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 저 공은 저렇게 잘 굴러가는데 나 같은 달걀은 왜 자꾸 옆으로만 굴러가지? 저 공은 뚱뚱한 게 100g도 넘고 난 겨우 59g밖에 안 되는데……. 하기야 엉덩이는 방방하고 머리는 뾰족한 것이 어떻게 저 공처럼 굴러갈 수 있겠어? 그래도 날 닮은 여인네들은 달걀미인이라고들 하지 않아? 예나 지금이나 달걀만 닮아봐. 모두 미인이라고 할 걸.
견문이나 학식이 높은 유식한 분들은 나 같은 달걀과 우리 엄마 닭을 갖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날 궁리하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달걀이 자라지 않았으면 엄마 닭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엄마 닭이 낳지 않았으면 나 같은 달걀이 있을 수 없을 게 아냐? 난 이렇게 지구를 시끄럽게 할 정도로 유명하단 말이야.
옛날 생각이 나네. 엄마 닭들이 알을 낳고 힘들었다고 꼬꼬댁꼬꼬댁 울어대면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 몰래 다가와서 살며시 알을 꺼내가는 거야, 글쎄. 그 따뜻한 달걀을! 엄마 닭들은 달걀을 잃고 서럽다 울어대지만 속없이 다음 날 또 다시 달걀을 낳고 말지. 사람들은 우리를 모아 지푸라기에 열 개씩 싸서 장에 내다 팔았지. 다행인 것은 애들이 공부하는 산수책에 지푸라기에 싸인 우리 형제들을 예쁘게 그림으로 그려서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공부시켰다는 거야. 이렇게 우리는 인간들에게 공헌한 바가 크다고.
기차 칸에선 삶은 달걀을 밥 대신 얼마나 많이들 먹었다고. 삶은 달걀을 먹지 않은 여행은 운치도 없는 여행이었어. 우리 주인은 산꼭대기까지 날 가져가서 먹다가 목이 메고 가슴이 막혀 생고생을 했지 뭐야? 급체를 했던 거지. 준비성 없는 안주인이 물을 준비해 주지 않아 산에서 삶은 달걀을 먹다가 하마터면 남편이 목숨을 잃을 뻔했지, 뭐야?
그제 아침엔 나를 냄비에 넣고 끓이더니만 3분 만에 꺼내버렸어. 후배가 그래야 맛있다고 했다나? 그런데 노른자가 익지 않았지 뭐야?
“어라, 반숙이 덜 됐네!”
어제 아침엔 5분 만에 달걀을 꺼내더니 마치 마리오바탈리나 된 듯 아주 흐뭇해했어. 흰자도 말랑말랑 노른자도 아주 반숙이 잘되었거든. 달걀의 진가를 알아주는 순간이었지. 근데 오늘 아침엔 뭐가 바빴던지 글쎄 10분이 되도록 달걀을 꺼내지 않지 뭐야? 약이 바싹 오른 달걀이 몸을 단단히 움츠려버렸지. 그랬더니 노른자가 딱딱해져버렸어. 산에서 우리 주인이 먹었던 삶은 달걀이 바로 그 맛이었을 거야.
요즘 우리 안주인은 달걀껍질을 벗기는 선수가 되었어. 껍질을 모두 깨뜨리지 않고 허리 부분만 살살 깨뜨리고 벗기면 위아래는 모자처럼 훌러덩 벗겨지는 거야. 그런데 그 껍질을 깰 때마다 구시렁거리더라고.
“요놈은 말 잘 듣는 우리 막내 같이 껍질이 아주 잘 벗겨지네. 그런데 요놈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안 벗겨지는 거야?”
흰 살이 껍질에 찰싹 달라붙어 떼어낼 때마다 달의 분화구처럼 움푹움푹 떨어지는 내 친구들을 보고서는 마구 화를 내는 거야. 하기야 똑같이 소금물에 삶았는데 그 녀석은 오늘 왜 심술이 났는지 알 수가 없어.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주인댁 형제들도 제각각인데 누굴 탓하겠어?
달걀껍질은 또 쓸모가 대단하지. 더러워진 병이나 닦기 어려운 속 깊은 그릇은 그 껍질을 넣고 짤짤 흔들어 봐. 얼마나 깨끗해진다고. 우리 주인도 새것처럼 변한 스프레이 병을 들고 마술이라도 본 듯 황홀해 하더라니까. 속이 검은 사람들은 달걀껍질을 씹지 말고 삼키면 좋겠어. 그런 뒤 마구 흔들면 깨끗해질 게 아니야? 부활하는 게지 뭐.
우린 가끔 정의의 용사가 되기도 해. 불의를 일삼는 나쁜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우리 달걀들을 몰래 가지고 가서 던지거든. 그러면 달걀은 떼로 날아가 나쁜 사람들의 얼굴이며 머리, 고급 양복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래도 맘씨 착한 우리들은 그 사람들을 영원히 못쓰게 만들진 않아. 물로 씻으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니 반성기회를 만들어 주는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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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아. 달걀을 그냥 고맙게 먹을 일이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흰자는 알러지를 유발할 물질이 함유되어 아토피의 원인이 되니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 또 노른자는 콜레스테롤이 많아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등 성인병이 있는 사람들은 먹지 말라고 야단들이야. 그렇다고 노른자만 쏙 빼고 흰자만 먹는 얄미운 입을 상상해봐. 그래서야 되겠어? 또 살이 쪄서 다이어트에 안 좋다나? 그러다가는 영양실조에 걸리기 안성맞춤이지. 내 열량이 74.5Kcal에 단백질이 6.2g, 탄수화물 0.61g, 칼슘이 24.5mg, 나트륨 63mg 그리고 비타민이 A,D,E,B12까지 들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식품이야? 요즘 서양에선 다시 우리 달걀들을 주목하고 있다더군. 비만을 방지하고 영양의 보고이며 최고의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거야.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 달걀을 먹지 않더냐고? 우리 달걀은 지구상 어느 인종이나 모두 즐겨 먹는 1등 영양식품이라고.
우리 달걀을 이용한 요리가 무엇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까? 달걀찜과 달걀말이, 달걀장조림, 달걀 탕, 달걀빵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야.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도 달걀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지 않아? 그리고 요리 기본재료의 으뜸인 간장을 담글 때도 달걀을 사용하는 걸 알기나 해? 소금물에 달걀을 동동 띄우는 거야. 동전만한 크기로 떠오르면 그건 간이 딱 맞는 거라네.
아, 이제 난 봉사활동을 하러 가야겠어. 우리 주인집 예쁜 딸이 글쎄 자기 얼굴에 달걀마사지를 한다네? 야호, 예쁜 주인집 아가씨의 얼굴을 많이많이 만져줘야겠어. 난 역시 행운아지 뭐야?
그러나 나보다 운이 더 좋은 놈이 있지. 엄마 닭의 품속에서 21일 동안 따뜻하게 안겨 있다가 병아리로 태어나서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털이 보송보송한 노랑병아리들 말이야. 아, 부러워라! 지금쯤 그 병아리들은 노란 개나리 울타리 밑에서 엄마 닭을 따라다니며 먹이를 쪼아 먹고 다니겠지?
* 마리오바탈리 :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 세계 13위로서 얼마 전에 우리나라 롯데호텔에 다녀가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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