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왕벚꽃과 철쭉이 만개한 완산공원에 갔다. 그 많은 꽃들은 원색의 화려한 빛깔들로 눈이 부시고, 막 피어 풋풋함이 주는 향기가 싱그러웠다.
바람이 만들어 주는 나무들의 흔들림이, 가지마다 피어난 꽃들과 같이 춤을 추듯. 허공에다 이리저리 그림을 그렸다. 온통 꽃 속에 묻혀 추억을 만드느라 사진 찍기에 바쁜, 많은 사람들과 꽃들의 풍요가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긴 시간 누군가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해 두 해 땀 흘려 심고 가꾸는 노력과 인내로, 공원 한 비탈을, 각양각색의 철쭉들과 왕벚꽃나무의 군락지로 만들어 놓았다.
사이사이 해당화가 나긋나긋한 몸놀림으로 바람을 가르는 풍경에 친구는 '예쁘다! 예쁘다!'를 연발하는데, 꽃구경 사람 구경에 조금 지친 것 같아 육모정에서 잠깐 쉬었다 가자고 친구를 불렀다. 잠시 앉아 있다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서둘러 걷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밀려 공원에서 내려왔다.
전주천에 사람들만 다니는 낮은 다리를 건너 남부시장 천변으로 올라왔다. 천변 가계마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나물들을 보며, 겨울보다 더 추웠던 봄날이었는데도 때맞추어 꽃을 피우고 나물들을 키우는 자연의 이치는 거스르지 못했나 보다. 취나물, 드룹, 달래, 쑥, 오이, 토마토를 각자 필요한 만큼 사들고 시장을 나오려는데, ‘ 남부시장까지 와서 그냥갈 수 없잖아?’ 하며 언니가 순대집으로 앞장섰다.
순대모듬 한 접시에 막걸리 한 병을 따르니 꼭 넉 잔이 나왔다. 잔을 높이 들고 ’감사합니다!‘ 건배를 하고, 시원하게 한숨에 들이키고 다시 한 병을 추가했다.
점심에 콩나물 국밥집 겉절이와 숭덩숭덩 썰어 담은 무김치에 너무 욕심을 부려 갈증이 더 났었나 보다. 때가 지났으니 순대집도 한 산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나누며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도 한가롭고 정다운 분위기가 썩 괜찮았다. 잘 쉬어 간다고 인사를 하고 나물 보따리를 들고 자연스럽게 한옥마을로 들어섰다. 경기전 안의 나뭇잎들은 연두색으로 반짝이고, 전통문화체험에 한복체험이 가장 인기라더니 거리에서 한복 패션쇼를 보는듯했다. 생활한복, 기생한복, 커플한복,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한복데이’ 행사도 있다고 한다. 한옥마을에 소풍을 왔는지 무리지어 다니는 여린 여고생들이 취향에 맞게 차려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쳐 보기 좋았다. 전동성당, 경기전, 한옥마을 길거리마다 사진 찍느라 온갖 폼을 재는 모습들도 보기 좋고, 손잡고 팔짱을 끼고, 밀고 당기는 그들만의 시간이 소중해 보였다.
커피숍으로 가자는 친구를 말리며 가까이 의자가 있는데도, 인도와 꽃밭 사이에 경계를 만든 돌팍들에 나란히 주저앉아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목을 돌리며, 구경 중에 최고는 사람 구경이라며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오래간만에 마신 막걸리 두 잔이 지금까지 유효한지는 모르나, 이성을 허물어 느긋하고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길거리에서 노닥거리는 재미가 소소한 행복을 선물해 주어 즐거웠다.
세월이 그냥 가던가, 세월이란 무게의 버거움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평범한 일상에 새로움을 더하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했다. 함께할 이야기가 있어 더욱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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