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그땐 그랬었지
60년 전, 그땐 그랬었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원정
어제까지 궂은 날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침안개도 걷힌 지금,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햇살만 가득히 아파트 단지에 어우러져 있다.
최OO! 오늘 아침 비로소 알게 된 이름이다. 60년 전 그때의 상황은 미래의 꿈도 재회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름일랑 외우지 못했다. 아니면 경황없이 살아오면서 그때의 후배였던 한 청년의 이름을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른다.
“이메일을 언제 보실지 모르지만 이렇게 메일을 씁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였지요. 장르가 수필이라서 선생님의 삶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제가 찾는 분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 아버지가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정 선생님……. 6.25당시 서울에서 고향으로 피난하시면서 같이 동반하셨던 학교 및 동향후배 최OO을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그 최OO의 작은 아들입니다. 그 최OO이 이 세상을 뜨시기 전 (시한부 삶을 사시는 건 아닙니다. ) 정 선생님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하십니다.
(중략) 기다리겠습니다.”
최OO, 그의 이름은 잊었지만 지난 많은 세월동안 퍽이나 잊을 수 없는 청년이었다. 진한 인상으로 남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한 번 만나보고도 싶었다. 그때 나이는 스무 살쯤이었을까. 지금 내 생각에는 그가 수염이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소탈한 청년이었다. 내 나이보다 두어 살 아래인 그는 성품이 너볏해서 여간 편했으련만 편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극한상황이나 다름 아닌 긴박한 나날이었으니까.
6‧25가 터진 그때, 마지막 저녁 남행열차를 놓친 우리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동향의 남자와 여자 두 사람씩, 넷이 걸어서 서울을 빠져 나왔다. 그때 남학생 한 사람이 그였다.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인 다른 두 사람은 나와 동기생이었고 그 후배만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사지(死地)를 몇 차례 넘나들며 동지애를 갖고 우리는 10여 일을 걸었다. 7월 초순의 뙤약볕 아래 하루 칠십 리, 백 리 길을 걸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숨 막히게 더웠다. 끝없이 이어진 신작로의 지열은 불덩이를 땅 밑에 묻어둔 것처럼 뜨거웠다. 위에서 내리쏟는 불볕은 지상의 모든 것을 태우려는 기세였다. 길섶에 초목들이 시들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나는 유독 발바닥에 물집이 이중 삼중으로 부풀려져 마치 걸레처럼 너덜거렸지만 눈물을 머금고 일행의 걸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목숨을 건 도보였다.
하루 종일 무엇에 쫓기듯 걷는 칠팔십 리 길은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산 넘고 호젓한 사랫길을 지나 간신히 밤에 경계선을 넘어 이제는 살겠다하고 허술한 농가에서 하룻밤 묶고 나면 아침에는 밤새 진군한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허망하게 후퇴한 아군은 흔적도 없었다. 헐수할수없이 어느 날은 인민군이 끄는 소달구지 대열에 끼어 걷는 때도 있었다. 그들과 섞여 길을 걷긴 했지만 그들이 몹시 무섭고 긴장되었다.
어디쯤이었을까. 한 부리부리하게 생긴 인민군이, 남다르게 눈썹이 짙은 후배학생을 눈 여겨 보았을까. 다가가서 몇 마디 주고받더니“너 군경이지?”느닷없이 총구를 후배 학생의 턱 밑 목에 대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엊그제 우리 눈앞에서 사람을 사살한 것을 본 뒤였다, 군경이면 무조건 죽이는 것으로 알았으니까. 그때 소문에 군경은 평소 이마에 모자 쓴 자국과 손에 총잡은 굳은살을 보고 사람을 잡아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총을 들이댈 때 우리는 간이 콩알 만하게 조였다.
그런데 용케 위기를 모면했다.
“아닙니다.”하며 학생증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 학생증이 실은 여학생인 내 것이었다. 후배는 신입생으로 미쳐 학생증을 마련하지 못했었다. 마침 내 이름이 남자 이름으로도 통용될 수 있었기에 사진만 후배의 것을 붙이고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인 나야 어떠랴 싶었고 남자는 조사가 심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선뜻 학생증을 빌려 주었었다. 아슬아슬한 대목을 잘 넘긴 기억이 새롭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우리 모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날마다 쉴 틈도 없이 땡볕아래 언틀먼틀한 자갈길 아니면 외진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재 너머 사방에선 대포소리와 따발총소리가 쉬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수없이 총알이 스치는 괴상한 소리도 꼭 우리를 겨눈 총알인 듯 몸서리가 처졌다. 오래된 일이라 어령칙한데 어느 밤엔 두 남학생은 보릿대 깔린 남의 집 허청에서 잠을 잤다고도 했다. 어느 다붓한 계곡 양지바른 곳에는 전사한 병사의 무덤인 듯 도도록이 흙을 쌓고 그 위에 나무토막 세워 철모를 걸쳐 놓은 처량한 풍경도 눈물겨웠다. 충청도 어느 호젓한 산모퉁이를 지날 적엔 시신들의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 긴 산길을 겨우 겨우 숨을 고르며 지나왔다. 그곳에서 전투가 치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양쪽 산에 군인들의 시신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고 했다. 어디선가는 미처 동료 시신을 묻어주지도 못하고 후퇴한 흔적이 여실했다. 군화를 신은 발목 한쪽이 흙 위에 나와 있는 처참한 현장을 차마 쳐다보기가 무서웠다. 덩치가 큰 말들도 총에 맞았을까. 엄청 큰 몸뚱이가 나뒹굴기도 했다.
우리 일행도 어디서 어떻게 위협을 당할지 절박한 상황에서 산촌 어디에선가 해가 저물어 뉘 집 초가 마당에 들어섰다. 하룻밤 묶어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우리는 장거리를 걷는 동안 지쳐있기도 했지만 밤마다 사로잠을 잤을 테니 그 품새들이 허름했으리라. 더욱 땀에 젖은 몰골이 오죽했을까. 한 사람도 아닌 네 사람임에도 고맙게 우리를 방까지 내 주고 끼니까지 챙겨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밤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장대비가 쉬지 않아 염치불구하고 우리 넷은 그대로 사흘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끼니마다 보리고봉밥과 하지감자 찌개를 그리도 푸짐하게 대접해 주었다. 우리는 그 집 주인의 따뜻한 배려를 잊을 길이 없다.
“내 자식들도 서울에 있으니 같은 처지일 거라고…….”하며 티 없이 잘 대해 주었다. 산등성이에 있는 그 집에서 본 아래 먼 신작로에는 트럭이 미군 폭격으로 꼬꾸라져 있었고, 주변이 언제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이 살풍경하였다. 끄덕하면 그 산촌까지 미군비행기에서 쏘아대는 기총사격 소리가 요란해서 살아 있어도 마음은 조릿조릿했다. 그 집 마루에 앉아 주룩주룩 쏟아지는 작달비 저 너머 앞산과 농로를 바라보며, 언제 전라도 내 고향까지 갈까 싶어 망연히 풀이 죽어 바라본 기억이 새롭다.
그땐 살아서 좋은 세상 만나리라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살아오면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 게 그 집 주소라도 적어오지 못한 것이 불쑥불쑥 후회스러웠다.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퍽이나 오래 가슴에 남았었다. 날이 갠 뒤 그 집을 뒤로하고 다시 며칠을 걸었다. 어느 지역이었을까. 경계선을 겨우 넘었다. 대전인지 거기는 그때까지 열차가 운행되고 있었으니, 딴 세상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고학생 신세로 항상 궁색한 처지여서 여비가 없었다. 듬직한 그 후배는 선선히 내 차표를 끊어주었다. 하루 걸을 몫을 열차에 의지한 행운은 그 후배의 덕이었다. 무사히 정읍까지 올 뻔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우리 앞에서 이리역(익산역)을 미군 비행기가 오판으로 폭격하는 바람에 어쩌지 못하고 열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김제 어디선가 뿔뿔이 헤어졌다. 그 뒤 그 후배와는 60년의 시공간을 서로가 무소식으로 지나 왔다.
세월이 까마득히 지난 날, 말을 지긋이 아끼며 틀거지가 듬직했던 한 청년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순수하고 곱디고운 모습들은 시간의 궤적 속으로 날려버린 지금, 그때 그 시절이 그립고 그때 그 사람이 어리비친다. 말년이 다 되어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머리 하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그려진다. 60년의 심원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내 이름을 까맣게 잊을 법도 한데, 나를 찾아준 그 마음이 그지없이 고맙다.
(201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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