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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병규
ㆍ작성일	2010-12-07 (화)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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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 한우

우리 소 한우
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우리 소 한우는 농경사회의 역사를 풍요롭게 이어온 고맙고 유익한 가축이다. 농기계가 보급되기 전에는 김제만경 넓은 들을 비롯하여 농촌의 모든 땅을 소의 힘으로 경작했다. 소는 농촌의 상징이었고 농촌을 지켰으며 농가의 재산목록 제1호나 다름없는 보배롭고 귀한 존재였다.
나는 열두 살 때부터 소와 친하게 되었다. 소를 기르는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꼴을 베고 소를 먹이며 집안일을 돌봤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꼴을 베다 다친 왼손의 흉터를 보면 그 시절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6․25전쟁이 나던 해 나는 열네 살이었다. 소를 기르다 보니 다루는 일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보리누름이 시작되고 산새들이 짝을 찾아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던 5월, 면 소재지에는 유랑극단이 들어왔다. 내 또래 아이들은 극장에 가려고 대낮부터 모여들었다. 나도 꼴을 베어놓고 그들과 합류하려고 작업에 나섰다. 급하게 꼴을 베던 찰라 낫이 돌에 부디쳐 번쩍하는 순간 왼손을 찍어버렸다. 병원이나 약국도 없던 농촌에서 그 상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산에는 녹음이 짙어지고 들에는 농작물이 탐스럽게 자라던 6월 어느 날, 들에 매어놓은 소의 고삐가 풀렸다. 소가 발정을 하여 요동을 쳤기
때문이었다. 소가 성깔을 부리며 무성하게 자라는 농작물을 휘졌고 다니는 바람에 많은 농작물이 상하게 되었다. 온순하던 소가 성깔을 부리며 무섭게 설쳐댔다. 소와 친하게 된 나는 워! 워! 하며 곁으로 갔더니 나를 따라주었다. 나는 소를 몰고 1km쯤 떨어진 종모우[種牡牛:씨를 받는 황소〕가 있는 집으로 갔다. 소의 교미를 전문으로 하는 종모우(種牡牛) 주인이 벼락같이 교미를 시키고는 오줌을 싸버리면 교미시킨 것이 허사가 되니 쉬지 말고 뛰어 가라고 했다.
며칠 지난 뒤 6․25전쟁이 나서 휘날리던 태극기가 붉은 깃발로 바뀌었다. 붉은 군대들은 내 또래의 아이들을 소년단이란 이름으로 사상교육이란 것을 시켰다. 나는 소를 돌보랴 교육을 받으랴 바쁜 생활을 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날고 세상인심은 사나워졌다. 어수선하던 사이에 추석이 돌아왔으나 명절 같지가 않았다. 추석이 지나자 관공서에 걸렸던 붉은 깃발이 사라지고 다시 태극기가 나부꼈다. 내 고향 변산에는 인민군 정규군을 포함 수많은 빨치산들이 산속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공산당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내 큰형님이 당시 면사무소 병사계장을 하고 있었다. 형님이 입영장정들의 소집영장을 받아오던 날 밤, 빨치산들이 우리 집을 덮쳤다. 때마침 형님은 두 집 건너 이웃에서 동네 청년들과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형님을 어디에 숨겼느냐며 아버지를 다그치는 한 편 집안의 양식이며 찬거리를 챙기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귓속말을 듣고 팬티바람으로 장독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된장을 푸던 빨치산이 모르고 자기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나가는 것이 발각되었으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 형님께 알렸다. 형님은 총알같이 지서를 향하여 달려갔다. 그때 김천용과 박종술 두 청년이 다급한 김에 동시에 좁은 문을 빠져나가려다 걸려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 경황에도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잠시 뒤 형님이 지서에서 무장을 하고 동구 밖에 와서 위협사격을 했으나 빨치산들은 우리 소까지 끌고 떠나버린 뒤였다.

형님의 신호로 지서에서는 로켓포를 발사하여 불꽃잔치를 이루며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소금을 굽던 염부(鹽夫)가 소 임자는 소를 찾아가라고 외쳤다. 내가 달려갔더니 우리 소가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얼싸안고 싶도록 반가운 순간이었다. 나와 소는 위험한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우리 소 한우는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전쟁터에 간 젊은이들의 전사통지서가 날아드는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해는 바뀌고 새 봄이 돌아왔다. 나는 배가 남산만큼 부른 소를 끌고 다니며 부드럽게 돋아나는 새 풀을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가 쌍둥이를 낳았다. 소가 쌍둥이를 낳으면 집안이 융성한다는 말이 있다. 열다섯 살이 된 나는 소 기르는데 제법 이력이 붙었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소 쌍둥이와 어미 소를 돌봤다. 어미 소가 살이 뭉실뭉실 찌고 새끼소 두 마리도 살이 토실토실 쪄서 우리 집 가보 제1호가 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든든하다.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소가 일거리를 잃어버렸다. 산으로 들로 먹이를 찾아 나들이를 하던 소들은 답답한 우사에 갇히게 되었다. 대접받던 소는 집단수용소에 갇힌 포로병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우리에 갇혀 집단 사육을 하다 보니 내병성도 없어졌다. 지금 경북 안동지방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구제역에 걸린 동물은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자연히 낫는다고도 하는데, 발생한 그 지역에는 성한 소까지 생매장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소 한우가 천대를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우리 소 한우는 지난날의 모든 권리를 잃고 육우로만 가치가 있는데, 그것마저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자리가 위태롭게 되었다. 나라에서도 한우 사육에 힘을 기울여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경북 울진에서는 암송아지를 농가에 분양하여 기르게 하고, 어미 소가 된 뒤 첫 송아지를 5-6개월 길러 공급받은 곳에 돌려주면 어미 소는 농가의 소유로 하는 배메기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 소를 아껴 농촌을 살리는 좋은 사업이라 믿는다. 소를 관리하는 사업이 전폭적으로 개선되어 마을마다 농가마다 빠짐없이 소를 질병 없이 길러 우리 소 한우가 농가의 재산목록 제1호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0.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