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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윤효숙
ㆍ작성일	2010-09-29 (수)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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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비밀
거문도의 비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 창작반 수요반 윤효숙

“내가 도(島)자 들어가는 데를 다시 가는가 봐라.”
어떤 여행객의 푸념을 들으며 뱃멀미를 하지 않으려고 찬송가를 부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파도를 보면 더 심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보았다.
“뚜우, 뚜우”
뱃고동을 울리며 나로항을 출발하자마자 좌우로 흔들리는 모양이 영 심상치 않았다. 식당에서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에 울릉도에 갔을 땐 관광사측에서 사장님이 직접 동행하여 멀미약을 권하며 주의사항을 알려주어 별 어려움 없이 잘 다녀왔다. 올해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무방비상태로 배에 오른 우리는 처음부터 시작된 뱃멀미에 얼굴들이 하얘졌다.
해마다 한 번씩 교인들끼리 내가 속한 에스더회를 주축으로 2박 3일의 수련회 겸 여행을 한다. 지지난해 제주도에 다녀왔을 때까지는 한 번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좋았던 그 느낌 때문에 지난해는 울릉도와 독도를 약속하게 되었다. 가정과 교회의 봉사에 피곤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행으로 모두 풀어졌다. 밤의 기도회에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새 힘을 얻는 큰 기쁨을 체험하였다. 울릉도에 이어 올해엔 거문도를 택하게 되었다.
뱃멀미로 머리는 띵하고 아무 의욕이 없었지만 밤 8시까지 넓은 방에 집합하라고 하니 연세 많으신 어르신도 한 분도 반대하지 않고 모두 모였다. 두 시간에 걸친 기도회에도 지치기는커녕 아픈 머리도 다 회복되었다.
새벽시간을 이용해 해변을 따라 바위에서 그동안 쌓였던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버리고 바다를 향해 외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은 10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분은 각자 포즈를 잡으며 기분 내기에 한창이었다. 백도취항은 파도로 어렵다고 하여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향했다. 육지로 나갈 배시간이 빠듯하여 산등성이까지는 봉고차로 이동하였다. 맑고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망망대해에 우뚝 서있는 하얀 등대! 여기까지 와서 비록 백도에는 갈 수 없지만 동백과 이름 모를 나무들로 어우러진 숲길이 있어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뱃길에서는 미리 멀미약으로 무장하여 한 숨 자고 나니 바로 나로항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통영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미리 준비한 찬양곡에 맞추어 찬양과 율동으로 몸을 풀며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노래방 노래의 가사들은 경쾌한 노래도 있지만 슬픔과 외로움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노래하며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그분의 눈물에 동화되어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에는 슬픔의 눈물만이 아닌 감사의 눈물도 있고, 기쁨의 눈물도 있다. 저 분의 눈물은 그 중의 어떤 눈물일까 생각해 보았다. 알고 보니 33세에 남편을 잃고 3남매를 홀로 키우며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본 슬픔의 눈물이었다. 다른 분들도 몇 분 눈물을 보이는 분이 계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 중에 혼자 사시는 분이 몇 분 계셨다. 가족들과의 여행이 아닌 동료와의 여행에서 오는 감동의 눈물일까 아니면 노래가사가 자기의 처지와 맞아서였을까? 여러 가지로 마음이 착잡하였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노래방의 노래로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찬양곡을 할 때나 들을 때 흘리는 눈물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인간의 편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어서 좋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으로 꽉 채워졌다면 이런 때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울러 연약한 우리들이기에 때로는 그런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고 이해되었다. 이런 때 내가 어떻게 지도해야 좋을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날 저녁 남일대해수욕장 해수찜질방의 꼭대기 층에 우리 방이 마련되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거사를 계획해 놓으셨다. 주위에 다른 여행객은 없고 우리가 독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오늘 낮에 대중가요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분들 다 나오세요.”
나도 모르게 담대한 말이 튀어 나왔다.
“지금 이 시간 실컷 우시면서 하나님께 외로움, 슬픔, 다 없애주시라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찬양하시면서는 우시되 적어도 대중가요를 부르면서는 울지 마세요.”
우리는 그날 밤 뜨겁게 기도하면서 슬픔 대신 기쁨을, 외로움 대신 충만한 행복감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서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내년 다시 제주도를 기약하면서 한 번의 단기 행사에 그치기로 했던 에스더 여행수련회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눈길과 눈길 속에 반짝이는 기쁨의 교감은 언제나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것이다. 이번 거문도를 다녀온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고, 깊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케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과연 거문도의 비밀은 무엇일까?
(2010. 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