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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소영
ㆍ작성일	2010-11-25 (목)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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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사랑
고슴도치 사랑
-뒤늦게 쓴 육아일기 : 첫아들 이야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소영

To Mom
항상 바쁘신 생활 속에서도 저희 3남매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신 엄마! 저는 엄마의 그런 사랑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즐겁지 만은 않은 학교생활도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서 잘 버텨냅니다. 그런데 왜 집에만 오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버릇없고 철없는 아들로 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하루 종일 밖에 나가있는 아들의 투정인지 모르겠어요. 번번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버릇없는 제 태도를 원망하곤 해요.

요즘 제가 2학년이 되면서 부쩍 더 커진 엄마 아빠의 기대를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워요. 형편없는 성적표를 집에 가져가야 하는 날에는 실망하실 부모님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워져요. 그래도 제가 제 나름대로 항상 노력한다는 건 알아주세요.

전 집에 있을 때에도 그다지 좋은 형이나 오빠가 되지 못해서 그것도 너무 죄송합니다. 동생과 항상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지만 나이 차이가 있고 저도 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앞으로 노력할게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까지 2년을 남겨두고 있네요. 이제 2학년이 됐으니 저도 학업에 더 열중하고 정신적으로도 한층 더 성숙한 첫 아들이 될게요.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제가 엄마 생신 축하 편지에 제 변명만 늘어놓은 게 아닌가 싶네요. 항상 감사드리고 사랑해요.♡ 못쓴 글씨는 너그럽게 봐주세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첫아들 올림.
2009. 3. 13.

며칠 뒤에 큰 아이가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아들의 편지를 꺼내 읽어 보았다. 약속대로 아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적어도 내 눈에는 근사한 아이로 성장했다. 한 번씩 안아주려면 발뒤꿈치를 들고 서서 어깨와 팔을 높이 들어 올려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라 했던가. 참으로 정확한 말이다. 내 아들은 나를 가르치고 키운 스승이다.

나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들이 있다. 바로 아래 동생과는 한 살 터울이고 그 밑으로 모두 두 살 터울이다. 바깥 일로 항상 바쁘시던 아버지와 농사일을 맡아 하신 엄마 덕택에 동생들 돌보기는 내 몫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나는 항상 아기를 업거나 동생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포대기로 동생을 둘러업기만 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번 써먹은 이후엔 더 이상 통하지도 않았고 짜증을 냈다가는 대나무 빗자루로 얻어맞기 십상이었다. 가끔 친구가 놀러 오면 영리한 동생들은 미리 대문 앞에서 줄을 서서 대기했다. 내가 나가면 따라가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지역행사에 자주 참석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어쩌다 인근 초등학교 운동회라도 구경을 가려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계획을 세워야 했다. 동생들이 알면 나는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아기들을 예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아기들을 봐도 나는 무덤덤했다. 예쁘다는 생각이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아기 돌보기에 질렸다.

그러나 내 아이로 인해 나는 달라졌다. 거의 하루 내내 이어진 진통 끝에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게 된 순간부터 나에게 세상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엄마의 역할은 내가 사랑하고 즐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아내, 딸, 며느리, 친구, 선생님, 그 어떤 역할도 그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해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 자신은 없어도 좋았다. 세상의 모든 아기엄마들이 친구로 여겨졌다. 내 아이가 사랑스러운 만큼 눈에 띄는 모든 아기들이 소중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커갈수록 아이는 예민하고 고집 세고 꾀 많은 개구쟁이였다. 안으려 할수록 가시를 세워 어미를 아프게 하는 고슴도치 같았다. 아들 키우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나는 온 몸과 마음으로 배워야 했다. 18개월쯤에 아이는 벌써 의사소통이 될 만큼 말이 빨랐다. 동네 아기 엄마들이 영재인 것 같으니 검사를 받아 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힘이 들었다. 아이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요구가 많았다. 오죽하면 임신 중에 한 잔씩 커피를 마셨던 일을 후회했을까. 조용히 집에서 태교나 할 걸 만삭 전까지 학원에서 큰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도 후회스러웠다. 아이는 너무 일찍 뱃속에서부터 세상을 알고 나온 것 같았다. 고집 피우는 것이 너무 얄미워 한 번은 빗자루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려 주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은 찢어졌다. 그런데 맙소사,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활짝 웃으면서 엄마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는 그렇게 낙천적이어서 또한 날 울고 웃게 만들었다.

세 들어 살던 집 주인 아주머니는 화초들을 애지중지 날마다 매만지며 키우던 분이셨다. 한 해 내내 기다려서 보게 된 화분의 꽃이며 열매를 어느 날 아이가 모조리 따버렸다. 얼마나 미안하고 난처했던가. 빨간 열매가 달린 화분 하나를 사드리고 나서도 다시 열매가 열리고 꽃이 필 때까지 마음 편히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었다. 다섯 살 때쯤 처음으로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면서 동네 가게로 심부름을 보냈다. 올 시간이 되었는데 아이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골목에 나가 보았다. 아이가 오고 있는데 입 주변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는 하수구에 돈을 빠트려서 한 참을 찾다가 왔다고 했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분홍색 아이스 바는 어떻게 사먹었는지 물어 보았다. 내 손을 끌고 돈을 잃어버린 하수구 위치로 데려가던 아이가 그때서야 실토를 했다. 빨갛게 물든 입을 하고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백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 따끔하게 말로 야단을 치고 그냥 넘어가 주었다.

밝고 낙천적이고 수다스러울 만큼 말을 잘해서 아이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왁자한 웃음이 피어났다. 둘 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우리 부부에게서 그토록 밝고 활달한 아이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아이는 밤마다 실수를 했다. 처음엔 너무 힘차게 노느라 피곤해서 밤에 일어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일부러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밤중에 아이를 깨워 볼 일을 보게 했다. 그런데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아이의 이부자리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을 텐데 기저귀를 채울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몇 번 무섭게 혼을 내서 습관을 고쳐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병원과 한의원에서 약을 가져다 먹여도 소용없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아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안쓰러웠다. 행여 아이가 그로인해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아침이면 제일 먼저 아이의 방으로 가 소리 없이 깨끗하게 이부자리를 갈아주고 씻겨서 새 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남편에게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

활달한 아이여서 학교 다니는 내내 반장을 도맡았기 때문에 더 고민이 따랐다. 간부 수련회나 캠프, 수학여행을 가면 나와 아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밀 통화를 나누었다. 저녁 일찍 먹고 절대 물이나 음료수 마시면 안 된다. 피곤하게 몰두해서 놀지 마라. 좀 늦게 잠자리에 들어라.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라. 혹시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알아서 잘 처리해라 했더니, 잘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돌아온 아이가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런데도 아이는 낙천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갔다. 어느 누구도 아이의 비밀을 모를 정도로 여전히 쾌활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부모를 닮았더라면 아이는 마음의 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쯤 그 증상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곤 한다. 아침마다 당연한 일과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대해 주길 참 잘한 거라고. 나는 보기보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다. 다른 모든 일에서는 아이들의 잘못을 대충 넘기지 못하는 깐깐한 엄마였다.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다. 평소의 모습대로 아이를 다그쳤다면 지금 아이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참 잘 한 것이다. 낙천적인 아들 덕분에 나는 긴 시간의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해냈다. 조바심 많고 약한 엄마를 아이가 부추겨 세우며 견디게 해 주었다.

중학교에 가더니 아들은 내 속을 썩였다. 아이 말에 따르면 배치고사에서 너무 좋은 성적을 내서 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은 게 잘못이었단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에도 PC방에 갔다. 시험을 망쳐서 집에 오기 겁이 나서 PC방에 갔다는 것이었다. 성적은 뚝 떨어졌다. 나는 그 당시 유치부에서부터 중등부까지 있는 학원에서 온종일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의 행적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모두 드러났다. 엄마아빠가 무서워 시작했다는 아이의 거짓말은 연이어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슬프게도 우리부부는 아이들의 거짓말을 족집게처럼 알아내는 교육자였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며 살 팔자는 아닌 듯했다. 어쩌면 그토록 행적이 고스란히 들통이 나는지 아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뒤 처음으로 매를 들었다. 엄마의 회초리와는 질이 달랐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의 얼굴과 눈빛에서 깊은 우울함과 절망의 회한을 보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번번이 일탈을 해서 우리를 아프게 했다. 좋아하던 책도 멀리하면서 1년 내내 아이는 방황했다. 아이를 혼내다가 같이 죽자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이는 내게서 멀어져 있었다. 그대로 습관이 굳어져서 영영 아들을 잃게 될까봐 무서웠다. 일만 하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아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들은 어미인 줄 알면서도 가시를 세워 저항하는 영락없는 고슴도치였다. 나는 가시에 찔려 피가 나도 끝까지 아들을 품으려는 불행한 어미 고슴도치였다. 그렇게라도 품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싸우고 얘기하고 설득하고 혼을 냈다. 아이는 줄기차게 반항하며 부모가 간섭하는 자신의 처지를 불행해 했다. 때로는 마음 속 밑바닥에 숨어있던 온갖 원색의 감정들이 송두리째 쏟아져 나왔다. 짐승처럼 고함을 치고 울부짖으며 절망하기도 했다. 거친 바다에 뛰어들어 위태롭게 허우적대면서도 도움을 거부하는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혼자 있을 때면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솔직할 수 있어서였을까. 아마 우리 모두 지쳐서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조금씩 자신을 가라앉혔다. 나와 남편 또한 아이를 인정해 주려고 노력했다. 감정을 거두고 이야기하며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아들은 서서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비좁고 꽉 막혔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널찍한 마음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도 달아보았다. 보이지 않던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오고 거기에서 또래의 아이들은 흙먼지를 날리며 축구공을 따라 뛰놀고 있었다. 아들은 방안의 책상에 앉아 바깥의 아이들을 보며 갑갑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내 귀에는 어린 시절 집 앞 공터에서 날 부르며 저녁 식사를 재촉하던 동네 친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서두르느라 몇 숟갈 입 안에 밥 만 몰아넣고 뛰어나가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도 보였다. 아들은 동생들과 내가 가르치는 많은 아이들을 위해 작고 부서질 것 같은 엄마를 크고 튼튼한 사발로 다시 빚어 주었다. 그 연약한 가시로 엄마를 다져서 안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굳은살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잘 자라준 아들을 볼 때마다 지금도 나는 가슴이 저리도록 안쓰럽고 미안하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사소한 잔소리에도 아들은 순식간에 가시를 돋운다. 내 눈에는 더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가시가 보인다. 그래도 나는 아들을 힘껏 껴안고 싶다. 거세어진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고 피가 날지언정 가시가 모두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주고 싶다. 어느새 자라서 홀로 설 준비를 하는 덩치 큰 아이가 내게는 아직도 내 품이 필요한 아기 고슴도치로 보인다. 남편의 눈에도 아들은 여전히 철없는 아이인 모양이다. 수능시험 잘 보고 나면 좀더 교육시켜서 세상에 내보내야겠다고 남편과 나는 이미 얘기해 두었다. 아들이 알면 또 한 차례 가시를 세울 지도 모르겠다.
(201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