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정성려
ㆍ작성일	2020-09-02 (수)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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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440

어느 시골장날 풍경
어느 시골장날의 풍경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정성려

3일, 8일이면 어김없이 장이 선다. 장날은 도심을 벗어난 시골에서 5일마다 물건을 사고팔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공산품 값은 대체로 싸고, 채소나 생선도 싱싱하고 싼 편이다. 명절이 다가오는 대목장이 서는 날은 더 할 나위 없이 시장통로는 사람들로 붐벼 장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신명나는 풍경은 5일 장에서나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5일마다 장이 서기에 이날을 기다리는 시골 아낙네들이 많다. 모처럼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장에 나와 필요한 물건을 사고 국밥도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에 속한다. 우리 마을에서 조금 지나 소양천을 가로 지른 긴 다리를 지나면 장터다. 장날이 되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특히 사람 사는 여러 모습을 볼 수가 있어 가끔 찾는다.

오늘은 28일 끝자리가 8일이라 장날이다. 파장이 되기 전에 가볼 요량으로 서둘러 일을 마치고 찾았다. 동쪽에는 검은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 소나기를 퍼붓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찾은 장터는 햇빛이 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장날이 맞는 걸까?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싶어 멍하니 서서 날짜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장날이 맞다. 북적거랴야 할 장터는 너무 한산했다. 파장이 될 무렵이면 장사꾼들은 물건을 다 팔고 가려고 목소리를 높여 호객을 한다. 나처럼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아수라장 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썰렁하지? 곰곰 생각해 보니, 몹쓸 코로나19가 시골 장터까지 파고들어 영향을 미친 탓이다. 얼마 전에 이곳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었다. 장터가 한산한 이유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넘어서서 외출이나 활동하기가 무척 신경이 쓰이는 시기다.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들이 취소되었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음식점은 더 불안하여 외식조차 하기가 두렵다. 이렇게 시골 장날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요즘은 더 심각하여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볼 수가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야 할지 걱정이다.

지난 봄날,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교문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너희들이 와야 학교는 봄날, 보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들이 걸어 놓은 것이다. 문구를 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었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에 학생이 없고,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운동장이나 교실이 텅텅 비어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얼마나 보고 싶고 만나고 싶으면 이런 문구를 써서 걸어 놓았을까 싶어 짠했다.

둘째딸은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다. 손녀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축하를 받아야 하는 입학식도 못하고 담임 선생님 얼굴도, 친구들 얼굴도 모르고 지내다가 겨우 일주일에 한 번씩 등교를 한다. 등교를 해도 친구들과 이야기도 못하고 칸막이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만 하고 온다고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되기에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어린 손녀가 오죽 학교에 가고 싶으면 “코로나 부셔버리고 싶다.” 고. 했다고 한다. 안쓰러웠다. 현재 사설학원은 온라인으로 영상을 보고 집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어린 시절에 선생님께서 미래에는 화상으로 회의하며 재택근무하고 화상으로 공부를 할 거라고 배웠다. 어릴 적에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설마 그럴까 했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미래가 지금 현실로 다가온 것 같다.

코로나 2단계 격상 조치로 온 국민들이 많이 긴장하고 있다. 금지된 사항이 많아져 더 어렵게 되었지만 온 국민의 협조가 절실할 때다. 서로 조심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러다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멀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시골 장날의 풍경도 예전과는 완연히 달랐다. 손님이 없는 장터는 괴괴했다. 어쩌다 지나가는 손님과 눈을 맞추려고 빤히 바라보지만 손님은 장사꾼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 발걸음을 멈추기는커녕 물건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시들어가는 채소만 만지작만지작 위아래를 바꿔 놓고 싱싱하게 보이려고 손을 놀린다. 싱싱하던 생선도 금방이라도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을 잃고 눈은 흐릿해지고 축 늘어져있다. 가는 손님을 잡아 보려고 예상 가격보다 싸게 소리쳐 보지만 괜스레 헛수고다. 모두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노력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 5일장날도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2020.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