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필리핀 보라카이로 다녀온 것 외에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 더구나 필리핀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는 해외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힘들었고,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이 왠지 불안하여 좋지 않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캄보디아를 찾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얼마 전 가족여행을 간 곳에서 아빠와 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언니와 아빠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과연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물인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 결론은 외계인이 만들어 놓고 갔다는 것에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 했다. 난 피곤하여 거의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앙코르와트가 외계인의 산물인지 그렇다면 내 눈으로 외계인의 흔적을 꼭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더운 날씨에, 오랜 시간을 비행기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곳이 맘에 들었다. 내가 전생에 살던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사람들도 공기도 친숙했던 건 왜였을까? 아마도 캄보디아는 우리나라 역사와 많이 닮았고, 사람들도 닮았기 때문인 듯싶다. 캄보디아 사람들 얼굴에는 동남아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이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한국 사람들과 인상이 몹시 비슷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어느덧 앙코르와트를 보고 싶은 맘은 둘째로 가고 우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캄보디아는 대학살을 겪었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인간의 잔혹함이 극에 이르는 역사를 겪어야 했던 민족이다. 순한 웃음을 짓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킬링필드’ 의 잔혹한 역사가 믿겨지지 않는다. 전쟁 후, 우리나라 아이들이 미군만 보면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
했던 것처럼, 이나라 아이들도
“언니! 사탕 주세요!”
라고 한국말을 하며 따라다닌다. 아직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은, 그런 그들을 경계했다는 점이다. 동냥을 하고 물건을 파는 것도 호객행위라고 생각하고 외면했던 것인데 무척 후회가 된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꼭 먹을 것과 학용품이라도 챙겨가야겠다고 생각되었다. 아무것을 받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고 우리나라 아이처럼 ‘빠이빠이’ 하고 인사를 했던 아이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다.
여행 이틀째 찾아간 앙코르와트는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캄보디아 수도 프롬펜에서 씨엡림까지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경주로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다. 오랜 시간 만에 도착한 앙코르와트. 그 웅장함에 말을 잃었지만, 앙코르와트는 외계인이 아닌 캄보디아 사람들이 만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캄보디아 사람 중에 일부분을 본 것뿐이지만, 그들은 무척 권태로워 보였다. 수도에서 벗어나 씨엡립에 가까이 갈수록 그 느낌이 강했는데, 그들은 그 권태로움을 이기는 방법으로 그 수많은 돌을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가져오는 수고를 견뎠을 것이다. 그리고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이기에 앙코르와트 사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원을 둘러보며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저 못살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미안했다. 그 벽화 하나하나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지혜로움과 도덕성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치고, 거짓말을 하면 잔혹한 벌을 받는다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현대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어서 만성이 되어버린 일들이다. 새삼, 그 벽화를 보며 그런 일들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를 반성하게 되며, 그런 짓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그 벌을 받는 그림이 너무 잔인하여 ‘킬링필드’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안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그런 도덕성과 근면함을 갖고 있었기에 앙코르와트 사원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많이 걷는 강행군이었지만 참 재밌는 여행이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둘러보며 그들의 삶을 바라본 것도 좋았고, ‘툭툭’을 타고 둘러본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요즘 내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며 ‘유소유’의 삶에 젖어있던 내게 어떤 인연이 작용하여 그들을 만남으로써 욕심이 줄어든 나를 느낀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난 캄보디아 아저씨가 운전하는 ‘툭툭’을 타고 있다. 지나가는 이들이 우릴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들 특유의 냄새가 섞인 미지근한 바람이 내 뺨을 스쳐가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오래전 인데 난 내 자신의 어느 부분을 그곳에 두고 온 듯하다. 여행이란 그래서 좋다. 내 몸은 그곳을 떠났지만 마음의 일부분이 영원히 그곳에 남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남편과의 캄보디아 여행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킬링필드: 1975년에서 1979년 까지 크메르 루즈가 양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현장을 이르는 말.
*툭툭: 캄보디아 운송수단. 오토바이에 인력거를 달아 운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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