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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신팔복
작성일 2020-11-01 (일) 16:24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93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전주안골수필문학회 신팔복







 ‘평화의 소녀상’을 생각할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든다. 지난달 독일에 세운 소녀상이 일본 정부의 항의로 철거될 뻔했었다. 다행히도 건립추진위원회와 3,000여 명의 베를린 시민과 6,300여 명의 네티즌들이 철거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독일법원은 이들이 낸 철거반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에 있는 세 개의 소녀상처럼 철거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곡물의 공출, 자원의 수탈, 젊은이들의 강제징용과 징병을 비롯하여 앳된 소녀들을 꼬여 이역만리 전쟁터로 끌어가 일본군 위안부로 농락했다. 꽃다운 시절의 푸른 꿈을 송두리째 짓밟아 시궁창 속에 빠뜨렸다. 마치 전쟁 소모품처럼 현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다.



 일본제국은 조선의 약세를 틈타 침입해 들어와서 내정간섭을 시작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을사늑약을 체결했으며, 왕권을 무력화했다. 결국, 경술국치를 계기로 우리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아가 버렸다. 전쟁에 미친 일본제국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치르고 나서, 만주국을 세워 통치하더니 중국 본토를 정복할 목적으로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종전될 때까지 8년 동안이나 싸웠다.



 일본의 야욕은 점점 더 커져 1940년 7월 아시아는 일본이 해방시켜줘야 된다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전장을 넓혀갔다. 일본이 말하는 대동아전쟁은 1941년부터 시작된 태평양전쟁으로 1945년 일본은 두 발의 원폭 세례를 받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1942년에는 프랑스가 지배하던 인도차이나반도와 미국이 지배하던 필리핀,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인도네시아 등을 침략하여 승리로 이끌어갔다. 미얀마와 태국을 빼앗고 남양군도와 뉴기니까지 이르렀다. 이때 징용되어 끌려간 조선인 노무자 5,800여 명 대부분은 그곳에서 죽었다.



 일본군은 가는 곳마다 점령지의 처녀와 유부녀를 총기와 칼로 위협하고 아무 곳에서나 강간과 성희롱을 저질렀다. 외출하면 술 취한 상태로 행패와 폭행을 일삼았다. 현지 여론이 높아지자 일본군은 그 대책으로 본국 대본영의 허가를 얻어 1938년부터 민간인이 운영하던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만주의 관동군, 천진을 중심으로 한 북지나군(지나=China), 상하이의 중지나군, 난징의 남지나군 등 약 36만 명이었다. 이때 일본인 매춘여성, 조선인 여성, 대만인 여성, 중국 현지 여성들을 대폭 늘려 위안부로 삼았다. 헌병대는 위안소 옆에 초소를 짓고 외인의 출입을 막고 위안부의 도피를 철저히 감시했다. 이때만 해도 3,000여 명이 넘는 위안부가 있었는데 조선인이 약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귀화한 일본인 교수가 자료를 수집해 펴내 책<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자료>에 공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면서 필리핀,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 등지를 공격하는 남방작전이 이뤄졌다. 곧이어 미국 하와이 진주만도 공격했다. 병력이 무려 200만 명이 넘었다. 그 수를 헤아리면 얼마나 많은 위안소가 있었겠는가? 이때 조선 여성 2,500명 이상이 동원됐다고 한다. 심지어 처녀공출이란 말이 생겼으니 공부시켜준다, 취직시켜준다는 얄팍한 꼬임이 더 통하지 않게 되자 강제로 붙잡아 개처럼 끌고 갔다고 강일출 피해 할머니는 증언했다. 군대의 요청이 있으면 일본 내무성이나 통감부에서는 황명이라 해서 절대적으로 협조했다. 총칼 든 헌병들의 감시 아래 전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항에 모였고 또다시 배를 타고 몇 날 며칠 전쟁터로 끌려갈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가는 도중에도 일본 장교가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죽을레야 죽을 수도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철창에 갇힌 성적 노리개였다. 일요일이 두려웠고 휴일이 싫었을 것이다. 떼 지어 몰려오는 일본군에 시달리고 심지어 성병에도 시달려야 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운명을 한탄하며 고향을 그리워했고 가족이 보고 싶어 눈언저리가 짓무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막막하고 한숨으로 이어진 비참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밝은 달도 원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2011년 12월 14일 김운성 부부 작가의 작품으로 한국 일본군 강제위안부 대책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시민 모금으로 세웠다. 단발머리에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던 할머니들의 당시 14세에서 16세 소녀의 어린 모습을 그렸다. 꽃다운 소녀로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위안부로 참혹했던 삶을 위로하고 철저하게 유린당한 명예와 인권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1918년 기준으로 전국 110여 곳에 세워져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중국, 독일 등 외국 여러 곳에도 설치되어있다. 이는 인간이 저지른 몰지각한 전쟁에서 이제는 여성들이 성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 당시 20여 만 명으로 추정되는 성노예 희생자 중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9명이었는데 올해 1월을 기준으로 생존자가 단 19명밖에 남아있지 않다. 고령에다 가슴에 쌓인 정신적 피해를 견뎌낼 수도 없고 남은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이승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의 아픔을 잊고 가해자를 용서하며 미래의 화합을 기원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지만, 아직도 역사를 왜곡하며 사죄는커녕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로 일축하는 일본의 태도는 국제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만일 저들이 당한 일이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일본군위안부는 없었다며 하물며 매춘부라니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생각할수록 정말 괘씸하고 원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력이 약했던 우리의 과거를 뼈에 새겨 잊지 말고 일본의 잔학상을 후손들에게도 널리 알려야 한다. 나는 이 순간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떨린다.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하고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의 명복을 빌며 삼가 머리를 숙인다.

                                                                         (20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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