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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신팔복
ㆍ작성일	2010-09-25 (토)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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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 낚시
갯바위 낚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신팔복

아파트 베란다에서 짭조름한 갯냄새가 풍겨온다. 우리 집에서 이렇게 많은 갯냄새를 맡아보기란 처음 있는 일이다.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 앞 바다에서 뜯어온 청각을 말리는 냄새다.

며칠 전 갯바위 낚시를 갔었다. 바다낚시를 하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기에 후배의 차를 타고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 확 트인 해안에는 바닷물이 출썩출썩 밀려나가고 있었다. 드러난 갯바위에 서서 새우 미끼를 꽂아 낚시를 휙 던졌다. 출렁거리는 바다에서 붉은 찌가 흔들거리며 파도를 타고 꼿꼿이 서있었다. 낚싯대를 잡은 손에 힘이 주어지고 눈은 찌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큰물고기가 낚여 올라오기를 기대하면서…….

멈출 줄 모르는 파도는 연신 발아래 갯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철썩하고 부서지더니 하얀 물거품과 함께 쫘르르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곤 했었다. 나가는 썰물은 거센 밀물에 비해 여자같이 얌전했다. 해는 중천에 솟아있었다. 물고기는 낚이지 않고 지루하고 나른한 시간만 흘러갔다. 계속 새우미끼만 축이 났다. 황토 흙에 버무린 밑밥도 주어보았지만 그게 그거였다. 봄에 왔을 땐 상당히 큰놈으로 열 마리도 넘게 잡아서 내가 장원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입질이 무척 약하고 끌어당겨 봐도 빈 낚시만 올라와 허탈감만 더했다. 아무래도 날을 잘 못 잡은 것 같았다. 손맛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입맛을 생각하랴. 별수 없이 맨 소주를 마셨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기대만큼 잘 풀리는 날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물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낚시를 걷어 놓고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은 언제나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어서 좋다. 저 너머 작은 섬에 터를 잡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아래쪽 위도와 위쪽 선유도의 섬들이 바다 끝을 막고 있어 내 앞에 펼쳐진 너른 바다는 하나의 큰 호수인 양 보인다.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바다에는 배들이 두둥실 떠있어 낭만적인 풍경이다. 수출품을 잔뜩 실은 상선은 유유히 흘러가고 깃발을 펄럭거리는 어선은 뒤뚱뒤뚱 지나가며 호들갑을 떤다.

물이 빠진 너른 바위에 청정해역에서만 자란다는 청각이 새파랗게 돋아 있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청각을 따서 검정 비닐봉투에 담았다. 보드라우면서 촉촉한 청각은 짠맛이 느껴졌다. 김장할 때 청각을 넣으면 김치의 신선함이 유지된다고 하니 가을 김장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땄다. 남해안에서 청각을 양식하는 어촌사람들이 양념에 무친 청각을 밥에 비벼 맛있게 먹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바다 향을 입에 가득 넣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청각으로 자식도 가르쳤고, 육지에 집도 사 주었으며, 지금껏 먹고 살았다며 환하게 웃는 노부부의 주름진 얼굴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청각은 그들에게 깊은 삶의 끈이 되어 있었다. 갯바위에는 여러 가지 바다생물이 살고 있다. 불가사리 ․ 따개비 ․ 성게 ․ 바다고동 ․ 말미잘 등이 있고, 파래 ․ 청각 ․ 톳 등의 부착식물도 있다. 또한 물웅덩이에 남아 있던 작은 고기들이 내 발소리에 놀라 촐랑대며 숨는 모습도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낚시를 던졌다. 곧추서서 출렁대는 찌를 또다시 바라보았다. 거센 파도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바위를 철썩 때리고 와르르 쏟아져 나갔다. 낚시 줄이 휘돌아 나가는 물에 떠내려가고 파도는 바위를 할퀼 것 같이 사나워졌다. 자꾸만 뒤로 물러서며 낚시를 던져보았다. 나는 벌써 높은 바위로 올라와 있었다.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 떠있던 찌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 낚였을까 하고 낚시를 들어 올렸다. 낚시 끝에 물고기의 몸부림이 느껴졌다. 틀림없이 한 마리 잡았구나 하고 조심조심 끌어당겼다. 아기 손바닥만한 은빛 감성돔이 낚시에 매달려 파닥거렸다. 갯바위 뒤로 들어 올려 손으로 잡고 낚시를 뽑으려 하니 입을 뻐금거리며 놀란 눈망울이 동그랗다. 어쩌다 내게 왔는가. 물 밖의 세상,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내 덕에 보게 될 것이라며 안쓰러워지는 마음을 반전시켰다. 조심하여 낚시를 뽑으려 했지만 입속에 깊이 박혀 있어 처리하기 힘들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굽어진 라디오 벤치로 여지없이 낚시를 뽑아내고 바구니에 담았다. 어찌됐든 나는 다행히도 한 수 했으니 서운함은 면했다.

벌써 갯바위가 바닷물에 잠겨 지고 있었다. 퇴로가 막히면 조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왈칵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파도는 더욱 거세지고 철썩철썩 바위를 때리고 나갔다. 그러나 갯바위는 묵묵히 파도를 견디고 있었다. 청각과 낚시를 챙겨 사자바위를 돌아서 바쁜 걸음으로 나왔다. 지금도 바람을 타고 너풀거리는 갈매기의 노래 소리와 멈추지 않고 출렁거리는 파도소리가 교향곡처럼 귓전을 맴돈다. 갯냄새는 바람을 타고 아파트 거실을 맴돌다 사라진다.
(2010.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