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는 게 고달프고 옛날이 그리울 때마다 부르기만 해도 저절로 눈물샘이 터지는 이름입니다. 오늘은 아내와 두 아들이 마련한 생일밥상을 앞에서 불현듯, 어머니께서 생일 날마다 끓여 주시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이 그리워서 또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어머니’라는 세 글자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솟구칠까요? 곰곰 생각해보니 앉으나 서나 자식걱정과 하늘나라로 소풍 떠나신 외할머니의 임종을 못한 일로 가슴앓이를 하시며 눈물짓는 어머니의 눈물샘을 닮았나 봅니다.
어머니, 한국전쟁으로 온 세상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외아들인 농부의 무녀리로 태어나 당신의 빈 젖가슴을 물고 배가 고파서 칭얼대던 철부지가 어느새 이순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텃밭에서 보내고, 젊은 날은 도시에서 삶의 무게에 눌려서 낑낑거리며 지금까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때로는 모진 가난을 원망하며,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 자궁 속으로 다시 돌아가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커다란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제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저는 지천명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와 중환자실에서 살을 부대끼면서 비로소 당신의 자리가 가없는 바다 같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부모님의 소중함도 새까맣게 잊은 채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게 자식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만 알고 바보처럼 살아 온 세월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우실 텐데, 자식 걱정과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신 외할머니의 임종을 못하신 일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십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날이 갈수록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어머니의 허리가 굽어 가시는 모습에 가슴앓이를 하며 자꾸만 눈물짓는 답니다. 그리고 올 추석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께서 은행나무골에 다녀오시다가 트럭을 피하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서 크게 다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행여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알리지도 않고 시골에 있는 병원을 다니셨더군요.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외출혈 후유증에다가 타박상까지 심하게 입으셔서 오랫동안 고생하실 것 같습니다. 어느덧 꽃다운 청춘은 사라지고 그 곱던 자태는 고향 은행나무골의 허리 굽은 노송처럼 앙상한 나뭇가지로 남아 계신 어머니, 그동안 당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사랑의 열매를 따 먹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무게가 두 어깨를 아무리 짓눌러도 자식 앞에서 눈물 한 번 내 비친 적이 없으셨던 어머니셨습니다. 그렇게 강인하셨던 어머니께서 자꾸만 당신의 잘못으로 자식들을 고생시킨다는 말을 되풀이하시거나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고 푸념하실 때마다 제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듯합니다. 게다가 올 추석부터는 걸음걸이가 불편하셔서 외할머니께 성묘도 못가시겠다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외할머니를 더욱 그리워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지으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외할머니로만 여겼던 그분이 늘 가슴 절절하게 그리시는 어머니의 소중한 어머니이셨습니다. 어머니, 이제부터는 외할머니를 어머니의 어머니로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실지 걱정입니다. 청빈한 농부인 외아들과 결혼해서 외할머니와 똑같이 4남 2녀를 슬하에 두어, 자손이 귀한 우리 집안의 대를 튼튼하게 잇고 자수성가의 주춧돌을 놓으신 것만으로도 어머니가 자랑스럽습니다. 어머니께서 걸어오신 발자취를 저희들 6남매가 본받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어느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만약에 하늘이,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 그 천년을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위해 바치겠습니다.”라고 맹세하렵니다. 그리고 걸음걸이가 불편하셔서 외할머니께 성묘도 못 가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천국에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를 얻으셔서 모녀상봉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편지를 띄워야겠습니다. 그러니 외할머니께서 휴가를 받아 어머니를 찾아오시는 날, 외할머니께서 생전처럼 즐겨 잡수시도록 따뜻한 인절미를 만들어 주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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