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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11-01-16 (일)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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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또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부모의 아들이다. 우리 부모는 딸 둘에 아들 둘을 낳으셨다. 그리고는 딸 아들 순으로 질서 있게 전부 열 명을 낳으셨다. 그중에서도 나는 막둥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위의 누나는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내가 두 살 때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 나는 그 누나를 모른다. 단 한 사람 살아계시는 내 형님은 나와 다섯 살 차이다. 그 형님은 바로 밑의 동생이라 그 누나를 잘 안다. 그래서 형님은 우리가 10남매라 하고 나는 9남매라고 한다.

※ 詩曰, 父兮生我母兮鞠我-시왈, 부혜생아 모혜국아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다.

詩는 <詩經:시경>을 말하는데 孔子가 은(殷)나라 때부터 춘추시대까지의 詩를 취사선택하여 305편을 수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 시경을 <詩傳:시전>이라고도 하고 <毛詩:모시>라 하기도 한다.

出典 : 明心寶鑑(명심보감) 孝行篇(효행편) 第1章.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나와 9년간을 함께 살았지만 내가 3살 때부터의 일을 기억하고 있으니 정확하게는 6년간을 같이 산 셈이다. 어머니는 26년간 함께 살았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는 생생한 기억들이 참 많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아버지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열아홉 살 때까지만 사셨더라도 내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 맺힌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말라리아라는 병(病)으로 시달렸다. 오후가 되어 몸에 열이 나고 덜덜 떨리기 시작하면 어머니가 더 걱정을 하셨다. 말라리아는 그 시절에 많이 유행했던 병이다. 어머니는 그 병을 낫게 하려고 나에게 깅계랍[金鷄蠟(키니네)]이라는 약을 먹이려고 하시고 나는 약이 너무 써서 안 먹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 배추김치 잎에다 싸서 주시기도 하고 약 먹은 다음에 설탕가루를 얼른 입에다 수저로 떠 넣으셨다. 한 번은 아버지가 아침 일찍 나더러 따라오라고 하셨다. 120호인 우리 동네 윗머리에 사는 왕(王)씨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호랑이 수염 한 개를 뽑아서 내 콧구멍 입구를 살짝 쑤셨다. 피가 가느다랗게 한 줄로 주르르 흘러 윗입술을 적셨다. 그날은 말라리아를 앓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학질을 낫게 해 주신다고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에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삿짐 뒤 강아지 따라가듯 졸래졸래 따라 갔더니 앞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 청년등이라는 야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 산에는 큰 무덤과 비석이 있었다. 대낮에도 혼자 그 앞을 지나려면 간이 콩알만 해지고 오싹오싹 무서워서 달음질을 처서 지나다니던 곳이다. 아버지는 나더러 그 무덤 옆 잔디에다 머리를 대고 재주를 한 바퀴 넘으면 학질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머리를 대고 막 한 바퀴를 구르자마자

“귀신 나온다!”

라고 외치면서 도망치듯 달음박질로 뛰어가셨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서 울면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는 거친 손마디로 내 눈물을 닦아주시고 나를 등에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갔다. 학질이라는 병이 놀라게 하면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날 오후엔 괜찮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어리석은 짓이다.

아버지는 다음해 겨울 위장병이 생겼다. 약도 쓰고 체를 내린다는 사람이 배를 주무르기도 했지만 낫지 않았다. 어머니와 안방을 쓰지 못하고 사랑채에서 혼자 밥도 제대로 못자시고 무릎을 세우고 앉거나 누워계셨다. 어느 날 밤 우리 집에 좀도둑이 들어왔다. 사랑채에 아픈 아버지만 계신다는 것을 아는 좀도둑이 사랑채 앞에서 훔칠 물건을 찾는 것을 본 아버지는 기침을 해서 그를 돌려보내셨다. 다음날 아침 그 얘기를 들은 우리 가족은 그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알 것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가 누구란 걸 아시면서도 끝내 알려주지 않고 다음해 이승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말씀이 적고 퍽 조용한 분이셨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 말이 많지 않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남녀공학인 중학교 2학년 때 떼를 지어 가는 여학생 앞을 지나려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런데 경찰관 생활 37년간을 하고 나이 이순을 넘자 여자들 앞에서도 수줍음을 타지 않고 말도 잘하고 노래는 잘 부른다. 이런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다. 결국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점만 골라서 태어난 셈이다.

그런데 요즈음엔 아버지를 더 많이 닮고 싶다. 부모 중 어머니에 대해서 애틋한 사연이 더 많고 순식간에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아이고 어머니!’ 라고 하지 ‘아이고 아버지!’ 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를 더 닮고 싶은 것은 나도 아버지처럼 남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버지가 더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한다. 거울 옆에 67년 전에 촬영한 아버지·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찍은 액자사진이 세워져 있다. 그때 아버지는 58세였는데 코밑수염을 기르셨다. 염색도 하지 않았는데 검정색머리여서 보기가 참 좋다.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이왕이면 더 닮으려면 나도 수염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코밑수염을 자르지 않고 기르고 있다. 아버지 연세보다 16년이 더 지난 뒤 수염을 길러서 그런지 흰 수염이 절반정도 희뜩희뜩하여 볼품이 없다. 아버지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초등학생이 되고 사진을 보면 16년 전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나를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 나를 낳고 비록 책임을 짓지 못하시고 일찍 가셨지만, 내가 그분을 많이 닮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책임을 지신 셈이다.

눈물이 난다!

(2011.1.11.화.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