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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09-08-23 (일)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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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산(3)
건지산(3)
- 하루에 만보를 걸어라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오늘도 건지산에 오른다.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 건강에 좋단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건지산을 크게 돌면 만보쯤 된다. 전주 호성동에서 공원 가는 길을 건너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경유 단풍나무 숲이 우거진 송천동 뒷산 정상까지 간다.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역임한 나의 선배인 송주원 님이 그림을 그리고 김재진 님이 시를 쓴 시판(詩板) <비상>이 눈에 띈다.

“모든 넘어진 것들이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넘어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일으켜 세우는 자 없어도 때가되면 넘어진 자들은 스스로 일어나는 법··· 지평선 위로 날개를 다쳤던 한 마리 새가 힘겹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아라.”

시를 읽으면서 벤치에 앉아서 쉰다. 여기까지가 5천보정도 된다. 그 밑으로 내려가면 모정이 두 채 있다. 그중에 작은 모정이 아주 시원하다. 그곳에서 한참 쉬었다가 혼불문학공원으로 간다. 소설가 최명희 님이 호화스럽지 않은 영원의 집에서 잠들고 있다. 묘소 앞 숲속에는 돌에다 소설 속에 나오는 장면 장면을 새겨놓았다.

“아아 강실아, 둥글고 이쁜 사람아,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나의 심정이 연두로 물들은 들 어디에 쓰겠느냐····”

혼불 1권 ‘심정이 연두로 물들은 들’에 나오는 문장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도로로 나오면 트럭 사과장사가 있다. 나는 가끔 그 사과를 산다. 차를 운전할 때는 만 원, 그냥 걸을 때는 5천 원어치를 산다. 그것도 나 혼자일 때는 못 사고 아내와 함께일 때다. 맛도 괜찮지만 주인이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기가 어쩐지 민망스러워서다. 한 번은 청솔이 와서 사과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쫓아버리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비록 이렇게 사과 장사를 하고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찾아오게 해서 TV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라고 했더니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돌고 오면 만보가 넘는다. 봄에는 만보를 걷고, 요즘엔 5천보 내지 7천보정도를 걷는다. 투병중이라 기력이 없고 가기가 싫어 건지산을 절반만 돌아 만보를 채우지 못해 아쉽다. 와사보생(臥死步生)이라고 했던가. 들여 쉬는 숨 내쉬지 못하고 내쉬는 숨 뱉지 못하면 죽는다. 하루 만보를 걸으면서 크게 숨쉬기는 꼭 실천할 일이다.

38년 전 장수경찰서 경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김현옥 내무부장관이 모든 공무원이 매일 만보를 걸으면서 정부가 하는 일을 주민에게 홍보하라고 했다. 사무실을 나와 무작정 동네주변을 걸었던 일이 있다. 지금은 만보기가 있어 거의 정확하게 만보를 걸을 수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고 몇 보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3천보정도 걸었지 싶다. 공무원도 건강해야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으니 그때 김 장관은 분명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었다.

오늘 오후는 비가 온다는 핑계로 산에 가지 않고 누워있었더니 아내가 산에 다녀오면서 반찬거리를 사오라고 했다. 운동을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고 우산을 들고 나섰다. 체련공원 축구장에는 비가와도 경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한 벤치가 물에 젖어 앉아 있기도 불편하고 반찬거리를 사려면 빨리 가야겠기에 앉지 않고 걸었다. 구름이 잔득 끼어 밤처럼 캄캄한 편백나무 숲을 혼자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우아아파트 앞 네거리 조그만 점포는 젊은 부부가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다. 즉석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가끔 순두부를 사다가 먹는다. 맛도 맛이지만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고 어쩐지 신뢰가 간다.
순 부두1개, 계란1판, 김 가루 1봉지를 칠천오백 원에 샀다. 대금을 두 번 계산하기에 손해 보지 않게 받으라고 했더니 덜 받기는 했어도 더 받은 일은 없다고 했다. 나는 얼른 다음에 덜 받을 때 또 사러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서니 주인도 웃고 다른 손님도 웃었다. 남기려고 하는 장사인데 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사람이 계산을 해서 제대로 주어야 한다.

기다리던 아내가 방금 지은 밥을 계란과 김 가루에 비벼 주먹밥을 만들어 준다. 그 밥을 순두부랑 함께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만보는 걷지 못했지만 아내 덕에 운동을 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오후였다.
[2009.8.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