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동네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딴 곳이었다. 해묵은 먹감나무 사십여 그루가 고만고만하게 서있을 뿐, 팔풍받이 밭이었다. 그곳에 집 한 채를 짓게 되었다. 건축도급업자는 놉을 사서 집지을 자리에 기초공사로 넓은 통구덩이를 판판하게 파게하고 그 한가운데에 더 깊이 구덩이를 파게 했다. 지하실을 마련할 자리였던 것이다.
일꾼들은 의아해 했다.
“무슨 장사꾼도, 그렇다고 농사꾼도 아니면서 천구백여 평의 넓은 땅을 놓아두고 괘꽝스레 지하실을 만들까. 별 비밀창고로 쓰려나보네!”
누군가의 말이 동네방네로 퍼졌다. 1983년, 그 마을엔 벽돌집 한 채 없었다. 비포장도로를 택시로 들어가자면 자갈길에서 어찌나 차가 뛰던지 사람도 함께 뛰었다. 그곳 주민들은, 돈 벌이도 없는 궁촌에다 집을 짓는 게 가량없이 생돈을 들이는 걸로 생각했을까. 심지어 누군가는 혹시 간첩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개코쥐코 수군거렸다는 것이다.
입으로 하는 말은 넓은 치맛자락으로도 못 막는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 무렵 서울 집에 난데없는 한 사내가 찾아 왔었다. 서울시경 정보과에서 왔다며 자기 신분을 밝히고 아무개가 누구냐고 묻고, 시골에 집을 짓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돈을 펑펑 쓰면서 집을 짓는 게 수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차 나왔노라고 했다.
25평 조금 넘은 가옥 하나 지으면서 무슨 돈을 그리 펑펑 썼겠는가마는, 그 시절 시골사람 눈에는 도시인의 소비는 괴이하고, 시골에선 별로 필요치도 않은 지하실까지 만든 것이 수상쩍었던 것이다. 그 집은 처음부터 그렇게 탈도 많고 흠도 많았다. 집이 완공되고 보니 시멘트를 많이 쓴 것 외에는 어디고 제대로 된 곳이 없었다. 땅도 토박해서 나무 말고는 채소나 밭곡식은 잘되지 않았다. 원래 냇가 돌무지인 것을 모르고 매입했던 것이다. 그러니 풀매기도 억세게 힘겨웠다. 그래도 사람을 순화시키는 흙과 사귀며, 몇 마리 닭을 쳤다.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였다. 화초와 과일나무와 텃밭을 오밀조밀 일구는 재미도 있었다. 긴긴 세월, 내 깜냥대로 상머슴이 되어 잘도 살았다.
난방 구조도 아궁이를 지하실에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아궁이가 내 키의 높이에 있었다. 그러니 바닥에 있는 땔감을 아궁이에 넣으려면 손회목도 어깨도 허리도 굽혔다 폈다하며 군불을 지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땐 아궁이 아가리와 맞먹는 두께의 무거운 통나무를 화목으로 그 높은 아궁이에 밀어 넣기도 했다. 새경도 없이 실머슴마냥 줄기차게 화부노릇을 했다.
집을 지을 때 방 둘만 구들방을 만들었을 뿐 거실, 부엌은 맨 마루여서 겨울에는 냉기로 움츠리고 지냈다. 십여 년 뒤, 기름보일러로 바꾸기까지 그랬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지 못한 때여서 시골에는 가끔 한 번씩 왕래할 때였다. 어느 날 오랜만에 타향같은 빈 집에 와보니 부엌 한쪽 벽면의 타이르가 와르르 바닥에 다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불기 없이 집을 비워 놓은 게 탈이었다. 벽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 그럴 수 있는 건지…….
또 언젠가 와보니 이미 부엌마루 바닥이 점점 가라앉고 있어서 심각했다. 집 지을 때 바닥아래 벽 쪽에 바람구멍을 만들지 않아서 습기로 판자가 썩어가고 있었다. 만약 바닥이 주저앉으면 싱크대, 가스레인지도 함께 주저앉을 판이다. 난감했다. 반의 반쪽짜리 베니어합판을 사다 우선 위험한 곳을 억지로 메우며 잡도리를 하는데, 누굴 불러 올 수도 없고 정말 울고 싶었다. 자국눈이 살짝 내린 추운 아침나절이었다. 바람구멍은 날이 해동한 다음 일꾼을 시켜 뒷손을 봤다.
봄이 오면 밤에 앞산 어디쯤에서 무시로 소쩍새가 울었고, 겨울밤엔 부엉이가 간간이 울었다. 저녁나절 해가 설핏 기울면 가슴 시리게 외로움이 덮쳤지만 나 혼자의 홀가분한 시간이 용케 받쳐주었다. 바람이 성난 밤엔 집 둘레 수 십 그루의 우거진 나무 사이로 씽씽 지나는 바람소리가 귀신 소리인 듯 괴성으로 들렸다. 이슥한 밤엔 빈 울안이 소슬했지만 끝끝내 정붙이고 살아야 했다. 누구와도 벗할 사람 하나 없는 펀한 외딴 집에서 이러구러 여부없이 혼자 살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작은 아들이 와서 하는 말이
"어머니, 저만 해도 여기서 혼자 살라하면 못 살아요.”
그만큼 호젓하고 외로워 보였던 게다. 그런데도 나는 왜 줄기차게 그 집에서 정을 붙이고 살았을까. 몸은 고단해도 자연에 묻혀 사는 게 좋았다. 자연은 항상 나를 품어주며 따스했으니까. 척박한 땅이지만 호미 한 자루 들고 흙을 만질 때면 소곤대는 울림이 있었다. 땅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치유해주는 힘이 깃들어 있는 듯, 무언의 속내를 수굿이 털어 놓아도 뒤탈이 없었다.
겨울이면 산 밑의 그 동네는 웬 눈이 그리도 하염없이 펑펑 쏟아졌던지, 엄청 쌓인 눈 때문에 사람도 차도 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천지간에 나 혼자였다. 대빗자루를 들고 넓은 울안의 안뜰에서 대문 밖까지 눈을 쓸어야 했다. 등에 땀이 촉촉이 젖도록 치우다보면 눈은 야트막한 언덕이 만들어진다. 가운데는 사람 하나 지날 수 있는 오솔길마냥 길게 길이 났다. 그 자리가 왜 그리 적막이 감돌던지, 가까운 산과 들녘까지 하얗게 슬퍼 보였다.
날이면 날마다 날이 새면 푸서리 텃밭으로 나가는 게 일과였다. 무엇에 홀리듯 어슴새벽으로도 나갔으니 마치 지신(地神)이라도 있다면 귀신이 은연중에 나를 밭으로 끌어내는 것 같았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 터에서 무슨 소출이 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색이라도 내는 양 한동안은 그렇게 흙에 묻혀 살았다.
공지사항
문화 류씨 이야기
운조루 11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