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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노행우
ㆍ작성일	2010-09-01 (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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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험
어떤 실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노행우

이맘때쯤 되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초여름날 밤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의 농촌은 전기가 특선과 일반선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공장이나 방앗간은 특선이, 가정에는 일반선이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아예 전기를 쓰지 않아 등잔불과 호롱불로 밤을 밝히며 살던 시절이었다.
일반선은 계절에 따라 들어오는 시간이 달랐지만 나가는 시간은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소리와 동시에 불이 꺼졌다. 그나마 당시의 전기는 하룻밤에도 예고 없이 수시로 정전이 되어 방안에는 항상 등잔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었다.
그날도 초저녁에 잠깐 전기가 들어왔다가 정전이 되어 등잔불을 켜고 책상에서 3학년인 형과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두워 글씨가 겨우 보일정도였다. 책받침을 노트 밑에 받치고 쓰면 글씨가 또렷하게 잘 써졌다. 우리는 숙제를 하다말고, 책받침이 불에 타는지 안타는지 내기를 하였다. 결국 우리는 실험을 해 보기로 하였다. 책받침은 불에 닿기가 무섭게 찌지직~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방안에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로 가득하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서울여행에서 사 오신 뿔 책받침이었다. 색깔도 붉고 알록달록하여 화려했고, 두꺼웠다. 우리 반에서 가장 좋은 최신형 책받침을 사용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새것이었다.
다행히 방안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방안의 연기를 내보내려고 양쪽 문을 열고 바깥쪽을 향해 정신없이 부채질을 하였다. 그러나 채 5분도 못되어 아버지의 기척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두려워서 컴컴한 마루 밑으로 숨었다. 아버지가 방문 앞에 이르러 '아니, 이게 무슨 냄새냐, 이놈들이 불장난을 했구나.' 하시면서 우리를 불렀지만, 우리는 대답도 않고 더 깊숙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아버지에게 들켰고, 호통소리에 밖으로 끌려 나왔다. 아버지는 “불장난으로 집이 불타면 우리는 모두 거지가 된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빗자루로 사정없이 때렸다. 울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의 우는 소리를 듣고 옆방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와 아버지를 말렸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급기야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때리려면 나를 때려라!”고 하시며 말리니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물러났다. 우리는 할아버지 덕에 더 이상 맞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구세주였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방으로 데려가 장롱 속에 숨겨둔 사탕을 몇 개 꺼내 나누어 주시며 달래주셨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아끼신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 뒤로 아버지께 혼날 일이 있거나 사탕생각이 나면 우리는 할아버지 방에서 놀았다. 그렇게 든든했던 할아버지는 그 일이 있은 뒤 1년쯤 지난 어느 추운 겨울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옛날 일이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201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