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나의 봄은 두 군데서 온다. 먼저는 자연이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호흡을 시작하자 새순이 돋았다. '벌써?' 하는 사이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산으로 내려앉았다.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던 까치 두 마리가 사라졌다. 아니, 이파리가 춤을 추며 연출하는 봄의 교향악에 묻혀버렸다. 까치가 봄을 물고와 반갑다마는 나뭇잎 때문에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다시 올 때는 더운 공기를 몰아내고, 형형색색의 나뭇잎을 하나 가득 물고 오겠지.
또 다른 봄은 노래에서 온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아버지는 대전에서 목회를 하셨다. 시골에 한 번씩 오시면 축음기를 틀어주셨다. 나는 신바람이 나 동네친구들을 다 불렀다. 태엽을 감고, 검정색 둥근 판위에 뾰족한 침을 올려놓으면 돌아가면서 노래가 나왔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숨을 죽였다. 참으로 신기하게 느꼈다. 그 중 개구쟁이 친구가 ‘이 속에 사람이 들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엄정한 표정으로 손목을 내밀며 ‘암, 주먹만 한 사람이 들어있지’ 하셨다. 친구들은 ‘으악~’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 모습이 엊그제 일만 같다.
아버지는 언제든지 ‘봄’노래를 제일 먼저 들려주셨다. ‘봄’을 여섯 번, ‘봄이다.’를 네 번 연거푸 부르며 이어지는 노래였다. 아쉽게도 가사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런데도 봄이 오면 그 노래의 첫 소절이 무시로 떠올라 혼자서 흥얼흥얼거렸다. ‘봄이 되어서 봄노래를 부르는 건지, 내가 봄을 노래하니까 봄이 오는 건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했다. 올해도 흥얼흥얼하는 사이에 봄이 고개를 내민다 싶었는데, 어느덧 샛노란 빛이 온 산을 덮었다.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럭키아파트에서 3년째 살고 있다. 아파트 전면에 야트막한 도당산(陶唐山)이 있고, 그 산을 중심으로 인후공원이 들어섰다. 공원의 산중턱 배수지에서는 가가호호 물을 나르고, 산정상의 인후정(麟後亭)은 지친 산객들을 싸안으며, 그 아래 편백나무 숲에서는 피톤치드 향이 폐 속을 파고든다.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즐비하지만 피톤치드 함량은 침엽수가 제일이다. 그 중에서도 피톤치드의 황제는 단연코 편백나무다. 인후공원이야말로 질 좋은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상쾌함이 심신을 풀어주니 자연과 교감하는 천혜의 숲이다. 그래서 난 편백나무 숲을 가리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른다.
피톤치드(Phyton cide)란, 그리스어로 ‘식물’인 피톤(Phyton)과, ‘죽이다’를 뜻하는 치드(cide)의 합성어로, 대자연의 숲에서 생산되는 모든 살균성 물질을 뜻한다. 특히, 오전 10시부터 2시 사이에서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가장 높다. 이때 활발하게 작용해서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능 강화, 기억력 상승, 살균작용의 효과가 극대화 된다. 여기에 까치까지 있으니, 그 소리를 들으면서 맡는 피톤치드 향내는 ‘삼림의 정기’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우리 아파트에서 인후공원까지 800여m쯤 될까? 그 산자락에 빼곡한 나무들은 여린 바람에도 흐느적거린다. 그 나무 끝머리 간당간당함을 겨우 면한 곳에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도당산 터줏대감인지,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은행나무에서 놀던 까치가 따라왔는지는 모르겠다. 까치의 수명이 2년이라지만 10년도 살 수 있다. 해맑은 숲속이니까 우리와 함께 10년 지기로 살기를 바란다.
까치는, 참새목 까마귓과에 속한다. 상서(祥瑞)로운 것이라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 새다. 여섯 살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 식탁에 앉으면 아내는 공원의 까치와 맞닿고, 나는 무주로 가는 길의 저 멀리 운장산과 마주친다. 겨우내 아내는 까치의 친구요, 나는 무주 쪽 하늘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 아내는 나뭇잎 때문에 까치와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까치가 다시 돌아와 봄을 물고 오면, 우리의 시름도 깊어지고 주름살이 더 늘어나겠지. 그래도 까치는 와야하고 친구라야 한다. 까치야, 그 숲속에 좋은 소식을 늘 전해다오.
공지사항
문화 류씨 이야기
운조루 11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