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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20-11-09 (월) 18:25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89      
정은씨의 눈물
정은씨의 눈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당신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베풀어 주는 시혜를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을 받기 위해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교육청을 방문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위와 같이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지원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었음을 그곳에서 하나같이 절감했을까?

 2021학년도 이료재활전공과 신입생 면접이 있었다. 총 네 명을 만났고, 각자 눈물겨운 사연으로 중도에 장애를 입어 이름도 생소한 특수학교 문을 두드리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지독한 절망감에 생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부여잡은 지푸라기 희망이었다.

상희씨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서 신장 투석을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고 했다. 설상가상 시력까지 나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대학병원에서 어엿하게 간호사로 근무했던 유능한 워킹맘이 하루 아침에 거동조차 힘든 장애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도록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살림을 꾸려오고 있었다.

 정은씨도 30대 젊은 엄마 지원자였다. 이쪽도 날벼락 같은 병마에 당황하고 원망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초등학생 딸들이 있어서 버텨야 했고, 다발성신경염이라고 진단을 받은 직후에는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었단다. 그나마 지금은 건강 상태가 호전되어 신체 활동도 가능해졌다며 웃었다. 학교에서 직업 교육도 받고 재활 기술도 열심히 익혀서 본인도 꼭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다며 한껏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천성적으로 밝은 성품으로 보였던 정은씨가 교육청 면접을 다녀온 그날밤 9시가 넘어 내게 전화를 했다. 오전에 있었던 면접 현장에서 곤혹스러운 질문이 있었다고 전해들은 터였다. 정은씨는 펑펑 울고 있었다. 면접을 다녀와서 그 시간까지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쏟고 있었다.

“선생님, 저 친정 엄마 계시는 광주로 가려고요. 광주학교는 이런 면접 안 봐도 된다니까. 저 진짜 열심히 살아보려고 준비했는데…. 선생님 우리 엄마가 저 공부 다 못시켜 주신 건 사실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랬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했는데 제가 맏이라서…. 남편도 모르게 검정고시 준비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선생님 남편에게는 자존심 때문에 학력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졸업장 있어야 맹학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준비한 건데 왜 그런 것까지 제가 그 분들한테 설명해야 해요? 그것도 남편 앞에서….”

 광주에 계신다는 친정 어머니도 정은씨 소식에 한스러운 눈물을 쏟으셨다고 했다.  평범하게 살다가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된 것도 기암할 노릇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겠다고 쭈볏쭈볏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며 학교라는 생소한 세계의 문을 두드린 것이 무슨 문제였을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업도 포기한 채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가 왜 그 시점에 뼈아픈 눈물을 쏟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도록 나는 정은씨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엄마로서 정은씨 고충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엄마, 왜 치즈를 계란프라이라고 해? 그것도 몰라?”

하는 딸아이에게 순간 멈칫했다고, 색맹이라서 신호등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딸들이 엄마 장애를 우울하게 받아들일까 겁나 부러 농담하듯 상황을 설명한다는 그녀의 속내를 난 이해하고도 남았다.

 화가 치밀었다.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위원이면 무턱대고 개인적인 사안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질문해도 된다는 말인가? 시력이 나빠져서 사회 생활도 못하고 발이 묶여 살다가 가까스로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그렇게 고압적인 태도로 지역사회에서 어떤 혜택을 받았냐고 질문하는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정은씨가 검정고시를 봤다는 사실이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과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 면접 심사차 교육청 6층을 방문한 시각장애인들에게 관계자들은 4층으로 가라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그들은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4층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5층으로 올라가서 대기업 면접 시험을 방불케 하는 싸늘한 공기 속에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누나의 안내를 받아 나온 30대 남자 지원자는 결국 면접 말미에 위원들에게 본인도 세금 내는 시민이라고 울분을 토했단다. 그가 두 눈을 실명하여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름 아닌 교육청에서 확실하게 체감했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그 뿐인가?

2020학년도 신입생 전형에서도 시각장애2급 대상자를 탈락시켜 재심 절차를 거친 사례가 있었다. 문제는 재심이 진행되는 동안 교육청을 오가고 서류를 제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사회적 약자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개개인의 성격이 있다. 개성이 있고 외향적인 이가 있는가 하면 물리적인 경직이 마음까지 위축시켜 매사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이들도 있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못마땅한 것을 못마땅하다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삭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분명하게 의견을 게진하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정일 게다. 하지만 소수를 배려하지 않고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처럼 굴러가는 사회 시스템은 아쉬운 놈이 우물 파는 식으로 약자들의 비용과 눈물을 집어 삼켰다.

 정은씨는 모멸감에 진땀을 뺐다. 그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통곡하고 상처를 헤집으며 고통에 몸서리쳤다.  얘기치 못하게 아내의 학력을 알게 된 남편은 오히려 아내의 자존심이 다쳤을까 염려했다고 한다. 혹여 그 일로 가정의 불화라도 있었을까 불안했던 나는 정은씨 말에 안도하며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누군가는 정은씨의 그런 마음을 자격지심이라고 공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앞에 미묘하게 우위를 선점하는 사람들은 쉽게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체가 건강하다는 사실 하나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앞에 대단한 권력이라도 되는 양 우쭐거리는 사람들이 그렇다. 비린내 나는 그 힘이 어디까지나 정당하다는 듯 위풍당당하기까지 할 때, 심지어 그 권력을 남용하려고 들 때 나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장기하 산문집 ‘상관 없는거 아닌가’에 나오는 문장 하나가 떠오르면서 그들의 근거없는 오만과 무례에 찬물 한 바가지 끼얹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인간이라고 해서 돼지나 대파 앞에서 으스댈 이유는 전혀 없다.”

하물며 신체 건강한 인간이 신체 불편한 인간 앞에서랴.

 정은씨가 긴 터널에서 어렵게 발견한 한 줄기 빛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물나게 아프고 슬퍼도 어린 자녀들과 계속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깊은 상처에 메타놀을 드리붓는 쓰라림일지언정 아이들에게 엄마의 장애가 부디 그늘을 드리우지 않도록 엄마 표정부터 밝았으면 좋겠다. 가족에게 쓸모 있는 존재, 나아가서 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정은씨의 내일이 빛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같은 어려움을 안고 사는 동무들과 서로 의지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경제 생활도 직접 영위하며 건강한 자아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료재활전공과 과정은 성인 중도실명자들의 삶을 180도 변화시킨다. 인쇄업을 하다가, 운동 선수로 국가 대표까지 하다가, 대기업에 다니다가, 목회를 하다가 그야말로 청천병력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가장들에게 다시 살아볼 용기와 기술을 전수하는 곳이니까. 절대 웃을 일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두 번째 인생의 엄두를 낸다. 심지어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후배들 학습에 보탬이 되고 싶어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하는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꿋꿋하게 버틴 정은씨는 이미 훌륭한 엄마다. 하루 아침에 눈앞이 흐려졌는데 본인의 고통보다 가족들을 걱정하며 가정의 화목을 지켜온 정은씨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저시력 상태로 혼자 공부하는게 녹록치 않았을 텐데 남편에게조차 말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 의지는 가히 표창장 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은씨가 사회 생활을 꿈구며 꾸준히 자신을 연마했던 그 정성이 가슴 뭉클했다. 눈은 안보이고, 아이들은 커가고, 행동 반경은 좁아지고, 남편에게는 미안한데, 그럼에도 웃어야 했던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먹빛이었을까?

적어도 상처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섣부르게 평가하려고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줄 수는 없을까?

무턱대고 무시하지 말고, 경솔하게 단정짓지 말고, 담백하고 깔끔하게 필요한 질문만 합리적인 선에서 주고 받으면 충분하다. 필요 이상의 동정이나 호기심에는 약자들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굳이 그 나이에 구차한 심사 절차 다 밟아가며 특수교육을 받아보겠다고 마지막 시도를 단행했겠는가?

관계자들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막다른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절박한 몸부림인지를…. 자신들의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냥한 폭력일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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