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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남숙
작성일 2020-09-05 (토) 06:47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28      
고집쟁이 내 동생
고집쟁이 내 동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일어났어? 대전 넷째가 집으로 들어갔다네.”

무뚝뚝한 말투로 안부를 전하고서 내 대답도 듣기 전, 제 용건이 끝났으니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자신을 서운케 한 넷째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제일처럼 좋아라하며 새벽같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얼마 전, 그의 생일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며 남을 대접하기 좋아하던 우리 집 습관대로, 옛날 같으면 큰 잔치로 시끌벅적 했을 그의 칠순(七旬) 이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와 단둘이 저녁을 먹었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동생이다. 그럼에도 넷째의 소식이 들려오니 새벽같이 내게 알려주었다. 맏이도 아니면서 맏이노릇을 하는 한(恨) 많은 내 아우는 왠지 생각만 해도 코끝이 시리다. 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세 사람’중의 하나인, 내 남편과 큰아들, 그리고 이 동생은 해방둥이 넷째인 바로 내 남동생이다. 10남매의 자녀를 낳으시고 미래 지향적이신 아버지는 현실을 생각지 않고 잘 나가던 직장도 접고 일찍 정치(政治)에 뜻을 두셨으나 낙방의 고배(苦杯)를 마셨다. 문전옥답은 물론 어머니의 패물까지도 모두 날려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져 생활도 자녀들의 학업도 문제가 많았지만, 큰형은 맏이라 하여 어려운 환경에도 대학까지 보냈다. 공무원이 되어 결혼 후 분가(分家)해서 자신의 생활을 하면서 맏아들로서의 특권만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남은 가족들과 집안 모든 대소사는 모두 둘째의 몫이 되었다. 더욱이 수년전 수몰(水沒)되었던 전답을 담보로, 농협(農協)에서 대출을 받아 6천여 평을 개간하여 온 식구가 매달려 힘겹게 농사를 지었지만, 소출로는 대출금 상환은커녕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여 빚만 쌓이고 있었다. 해마다 빚은 늘어나고 전답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동생은 공무원(公務員)의 월급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 년도 못되어 자신의 꿈과 함께 사표를 내던지며, 밑도 끝도 없는 집안을 일으키려 농촌에 뛰어들어 묵묵히 농사꾼의 길을 걸었다.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었다. 좀처럼 자식들에게 매를 들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동생에게 매질을 하셨다. 그러나 동생은 요지부동 그 매를 다 맞고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공산당과 고집 센 놈이 제일 나쁘다.” 하시며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듯 동생은 고집쟁이다. 그는 빚을 갚지 못해 소유권(所有權)이 농협으로 넘어갔던 전답(田畓)을 혼자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과거 우리 집안의 위상을 되살려 고향을 찾는 형제들의 자존심(自尊心)을 지켜 주었으며, 특수부대 출신으로 전역한 후, 농촌지도자, 최연소 88올림픽준비위원 등 우리나라 인명사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지역에서는, 그를 멘토로 삼아 자신들의 가정사를 상의하고 그를 믿고 그의 행동, 말 한마디가 곧 법(法)이고 절대적인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맏형이 장자(長子)라며 유산을 차지하겠다고 나섰다. 빚이 있어 어려울 땐 빚도 유산(遺産)도 상관하지 않겠다던 그 맏형이, 태도를 바꿔 장자의 위치를 찼겠다며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어린 동생들은 과거의 과정은 모른 채 편 가르기를 하고 있어 오해만 쌓였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맏형은 물론 많은 형제자매들의 모든 어려움을, 제 일처럼 말없이 먼저 해결하곤 한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실직하여 생활이 어려운 형제, 몸이 불편하여 위기를 맞은 형제 등 일도 많고 탈도 많은 형제자매들로 인해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새벽이나 밤중이라도 언제 어디든지 맨 먼저 달려간다. 형제 누구 하나 소홀히 대하는 일이 없었다.



고향에서 태산같이 집안을 지키며 세상을 달관한 듯, 기쁨도 슬픔도 원망도 오해도 가슴에 묻고 먼 하늘을 바라보듯, 나와 헤어지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뒷모습에 또 내 코끝이 시렸다. 넉넉할 때 도움보다 어려울 때 작은 도움이 더 큰 힘이었음을 강조하며, 그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간 나의 서운함을 위로하고 있다. 내 무능 탓일까? 개성이 강한 내 형제들! 너무 멀리 왔나보다. 옛날 해외 가족여행과 버스를 대절하여 국내여행을 다닐 때가 그리워진다.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데 모여 웃음꽃을 피울 날을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옹고집이 아니면 견디지 못했을 파란만장한 우리 가정의 희로애락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내색하지 않고 살아온 내 동생 고집쟁이, 그는 오늘도 새벽에 늦잠 자는 나를 깨운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개성들이 유별나다. 형제들이 많아서 제 몫을 찾으려는 듯 그 누구하나 만만치가 않다. 큰형 큰누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타협할 줄 모르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만 돌보며 살아가는 위인들이다. 일찍이 생활에서 물러나신 아버지를 대신해, 언제부터인가 온갖 크고 작은 모든 궂은일은 이 둘째의 몫이 되었다. 누구하나 농사비용은커녕 농사철에 손가락 한 번 거들지 않았어도 가을이면 햅쌀을 찧어 집집이 보내고, 해마다 손수 개와 염소를 키워 돈이나 대가 없이, 한약재를 넣어 몸보신 보약으로 매년 그 많은 형제 부부들에게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개소주며 염소즙을 만들어 보내지만,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인사 한마디 듣지 못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전 넷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었다. 1남 2녀를 둔 동생네 부부지간에 오해가 깊어 사네 못 사네 몇 년간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결국 십여 년 간 별거(別居)를 하다 자녀들이 장성하니 특별한 합의 없어 못이기는 척, 넷째가 본집으로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워 새벽같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도 같이 기뻐하며 “잘 했구나, 이제 근심하나 덜었네.” 라는 말은 했지만 나도 사실은 넷째에게 감정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17세에 국가고시에 합격했으나 생일이 지나지 않아 미성년자로 임용되지 못했었다. 그 당시 신문에 “동심 울린 공무원 시험”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며, 만 17세가 되던 다음날 공무원 임명장을 받고 면사무소에 출근을 했었다.



 그런데 공무원 임용 1년 만에 19세짜리가 면장(面長)에 도전하겠단다. 이렇게 넷째도 우리 집 괴짜중 하나다. 결국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겠다며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아직도 집안이 어려워 뒷바라지 할 형편이 아님에도 제 뜻을 위해 도전하겠단다. 또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 근처에 방을 얻어 시험공부를 하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지만, 성공하고 나서도 나는 부모님이나 본인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도 내가 중매해서 성사시켰다. 그러나 부부지간에 화목할 땐 자기들의 노력이라며 내 수고가 뭐 있느냐 하면서도, 갈등이 빚어지면 내가 좋은 사람 고르지 않았다고 원망을 퍼 부었다. 나도 지난날을 생각하면 서운하고 아쉬운데 나보다 더한 둘째는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 돌부처인 양 변하지 않는다.



형과 아우들을 하나하나 내 일같이 평생을 챙겨주었건만, 자기네 일들이 바빠서인지 막상 둘째동생 칠순을 맞았어도, 누구하나 찾아오기는커녕 “축하 한다”는 안부 하나 묻는 이가 없다. 앞에 앉아있는 동생의 안색을 살펴봐도 서운해 하거나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옹고집이 아니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그 많은 파란만장한 삶을, 무표정으로 덮고 사는 고집쟁이 내 동생에게 맘속으로 빌어본다. 한(恨) 많은 고집쟁이 동생아, 더 건강하자! 우리도 이만하면 잘 살아왔지? 나보다 더 큰 너의 희생으로, 남은 형제들의 문제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우리 서로 마주보며, 이렇게 환하게 웃어보자.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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