 매화꽃도 만발했다. 꽃의 향연이 시작된 것이다. 나비와 꿀벌들이 꽃의 향기에 매료되어 즐겁게 날아다닌다. 그러나 우려했던 말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겨울 혼자 남은 여왕말벌은 새로 태어날 알들을 잔뜩 품고서 어디에서 잠을 잘까? 이제 곧 말벌 후손들은 화려한 꽃의 향연에 초대 받은 손님이 되어 세련된 몸짓으로 날갯짓을 하리라. 또 어느 곳엔가 더 안락하고 멋진 아방궁을 지어 놓고서 말이다.

(2010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