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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유훈
작성일 2020-09-10 (목) 05:20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45      
다시 찾은 그 이름 짜장면
"다시 찿은 그 이름 짜장면"




김유훈 (밴쿠버 문협)




얼마전 신문에 작은 기사가 실렸다. 고국에서 들려온 아주 반가운 소식이였다. 그것은 '자장면'을 다시 옛 이름 대로 "짜장면"을 표준어로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잃어버린 애장품을 다시 찿은 느낌이였다.




내가 "짜장면"과 첫 인연은 나의 어린 시절로 부터 시작 되었다. 6.25전쟁이 나기 직전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피난가서 3년을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나와 우리식구들은 서울행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그 때 역전 앞에서 우리 식구는 짜장면으로 허기를 채웠는 데 나는 오랫동안 그 때 맛 본 짜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먹거리가 거이 없었고 미국에서 원조로 준 밀가루가 짜장면을 번성시키는 데 크게 공헌 하였다. 그리고 짜장면은 거의 만병통치 수준의 음식으로 인정받았다. 어디 아파도, 연탄가스 맡아 누어있어도, 반가운 손님이 와도, 그리고 어린 애들 생일에는 최고의 성찬에 속한 음식이였다. 당시 어린 나는 엄마를 따라 재래 시장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 먹고 나면 그 날은 최고로 행복한 날이였다. 어린 내 여동생은 짜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아버지께서 "너는 이담에 중국집으로 시집 보내 짜장면을 실컷 먹게 해야겠다"라고 하셨다.




우리들의 가난했던 학창 시절, 지금 그 흔한 라면조차 없었을 때 짜장면과 뗄 수 없는 사건들도 많았다. 그 때 우리들 놀이가 짜장면 빨리 먹기를 하면 어느 친구는 열을 세기도 전에 한 그릇을 비웠고, 많이 먹기 시합에 어느 애는 다섯 그릇을 먹고 탈이 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좀 짖굿게는 단체로 짜장면 먹고 중국집에서 달아난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군대 시절, 휴가 나와 짜장면 곱배기로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우리들의 배고팟던 시절 짜장면은 우리의 친구였고 추억 속에서 애환이 담북 어린 먹거리였다. 마치 빛 바랜 사진 첩속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군대의 추억까지 고이 간직된 옛 사진들과 함께 남아 있는 정겨운 이름이였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나와 짜장면 사이에 이상한 거리가 생겼다. 이 추억속의 "짜장면"을 표준말로 "자장면"이라 부르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내심 "이게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리냐?"하고 흥분 하였지만 외국에 사는 교민으로 그 힘이 없었다. 소위 "언어학자들이 만든 법이라하나?" 글세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실 때 이런 법은 안 만들으셨는 데 왜 학자들이 고지식하게 이러는 지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풍산 "류"씨인 "서애 류성룡"의 후손들을 흥분시키는 일까지 생겼다. 한글 학자들이 두음 법칙을 말하며 성씨에는 "류"를 못 쓰게 되었다고 하여 이에 화가 난 그 후손들이 법원에 소송하여 겨우 그들의 성씨를 찿았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학문 이전에 상식이 있고 이 상식들의 집합체가 마치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이 법(물 수 변에 갈 거)인데 그 순서를 뒤 바꿔서 먼저 법을 말하였으니 저항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언어에는 관습과 상식이 있기 때문이고 또한 국민적이 정서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이유 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을 같이 살아온 그 수 많은 짜장면 추억세대들의 저항이 대단하였을 것 같다. 그리고 짜장면은 전 국민의 대 다수가 좋아하는 대중 음식인데 그 이름을 건드린 것은 가히 국민 음식 모욕죄와 비슷한 형태이다.





내가 20년 전 카나다에서 살기 시작 했을 때, 그때만 해도 우리가 오랫동안 맛보았던 한국식 원조"짜장면"은 지금처럼 쉽게 맛볼 수 없었다. 중국집에 가니 "상하이 누들"이 그 짜장면의 원조라나? 하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우리가 먹는 쌀밥과 김치는 집에서 얼마던지 만들 수 있는 우리의 음식이지만 이 "짜장면"은 한국에서 온 기술과 재료가 아니고는 우리의 입맛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 당시 그리웠던 것이 바로 "짜장면"이였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원조 "짜장면"집들이 생겨나 비로서 고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바뀌고 난 후부터 나는 짜장면 집에 가서 주문하기부터 껄끄러웠다. "여기 짜장면 주세요?" 하면 종업원이 "아, 자장면이요?" 하고 다시 되묻는 말도 듣기 거북하였고, 이 표준말을 모르면 촌놈이 되는 느낌까지 들었지만 억지로 웃음으로 얼버 부린 경험이 있어 나는 그 후 짜장면을 멀리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표준어를 "짜장면"으로 되 돌린 결정을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이번 주말 추억의 짜장면 그 이름 다시 찿은 기념으로 식구들과 함께 짜장면 집에 가서 외식을 하여야겠다. 그리고, 나는 당당히 "여기, 짜장면이요"하며 주문을 할 것이다. 잠시 후 종업원이 "짜장면"그릇을 내 앞에 갖다 놓으면 나는 조용히 속삭이고 싶다. "반갑다, 짜장면아, 오랜만이로구나, 그 동안 이름 때문에 고생 많았겠구나..." , 라고 생각하니 벌써 내 입에는 침이 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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