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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효순
작성일 2020-11-03 (화) 06:37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84      
시월애
시월애 (十月愛)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서슬 퍼렇던 억새가 솜털 같은 꽃을 피워내고, 상록수라 불리는 소나무 잎들조차 부분부분 노랑 물을 들였다. 그들 속으로 가을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찌감치 꽃을 피워 바람보다 먼저 봄소식을 전하던 산수유나무도 홍보석 같은 열매를 반짝이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가을은.

어디 아름답지 않은 가을이 있었으랴만. 이 가을은 나에게 길을 떠나자고 채근하는 날이 유난히 많았다. 10월 내내 모악산을 드나들었다. 중인리에서 연분암으로 가다가 중턱의 편백 숲에 드러누워서 한나절을 보낸 날이 있었고. 금곡사 계곡 길을 걸었고,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금산사를 에두르는 둘레길도 여러 번 다녀왔다. 어느 날은 정상 바로 아래 수왕사의 빈 법당에 앉아서 카세트테이프로 스님이 들려주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도 했다.  

금마 미륵산 정상, 바람은 청량하고 믹스 커피는 달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부자였었다. 고창 선운산 낙조대, 점심 도시락과 곁들여 마신 맥주 한 잔에 온갖 시름 다 날려버린 신선이 되어 보기도 했다. 또, 멀리 해남 파인비치의 석양 앞에서는 굳어버린 줄만 알았던 가슴이 뭉클해지던 순간도 있었다.  

오늘은 전업주부인 큰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딸이 좋아하는 김밥을 준비하고 커피와 과일을 챙겨서 딸이 사는 아파트로 갔다. 딸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헐렁한 점퍼에 낡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제 동생이 출근하면서 맡기고 간 조카딸과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침 시간 내내 어린 것들과 동동거리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김제 망해사로 향했다. 죽산을 거쳐서 광활면에 들어서니 들녘에는 온통 가을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 추수가 시작되기 전, 흠결 없는 하늘과 누런 들판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옆에 앉은 큰딸 입에서도 연신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나는 그런 내 딸의 웃음을 담아두고 싶었다. 코스모스 꽃무리 속에 딸을 세워놓고 이리저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참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포즈를 취하던 딸이 슬그머니 한마디를 했다.

“도윤이가 코스모스 보고 싶다고 했는디….”

내내 제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방송반 활동을 했던 딸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방송이나 연극・영화 관련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평생 교단에만 섰던 내 눈에는 그런 딸이 ‘철없는 사람’으로만 보였었다. 우여곡절 끝에 딸은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복수 전공까지 하면서 자격증도 여러 개 받았다. 길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 공부도 했다.

그런 큰딸이 결혼 후에는 아이들 어미로만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침마다 제 동생을 대신하여 조카딸까지 돌보는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서 은근히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딸은 어미보다 훨씬 야무졌다. 제 자식들과 조카딸과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나날이 즐겁다고 했다. 태생적으로 남자 아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조카딸이 채워주는 기쁨도 크다고 한다. 냉장고 한 대로 살림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냐는 내 물음에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조금씩 자주 장을 보니까 굳이 김치 냉장고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우유팩을 말려서 단골로 다니는 유기농 식료품 가게에다 가져다주면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고 나더러도 우유팩 모아달라는 당부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은 정육점에 들르자고 했다. 며칠 전에 돼지 족발이 먹고 싶어서 하나를 주문했는데 아들 녀석들 먹이고 나니 남은 게 적어 부부는 입맛만 다셨노라고 했다. 이번에는 생(生)족을 사다가 직접 삶겠단다. 나는 묵직한 생(生)족발 꾸러미를 들고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빨갛게 철들어가는 단풍나무가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햇살 좋은 가을날이었다.  

                                                      (2020.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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