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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소영
ㆍ작성일	2010-10-24 (일)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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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기억
죽음에 대한 기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 소 영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시고모님의 손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받았다. 멀리 대구에 사는데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집안 행사에서만 만났기에 키가 큰 청년 정도로만 기억되는 젊은이였다. 시어머니는 엊그제 청첩장을 받았다며 혀를 차셨다. 집을 장만하느라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꿈꾸며 웨딩드레스를 준비했을 가엾은 신부의 처지가 가슴이 저리도록 안쓰러웠다. 소복을 입혀 집안의 며느리로 인정할 수도 없으니 어른들의 고민이 컸을 것이다.

내가 죽음을 가까이서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10년 이상 중증 치매로 엄마와 가족들의 인격을 끊임없이 시험하시던 할머니가 너무나 평온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3일간 잠들어 계시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나셨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축복 받은 죽음이라고 했다. 간간이 영정 앞에서 큰 소리로 곡을 하다가 눈물을 닦고 돌아서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고모들의 모습이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바쁜 농사철에 엄마가 논일을 하느라 살피지 못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옷을 엉망으로 버려놓았다. 어쩌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런 할머니를 씻겨야 할 때면 나는 어린아이를 혼내듯 할머니를 야단치며 속상해하고 짜증을 냈다.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는 앞뒤 사정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에게 소홀히 한 것은 용납하지 않던 소문난 효자였다. 맘 놓고 외출도 못하던 엄마의 서글픈 인생을 지켜보면서 내 사춘기는 엄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런 와중에도 엄마를 도와 돌봐야 할 다섯 명의 어린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가시덩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 덩굴의 일부가 걷히는 그래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계기일 뿐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 친구로부터 서울에 살며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남자친구를 소개받았다. 낯 선 서울 생활에 도움이 되라는 당부 때문이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감으로 날 챙겨주던 고마운 친구였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거나 의지하지 못하는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이성교제는 한낱 사치로 여겨질 만큼 분주한 일상을 살았다. 이성을 향한 핑크빛감정이 솟아날 만큼 여유롭고 편안하질 못했다. 간혹 감정이 싹틀라치면 나는 명쾌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그 친구는 조금 씩 조금 씩 이성으로 날 보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적당한 거리를 변함없이 유지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성친구보다도 더 편안한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보게 된 한 신문사의 입사시험에 합격했다. 그토록 벗어나려 애쓰던 고향 전주로 난 다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문사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 당시 내 영혼은 고단하던 서울생활과 다시 맞닥뜨린 가족에 대한 연민과 책임으로 지쳐 었다. 그런 영혼에 남편은 조금씩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한 해가 가고 서울도 친구도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갈 무렵 그 친구가 충청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 오가는 길에 꼭 한 번 들르라는 신신당부에 늦가을 어느 날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질투가 만큼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웃어주던 그의 아내와 아장아장 걷던 예쁜 아기, 버섯을 넣어 끓인 맑은 된장국과 갓 구워낸 바삭한 김 그리고 몇 가지 나물반찬이 맛깔스럽던 정성스런 밥상, 쭈그려 앉으면 몸이 가려질 정도로만 지푸라기로 엮은 문이 앞을 가려주던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꼭 다시 만나자던 마지막 인사……. 그리고 얼마 후에 인천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호사 교육을 받던 동생이 있어서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당부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그 친구의 존재마저 서서히 잊어 갈 때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과를 개업한지 한 해 후였다. 그가 떠난 지 이미 몇 해가 지났다.

내게 가장 시리고 다사다난하던 7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연락하지 않아도 만나지 못해도 마음 한 쪽이 든든하고 따뜻한 진짜 친구가 떠나 버렸다. 그의 아내와 아이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다. 내 큰아이가 고3이니까 그의 아이는 지금쯤 대학을 다니거나 군대생활을 할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담담해졌을까.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속에서 문득문득 아직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와 더불어 살고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말이 다시 한 번 서글픔으로 마음을 짓누르는 밤이다. 지금 대구의 하늘 아래서 짝을 잃은 슬픔에 망연자실할 가엾은 신부와 평생의 보람을 잃게 된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밝은 세월이 찾아들기를 바란다. 세월이 약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슬픔이 오히려 그들을 더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를……. 상실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변함없이 다가오고 사라지고 또 다가오는 세월에 의지해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