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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전용창
작성일 2020-11-13 (금) 05:22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86      
나그네 인생

나그네 인생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그날은 아무도 모르고 도적같이 온다고 했다.
초겨울이 다가오는지 길가에 은행잎이나 뒹굴고 있었다. 등에선 스산한 바람이 감돌았다. 그런 초겨울 날씨에 사촌 형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구순을 바라보나 한 달 전만 해도 선산에서 벌초하셨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날 벌초를 하시는 모습이 다소 수척해 보였으나 그래도 예초기를 자유롭게 흔들고 계셨다. 며칠만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도 안타깝다.

형님은 젊은 날 집안의 자랑이었다. 인근 동네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완주군 ‘봉동 지동리’ 시골에서 법대를 나와 농협에 취직했으니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때만 해도 농협은 농민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비료가 귀하던 시절이라 농협에서 비료구매 표를 받아야 살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농민에게는 저리로 대출을 해주기에 농협을 다니는 친척만 있어도 기가 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도, 두 분의 작은아버지도 그런 조카를 자랑스러워했다. 명절 때나 집안 대소사에 가족이 모이면 사촌 형님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분이 며칠 전 고인이 되신 우리 집안의 종손인 ‘Y 형님’이다.

 그분은 똑똑하기도 했지만, 집안의 종손이기에 할머니는 ‘우리 용한이’라며 우리를 힘주어 불렀다. 나의 친형은 사촌 형님보다 두 살이 많다. 그분은 고등 대학을 나왔기에 좋은 직장생활을 하였으나 형님은 한학을 배웠기에 농사를 짓고 살았다. 명절날에 큰집에서 만나면 ‘Y 형님'은 양복을 입고 왔지만, 형님은 두루마기 한복차림이었다. 나는 두루마기를 입은 형님이 더 훌륭하게 보였다. 그때는 서로가 각별히 지냈기에 큰 집에 가는 게 즐거웠다. 기일 날 지방과 축문은 한학을 하신 형님이 글을 쓰고 낭송했다. ‘Y 형님’은 형님을 ‘용승 형님’이라 깍듯이 불렀다. 그렇게 다정했던 사이였는데 돈 때문에 원수가 되고 말았다.




벌써 50년도 훨씬 전 일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사촌 형님은 자주 우리 집에 왔다. 내가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아버지에게 서울 개발지역 땅을 같이 투자하자는 것이다. 일 년만 지나면 가격이 몇 배 오른다며 호기심을 부추겼다.  

“시골에서 농사짓는데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거절하셨다.

그런데도 자꾸 설득하는 바람에 그만 넘어갔다.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돈을 변통하여 주셨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도 투자에 참여시켰다. 두 분이 조카를 믿고 투자한 일이 그만 사달이 나고 말았다. 3~4년이 지나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만 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사촌 형 집에 갔다. 그때 나는 병역을 마치고 대학 3학년에 복학한 때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형님을 나무랐다. 생활이 어려워진 작은아버지는 한자리 팔아서 청산하였으나, 아버지에게는 아직 못 팔았다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느 날은 팔았는데 브로커에 걸려들어 재판 중이라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또 2년이 또 지났고, 아버지는 아끼시던 전답을 팔아 빚을 청산하시고는 세상을 뜨셨다.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치부책에서 서울 땅의 지번을 발견했다. 혼자서 무작정 상경했다. 관할 법원을 찾아가 지번을 열람했다. 해당 지번이 환지가 되어 00블록 00 지번으로 바뀌어 있었다. 등기부 등본을 떼었다. 소유자가 ‘Y 형님’으로 되어 있었다. 등본을 떼어 와서 시골에 사시는 큰 형님을 찾아갔다. 서류를 보시더니




“이런 나쁜 놈이 있어?”

큰소리를 치시더니 당장 작은아버지 집에 가자고 했다. 그때 집안의 어른은 전주에 사시는 작은아버지였다. 땅이 버젓이 있는데 다 팔았다고 거짓말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해야겠다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그럴 수는 없다며 며칠간 여유를 달라고 하셨다. 얼마지 않아 작은 집에서 작은아버지, 큰형님, ‘Y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만났다. 내가 서울에 갔다 온 이야기를 했고, 형님은 “네가 사기꾼이 아니냐?”고 큰소리치셨다. 결국은 본전도 안 되는 1,200만 원을 주기로 하고 마무리 지었다. 본전은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천 만 원쯤 되는 듯했다. 그 뒤 ‘Y 형님’은 큰형님에게 700만 원만 주고 전부라고 했다. 그날 각서를 쓰려 했으나 작은아버지께서 보증을 한다며 각서는 무슨 각서냐고 하여 쓰지 않았다. 큰형님은 남은 돈을 달라하고 ‘Y 형님’은 약속한 금액을 다 주었다고 했다.

시제 때마다 서로 고성이 오갔다. 형님은 말했다.
“너는 우리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야?” 하셨고
‘Y 형님’은 두 살 어리다며 형님이라 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불러 버렸다. 그때마다 나는 생전에 아버지께서 빚 때문에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묻고 두 분이 화해하시라고 했다. 큰형님은 구순이 되던 지난해부터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러나 ‘Y 형님’은 건강했다. 한 달 전 벌초하고 있는 형님을 만나 서로 화해를 하시라며 문병을 권했지만, 본인한테 ‘살인자’라 했다며 안 간다고 했다. 화해하지 않고도 천년만년 살 것 같았던 ‘Y 형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저세상으로 가셨다. 동생들과 빈소에 갔다. 영정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잠깐 살다 가는 나그네 인생인 것을 왜 몰랐습니까? 돈을 쓰지도 못하시고…. 다음 세상에서는 화폐가 없는 세상에서 만나요.” ‘Y 형님’의 명복을 빌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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