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가다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꿈속의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만지고 싶고, 냄새를 맡고 싶고, 안아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꿈속에서 난 친정에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늘 익숙하던 풍경이었다. 정원 금잔디 밭 한 가운데 우리 강아지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난 왜 이제야 만나나 하며 강아지를 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마치 멀리 시집간 친구를 1년에 한 번 만날 때의 기분이었다. 이렇게 맘을 먹으면 쉽게 만나는 것을, 난 왜 이리 그리워만하고 있었나? 하지만 그렇게 기뻐하면서도 맘 한 구석이 허전했다. 그렇다, 그건 꿈이었던 것이다. 무의식의 한 부분에서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고,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강아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난 4년 동안 단 하루도 강아지를 잊은 적이 없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생각하는 횟수도, 슬퍼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물을 보거나, 어떤 상황에 놓일 때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려 글을 써 보려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려 실패하곤 했었다. 내가 수필창작반에 들어와 처음 쓴 글은 ‘내 꿈속을 찾아온 강아지’라는 글이다. 난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서 일부러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울지 않겠지 하고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는데, 부끄럽게도 너무 울고 말았다. 아직도 슬픈 맘은 여전하다. 하지만 어젯밤 내 꿈을 찾아온 강아지를 보고, 눈물을 참고서 강아지를 추억하고자 컴퓨터를 켰다.
우리 강아지는 10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살다 떠났다. 흔히 말하는 잡종 강아지였지만 누가 봐도 예쁘고 영리했다. 강아지들이 물어뜯기 좋아한다는 신발을 옆에 놔도 단 한 번도 뜯지 않았고, 스타킹과 양말이 바람에 날려 강아지 옆에 놓여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아지는 그것이 주인의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새들과 도둑고양이들을 보면 사납게 짖어 쫓아내고서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돌아오곤 했었다. 자신의 밥값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듯이. 강아지가 떠나자마자 우리 집 마당엔 도둑고양이와 새들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럴 때 가장 강아지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어젯밤 꿈에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다섯 자매들이 모두 나왔다. 가끔 내 꿈속에 나타나는 강아지는 슬퍼 보이기도 하고, 늘 활기찼던 귀여운 모습이기도 하고, 나와 놀기도 하고, 어쩔 땐 날 외면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나 혼자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젯밤 꿈속에선 나 혼자가 아니었다. 언니들과 나 그리고 동생들이 나타났다. 강아지가 금잔디 밭 한 가운데 앉아있고, 우리들은 강아지 곁에 눕거나 앉아서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봄볕에 강아지의 금색 얼룩무늬가 빛나고 있었다. 난 너무 기뻐하다가 꿈인 것을 알았다. 눈을 떠보니 꿈속에서 흘리던 눈물이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강아지의 냄새, 느낌,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그대로 생각난다. 그 느낌이 잊힐까 두렵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병원도 데려가지 않았고, 말로만 귀여워했지 정작 해준 게 없다. 그러나 강아지는 노여워하지 않고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위로를 남기고 떠났다.
전주로 이사 온 뒤, 매일 친정에 간다. 강아지가 곧잘 뛰쳐나오곤 했던 골목길, 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맞아주던 모습, 거산황궁아파트에서도 잘 보이는 강아지와 산책했던 학산, 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강아지 집을 매일 바라본다. 예전에는 그것들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 일부러 외면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아지가 그리울 때면 사진도 보고, 함께 걸었던 길을 걷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힘들고 허전하다.
강아지가 떠나기 전까진 난 별 고민도 없이, 늘 삶에 대해 기고만장했었다. 그러나 강아지가 떠난 뒤, 늘 맘이 쓸쓸하다. 그리고 그 기고만장하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며, 텔레비전에서 잘 다루는 유령이란 존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아있을 땐 어느 누구보다 소중했을 존재를 죽음이란 경계로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그냥 경건한 맘으로 추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나의 삶에 감사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혹시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게 되거나 혹은 내가 떠나게 되면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조금 흐트러지려 하면, 또는 세상을 미워하게 되면 강아지는 내 꿈을 찾아오곤 한다. 강아지는 힘들어하는 내게 귀여운 모습과 행동으로 위로해 주었고, 한편 미안함을 안겨 주고 떠나갔다.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는 내 수호천사가 되어 늘 내 곁을 지켜줄 것이다.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우리 강아지를 나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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