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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기춘
ㆍ작성일	2010-12-18 (토)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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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산에서
감나무 산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상강이 지나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해지는 걸 보니 감을 딸 때가 된 것 같다. 빨갛게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는 풍요롭고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대표적인 농촌의 가을 풍경이다. 모든 나무들은 우리들의 삶에 도움을 주지만 특히 감나무는 열매는 물론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나무는 고급가구를 만드는 목재로 쓰일 뿐만 아니라 잎은 차를 달여 먹기도 한다. 감꼭지는 딸꾹질 날 때 달여 먹으면 즉효다. 아무리 딸꾹질이 심해도 감꼭지 열서너 개를 물 두어 컵 정도 넣고 달여 두어 번 먹으면 그냥 그친다. 이렇게 감나무의 용도가 다양해서 옛날 어른들은 감나무의 쓰임새를 오상(五常)이라 극찬했나 보다.
감나무의 잎이 넓으니 잎에 글을 쓸 수도 있다하여 문(文)이라 했고, 화살촉으로 쓸 수도 있을 만큼 단단하니 무(武)가 되고, 열매의 안팎 빛깔이 한결같으니 충(忠)이고, 이가 빠진 노인네도 쉽게 먹을 수 있으니 효(孝)라고 했으며, 사람이 따지 않으면 가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있으니 절(節)이라 했다.

우리 집 감나무 산은 두 곳에 있다. 옛날에는 감나무 산이 상당한 수입원이 되었다. 감나무 산에는 대추나무와 닥나무도 많이 있었고 평평한 곳에선 밭작물도 재배했었다. 감을 팔아 라디오를 사기도 했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는 감이 큰 먹을거리였다. 곶감이나 홍시는 물론 추석이나 운동회 때면 우려먹기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긴긴 겨울밤이면 식구들이 화롯가에 모여 앉자 홍시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감이 꽁꽁 얼었을 땐 찬물에 담가야 얼음이 빠져나온다. 언 감을 따뜻한 물에 담구면 얼음이 잘 빠지질 않을뿐더러 맛도 떨어진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고 닥나무도 수요가 별로 없고 감도 가격이 떨어져 따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 그러니 감나무 산은 자연스레 발길이 끊겼다. 감나무 산을 가본지는 20여년이나 되어 기억이 아물거린다. 아내는 시집오던 해 감을 딸 때 감 따는 일꾼들의 점심을 머리에 이고 산에 오르던 추억이 간혹 떠오른다며 가을이면 감나무 산엘 가자고 졸랐다. 그때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을을 넘기곤 했다. 나도 가끔은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마을 뒤 골짜기에 있는 감나무산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다.

감나무 산에 가려고 고향마을 뒤 골짜기에 들어서니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경작을 하지 않아 묵은 전답들이 많았다. 산업화의 물결에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을 뒤에서 감나무 산을 바라보니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퍽 보기 좋았다. 우리 감나무산도 20여년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길이 없었다. 길에는 잡목들과 가시넝쿨이 우거져 옛날의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낫으로 가시넝쿨을 베어가면서 가까스로 감나무 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까이에 가보니 먼 곳에서 바라본 것과는 달랐다. 30여주가 넘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다섯 주밖에 없었다.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틈에 이름 모를 사람들이 가을이면 감나무를 베어서 감을 따간 모양이었다. 높은 곳에는 감이 주렁주렁 많이 열렸으나 도저히 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자니 퍽 아쉬웠다. 산새나 짐승들의 좋은 먹이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감나무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났다. 산업화의 열풍으로 직장 따라 도회지로 너도 나도 떠나버린 농촌의 살풍경을,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듯 농촌을 지키는 노인들 마냥, 묵묵히 고향을 지켜주는 감나무가 퍽 고마웠다.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오랜 세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감나무가 퍽 서운해 했을 것이다. 사람들도 감나무처럼 가정이나 사회에서 쓸모가 없어지면 사람들의 발길이나 마음길이 끊길 것이다. 부질없는 생각일지라도 나이 들어 늙어도 사람들의 발길이나 마음길이 끊기지 않는 항상 외롭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