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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옥
ㆍ작성일	2011-01-01 (토)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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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고 살자

열고 살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영옥

얼마 전 시골서 찾아온 손님이 옆집의 잠겨있는 문 때문에 한나절을 추위에 떨며 애태우는 걸 보았다. 보기가 딱하여 우리 집에서 기다리라 권했더니 짐만 전해 주라며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아침 일찍 대문을 열어놓아야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격세지감이 든다. 새댁 때 조금 늦게 일어난 날이면 ‘새댁이 부엌문을 늦게 열면 되냐? 아예 열어놓고 자라’는 시어머니의 호통에 새벽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다. 나는 오십년 넘게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 20여년의 셋방살이 때엔 네 명의 아이들이 들랑거리니 자물쇠가 필요 없었고, 관사생활 15년은 수위실에서 문단속을 해주니 열쇠를 몰랐다. 남편의 퇴직 이후 20여년은 손자들 기르기 12년 때문에 번거로운 자물쇠와는 거리가 멀었다.

안방 장롱 속엔 귀금속도, 값비싼 의상도, 명품 그림도, 현금도 없었기에 방문이나 대문을 잠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옆집 개가 와서 이층옥상 채소에 실례를 하는 바람에 대문을 잠그다가 요즘은 없어져 아예 잠그지 않고 지내니 편해서 좋다. 택배가 다른 집보다 많이 오간다. 서울을 가는 도중에도 전화가 오면 문이 열려있으니 현관 안에 들여놓고 가라고 하고, 보낼 때도 주소와 돈을 두고 나가면 가져간다. 나도 좋고 남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니 일거양득이다. 그러다보니 몇 달 전엔 누군가가 두 번이나 두유 박스를 현관에 놓고 갔다. 지금까지 얼굴 없는 천사를 알 수 없어 즐거운 고민이다.

10여 년 전 쌍둥이손자 둘을 데리고 서울을 가느라 바삐 나오는 바람에 곰탕 솥에 가스 불을 켜놓은 걸 깜빡 잊고있다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생각이 났다. 시간은 다 되어가고 발을 동동 구르다 수첩을 열어 앞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불을 좀 꺼주시라 부탁했었다. 대문을 잠그지 않아 가능했었다. 이렇게 열어 놓고 살면 때론 오달지게 편리함을 맛보기도 한다.

25년 전 천변부근 조그만 관사아파트에 살 때다. 철문을 꽉 닫아두면 답답하기도 하고 나이도 많은 터에 같은 직원끼리 가족같이 지내고 싶어 항상 문을 열어놓았다. 젊은 직원부인들은 문이 열려 있어 좋다며 수시로 놀다 가곤하였다. 어느 날 몹시 추운 겨울밤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30쯤 되는 젊은 여인이 누군가에 쫓긴 듯 다급한 모습으로 들어섰다. 마침 남편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문을 잠그지 않았었다.

추리닝만 입었을 뿐 속옷은 전혀 입지 않은 여인은 추워 덜덜 떨면서 누가 잡으러 온다며 횡설수설하는 꼴이 정신이 온전치 못함을 느꼈다. 궁금증이 일지만 몹시 피곤해보여 더운물을 떠다주며 몸을 씻게 하고 내 속옷을 입혀 이불을 덮어주며 잠부터 재웠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은 자초지종을 듣고 내일 파출소로 연락하여 가족을 찾게 해주라고 했다. 푹 자고난 여자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야 나의 유도질문에 조리 없는 대답을 했다. 말하는 것을 모두 다 적었다. 내 딸 같은 나이인데 안쓰러웠다. 나는 약속시간이 있어 파출소까지 데려다 줄 수가 없어 전화를 하여 이러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곧 직원이 왔다. 쪽지를 건네주며 딸려 보냈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웅크리고 따라가던 처량한 그녀의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병이 나아서 잘 살기를 바랐다.

오후 2시쯤 파출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여자의 어머니가 와서 사례하겠다며 오라고 한다. 나는 사양하고 전화로 ‘딸을 찾았으니 치료를 잘해주라’며 격려를 하고 위로했다. ‘딸을 보살피고 찾게 해주어 고맙다며 복 많이 받으시라.’ 는 인사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전날 밤 12시쯤부터 집집마다 벨을 눌러도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단다. 우리 집은 3번째 라인의 3층이다. 직원부인들은 ‘사모님은 항상 문을 열어놓고 사시더니 이런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올여름 다리를 수술하고 와서도 일일이 문을 열어주느라 고통을 받지 않았다. 전동차를 이용해 드나들 때마다 겹겹으로 잠그고, 열고, 열쇠를 보관하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대문을 바로 밀고 들랑거리니 편리해서 좋다. 요즘 아이들 목에도 열쇠가 걸려있다. 도시 고급아파트는 출입구문에서 집 현관문까지 암호로 되어 있어 연락을 하지 않고 가면 자식들의 집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없는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고도의 문명시대라고 좋아하면서 무엇 때문에 문은 첩첩으로 잠그고 사는지 모르겠다.

옛 선인들의 말처럼. 아침 일찍 대문들을 활짝 열어 만복을 맞이해보자. 꼭꼭 잠겨 있는 집에 복이 어찌 들어올 수 있겠는가? 요즘 공공건물이나 학교 담을 허물고 열린 세상 운동을 펴고 있는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모두 문도 열고, 마음도 열고, 지갑도 여는 등 열기운동을 펴나가면 좋으리라. 새해에는 서로가 믿고 도와가며 편하게 사는 세상이되었으면 좋겠다.

(2010.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