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나고 소금을 넣으면 짠맛이 난다. 먹을 풀면 먹빛이 되고 흙이 섞이면 흙탕물이 된다. 보약을 넣어 달이면 보약이 되고, 사약을 넣고 달이면 독약이 된다.
물처럼 살라는 말은 물이 가진 본성을 말한다. 맑고 순수하고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어느 날 아래층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천장에 얼룩이 지고 전등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진다고 했다. 내려가 보니 천장에 얼룩이 번졌고 전등 덮개에 물이 고여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누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위층에 있다고 했다.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최대한 빨리 공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이며 베란다며 누수가 될만한 곳을 살폈으나 알 수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하자보수기간이 지나 입주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5년 된 아파트가 물이 샌다는 게 있을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법이 그런다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부터 다녀간 누수업자들은 최첨단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탐사하고 방바닥과 거실의 마루를 모조리 걷어내고 파헤쳐 보았지만 누수 흔적을 잡아내지 못했다. 방과 거실이 파헤쳐지고 가재도구를 한쪽에 쌓아둔 집은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는 동안 아래층의 재촉 전화가 계속되었지만 원인을 잡지 못해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지인이 소개한 업자가 누수가 예상되는 곳의 파이프를 갈고 며칠을 지켜보더니 누수가 잡혔다고 했다. 공사를 마치고 보름이 지나자 아래층에서도 물이 잡힌 것 같다고 했다.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려 아래층의 도배와 화장실 타일을 교체했다. 공사와 누수업자들에게 들어간 돈이 삼백여만원이었다. 상수도 파이프에 난 미세한 틈 하나 때문에 빚어진 비용과 생활의 불편이 만만치 않았다.
물은 흐름이 좋아야 한다. 샛강은 샛강대로 큰 강은 큰 강대로 흐름이 좋아야 한다. 인체에도 혈액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온다. 기름진 음식과 흡연, 과음으로 피가 끈적끈적해지면 혈압이 높아진다. 고혈압으로 뇌혈관이 터지면 뇌출혈이 되고 혈전이 뇌와 심장의 혈관을 막으면 뇌 경색과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유전적인 영향은 배제하더라도 절제되지 않은 생활습관으로 생긴 병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러나 자연이 병드는 것은 다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는 4대강사업이 그렇다. 물의 흐름을 좋게 하여 홍수를 예방하고 깨끗한 식수를 확보한다는 게 그 명분이다. 이 사업에 대해 정치적 견해와 환경에 대한 철학에 따라 찬반 격론이 뜨겁다. 정치권은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환경운동가들은 건설 중인 보에 올라가 시위를 한다. 또 지역주민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이 갈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환경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보수를 대변하는 현 정권은 분배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한다. 그들은 파이를 크게 한 뒤 그것을 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파이를 크게 키워 줄 기업이나 기득권층의 요구대로 제도와 정책을 뒷받침해 준다. 4대강 사업도 이런 맥락에서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면서도 밀어 부치고 있다. 소외계층의 복지에 들어갈 예산을 축소하여 4대강 준설을 위해 굴착기를 동원하여 강바닥의 모래를 퍼 올리고 있다. 사람의 얼굴 주름이 그 사람의삶의 굴곡을 나타내듯 강의 주름 또한 그 강의 역사를 담고 있다. 굽은 곳을 펴고 큰 흐름에 물리적 힘을 가하는 것은 강의 역사와 삶을 뒤집는 것이다.
파괴된 환경의 재앙은 누수로 방바닥을 파헤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강바닥을 파내 수심을 확보하고 보를 막아 물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홍수를 예방하고 식수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치수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법이다.
물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은 한낱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다. 지구온난화 탓에 빙하가 녹고 해수면의 상승으로 지도 상에서 섬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피부에 닿는 계절의 느낌 또한 해마다 다르다. 아열대식물이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것은 기후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다.
재난 영화를 보면 대부분이 물로 인한 지구의 파멸을 예고하고 있다. 현 정권이 문명의 힘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실업난을 해소하며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하지만 그것은 환경파괴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궁색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가끔, 세상에 우연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의 만남은 필연적인 요소가 존재함으로써 관계가 맺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낯선 곳에서 지인을 만나는 것을 우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겹침에는 개연성이 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부시맨과 만남보다 동네 사람과 마주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관에서,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문학 모임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 주거지나 학연과 지연에 따라 그리고 성격이나 취미, 직업에 따라 관계가 맺어질 확률이 크다. 단지 만남에는 스침의 단발성과 관계의 연속성과 같은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회적 현상도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필연이고 과학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우연성을 배제하고 필연성을 생각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전 국토의 물벼락을 천재지변 탓으로 돌릴 궁리를 하지 말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인재(人災)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물매란 물의 흐름을 잡는 기울기를 말한다. 지붕에 내리는 빗물의 양을 가늠하여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최적의 각을 주는 것이다. 도로를 포장할 때도, 욕실이나 주방의 바닥도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물매를 잡아 준다. 물매를 잡지 못하면 흐름이 정체되고 고이게 된다. 도로에 빗물이 고이면 길 가던 사람이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빙판이 되면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물이 증발될 때까지 많은 불편과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도로나 욕실의 물매는 미시적이지만 4대강 사업은 거시적 관점의 물매라 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전 국토의 물매를 잡는 일이기에 그렇다. 국가의 물매를 잡기 위해서는 한낱 아파트의 누수 공사처럼 무조건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방법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한 번 파괴된 자연은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고 복원하는데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불 난 끝은 있어도 물 난 끝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불 지난 자리엔 집을 지어도 물 지난 자리엔 집을 짓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큰물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황폐함을 두고 한 말이다. 긴 세월의 흐름에 패이고 굽은 물길을 바꾸는 근시안적 정책은 성난 물길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사회의 물매가 잘 잡혀야 고인 물이 없는 상태가 된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사람들의 마음에 불만이 고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축적하려는 제도를 고착시키려는데 있다. 문화와 전통이 없는 민족이 없듯 강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다. 강의 역사란 문명과 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듯 강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개펄이, 습지가, 토종 물고기가 사라지고 산허리가 잘려나가도 성장을 빌미로 부의 세습을 위한 자본의 집착과 성취감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 사회는 보혁갈등과 급진적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국가 정책의 연속성을 갖지 못한다. 4대강이 그렇고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그렇다. 법률로 강제한 사항도 정권이 바뀌면 법을 개정하고 입맛에 따라 정책을 변경해서 진행하곤 한다. 가정 경제의 계획만도 못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국가의 경제, 교육, 사회, 문화에 대한 정책이 5년 임기의 통치권자에 따라 바뀐다면 막대한 손실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을 때 한낱 해학으로 웃어넘겼지만 현실은 기름보다 비싼 물을 사서 마시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던 공기에도 환경부담금이라는 세금을 내고 마시는 게 현실이다.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해 성장론자들에게 미래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치수사업은 4대강이 아니라 권력을 남용해 사익을 챙기려는 오염된 권력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마땅하다. 3권은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들은 서로에게 감사하며 어렵고 힘들 땐 서로 돕고 사는 사회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이런 부정부패의 시스템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리처럼 여겨진다.
양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액체 상태의 물이 9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하여 기체가 된다. 액체 상태의 물이 영하가 되면 얼기 시작해 고체 상태가 된다. 온도의 변화에 따라 액체에서 기체 액체에서 고체로 질이 변화하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보면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쳐 사회가 발전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변증법을 이론화했다. 우리의 역사에 변증법 이론을 대입하면 이승만의 선거부정에 의한 4.19와 박정희의 5.16쿠데타에 의한 군부독재.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제정과 부마사태. 12.12를 통한 군부의 재집권.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과 대통령직선제 쟁취를 위한 6월 항쟁과 6.29선언. 3당 통합에 의한 문민정부 출범을 거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까지의 과정과정마다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쳐왔다. 지금의 상태는 역사 발전의 어느 길목에 와 있을까?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의 단점인 빈익빈 부익부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는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소외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게 평등사회 실현이다. 평등을 실현하려면 서로 나눔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자가 자발적으로 곳간을 열어 가난을 구제하는 것은 일회성 처방일 뿐이다. 국가가 제도를 마련해 기울어진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평등이란 물매를 잡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적 물매가 잡혀야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것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의 물매,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정치의 물매,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는 경제의 물매,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법의 물매가 잘 잡혀야 한다. 물 대포와 같은 물의 순리와 역행하는 폭력적 도구가 사라지는 사회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에 걸맞은 사회일 것이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갈증을 풀어 주는 물도 좋지만, 물의 변화된 모습을 좋아한다. 새벽 호수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와 언 땅에서 새싹을 움트게 하는 봄비와 세상을 여백의 미로 바꿔버리는 눈을 좋아한다. 물이 곧 생명이라는 말에는 누구도 사족을 달지 않는다. 그 중 식물에 필요한 것은 물과 햇빛과 거름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사랑이다.
‘물주기 3년’이란 말은 난을 키우는데 기본이 되는 말이다. 화초를 키우면서 세끼 밥을 먹이듯 물을 주면 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물주기 3년이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난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질적 변화의 시간을 말한 것이다. 국민에 대한 사랑과 소통이 필요한 시기다.
사랑하던 연인이 이별을 하면 실연의 고통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몫이다. 지도자를 사랑하다 실연의 아픔만을 겪어온 국민들에게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을 지도자는 희망사항일 뿐인가? 사람만이 희망이라는데 말이다.
연어는 거친 물살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귀소본능이다. 사람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굴착기의 삽날에 삶의 터전을 잃고 수몰민처럼 유목(遊牧)의 삶을 살아갈 물고기들에게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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