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여행 2 - 운조루

왕십리 아저씨께서 작년부터 내게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한 곳이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위치한 [운조루]입니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1776년)에 세워진 양반가의 집으로 남한의 3대 길지(좋은 집터)의 하나로 우리 나라의 전통 건축 양식을 그대로 재현한 전통 한옥집 입니다.
몇 년전 이곳을 둘러보신 아저씨는 운조루의 정자에서 차 한잔 마셔보는 것을 바래셨고, 올해에는 그 소망을 풀기 위해 다기와 햇차를 담아 운조루에 갔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경치가 좋은 곳이나 운치가 있는 곳이면 차를 세워 다기를 꺼내어 차를 마시는 것이 아저씨의 취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께 마셔본 것만 해도 스무 차례가 넘으니 이젠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이 정도의 정경이면 차 한잔 마시겠구나 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후의 늦은 햇살이 운조루를 비치고 있고, 아저씨께서는 운조루의 주인 아저씨와 반갑게 해후를 하셨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마련해 둔 동동주와 도토리묵으로 목젖을 축이고, 아저씨와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눕니다.
평상 아래로는 개울물을 당겨 밑으로 흐르게 하고, 그 옆에는 씻고 빨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집 앞으로는 연못을 파서 한층 더 운치를 더해줍니다.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운조루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꼬마를 만났습니다.

꼬마는 두레박을 우물속에 넣기도 하고, 또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부엌으로 들어가 숨기도 하고, 또 집 둘레를 이리 저리 뛰어 다닙니다.
아이를 따라가며 집을 구경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방문을 열고 나타난 꼬마의 여동생.
갑자기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방문을 열고 나타난 꼬마 여자아이의 모습은 낯설게 다가옵니다.
두 아이는 또 그렇게 둘이서 집안을 뛰어 다니며 놀고 있습니다.

왕십리 아저씨는 운조루에 사시는 가족들과 함께 정자로 올랐습니다.
정자에서 다기를 꺼내고 햇차를 열어, 그렇게 소원이시던 차를 우려냅니다.
아이도 신기한 듯 바라보고, 또 운조루의 주인장도 여행객의 낯선 모습에 시선을 모읍니다.
저녁 햇살은 운조루의 나무 기둥을 점점 붉게 만들고, 난 그 옆에서 옥빛으로 우러나는 차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현재에서 과거의 모습이 재현되고, 운조루에서의 차 한잔은 갈길이 먼 여행자의 지친 발걸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전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