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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병규
ㆍ작성일	2010-08-27 (금)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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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칠순
아내의 칠순(七旬)
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음력 7월 10일은 칠순을 맞는 아내의 생일(生日)이다. 스물세 살의 곱던 나이에 나와 만나 47년,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연들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긴 세월을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아내의 생일이다. 삶에 시달리고 세월에 이끌려 살아온 탓이지만 나의 잘못이 크다. 뿐만 아니라 아내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게 살아온 나였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자기의 도리를 다했고, 네 자식의
어머니로서 그 힘겨운 소임을 성심으로 감당해 왔다.

남편의 자격증도 없이 아내를 맞은 나는 달콤한 신혼의 꿈은 꿀 겨를도 없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나는 노모님을 모시고 줄줄이 조카들이 있는 큰형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었다. 부모님의 유산으로 농사를 지으며 면서기로 일하던 큰형님 집은 식구가 많았고, 농토는 광작이었다. 나는 어린 꼴머슴 하나를 데리고 상머슴이 되어 농사에 전념했다. 힘겨운 농사꾼이었으나 자율권은 쥐뿔만큼도 없었다. 아내가 필요한 화장품 하나 사주지 못한 무능한 남편이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와 맏동서의 눈치를 보며 고달픈 시집살이를 했다. 한 집안에서도 남편이 능력이 있으면 아내도 대접을 받지만, 남편이 부실하면 아내도 천대를 받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무능한 나를 남편으로 둔 아내 앞에는 시집살이의 맵고 쓰린 길만 놓여 있었다. 다복한 가정에서 둘째딸로 태어난 아내는 힘든 일에 경험이 없었다. 일에 능숙치 못한 아내는 열다섯 식구의 취사며 세탁 등 집안일을 하며 고달픈 생활을 했다.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언 손을 ㅎ호 불어가며 많은 빨래를 하던 아내가 눈이 통통 붓도록 울더라는 말을 들었다. 돌 섞인 보리를 절구통에 찌어 돌을 골라내던 아내가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는 말도 들었다. 한 발짝도 자유로운 외출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집안에서만 일을 했어도 한 달에 검정고무신 한 켤레가 닳았다. 아내가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았겠는가? 이렇게 우리 내외는 머슴으로 식모로 신혼의 3년 세월을 보냈다. 고달픈 3년 세월에 큰딸이 태어났다. 나는 또 준비 없이 아빠가 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치며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반목과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있기 마련이다. 고달픈 시집살이에서 아내는 참기 어려운 상처를 받은 듯했다. 심리적 갈등과 과로에 시달리던 아내는 겉으로 내색을 못하고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쓰러졌다. 나는 한 여인의 남편과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는 무능력자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분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익산에 살고 있는 둘째 매형의 힘을 빌렸다. 고생을 할 바에야 넓은 바닥에서 경험을 쌓고 낯선 세상에 도전하고 싶어서였다. 29살의 남자가 25살의 아내와 1살의 딸을 데리고 낯선 익산 땅을 찾아갔다. 말 달구지에 아내가 혼수품으로 마련해 온 농짝을 싣고 갔다. 마구간이 딸린 단칸 셋방에 초라한 이삿짐을 풀었지만 독립했다는 해방감에서 우리 내외는 행복했었다. 그 행복은 순간이었을 뿐 우리 앞에는 고생문이 열렸다. 부딪치며 살리라는 자신감과는 달리 세상은 만만치가 않았다. 앞이 꽉 막힌 듯 막막했다. 당장 끼니가 걱정되었다. 우리 내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익산생활 3년은 우리 내외에게 황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하고도 값진 인생 수련기간이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라는 말을 실감하며 보람을 느꼈다. 힘겨운 생활에서도 우리 내외는 큰아들을 얻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을 실감했다.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용병술이다. 아내와 나는 농토가 딸린 농가를 전세로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충실한 농사꾼으로 아내와 더불어 땀흘려 일했다. 간절한 꿈을 안고 땀흘려 일하면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우리는 해마다 풍년농사를 지었다. 고달픈 농군생활이었으나 풍년농사의 아기자기한 기쁨 속에 네 자식을 두게 되었다. 네 자식들이 모두 우등상을 받아올 때면 우리 내외는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땀흘려 일하며 고향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우리 내외에게 고향사람들은 사랑과 신뢰를 보내주었다. 순수한 농사꾼으로 고향의 농협조합장에 선출되었을 때는 성공한 사람처럼 영광스럽기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한 조합장이 될까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노심초사(勞心焦思)했다.

조합장의 소임에 전념하던 나는 가정사를 모두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의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 전주에서 유학중인 네 자식의 뒷바라지, 짐 무거운 가정사, 심지어 주야로 합숙하며 일하던 20여 직원들의 찬거리까지 챙겨야 하는 고달픈 삶이었다. 과로로 쓰러졌다가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아내가 불사조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 어려운 일을 슬기롭게 감당하여 네 자식들 모두 나라에 쓰임 받는 일꾼으로 길렀으니, 아내의 공과야말로 우리 가문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아무리 고달픈 삶일지라도 챙길 것은 챙기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일 텐데, 앞만 보고 걸어온 것이 우리 내외의 지난날이었다. 노상 조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살아온 지난날이 꿈결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후회가 없다. 아무리 힘들고 배고픈 때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다. 굽이굽이 아픈 사연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고희를 넘겨 황혼에 접어든 우리 내외, 함께 웃고 함께 울던 그 시절이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챙길 것은 챙기고 갚아야할 것은 찾아서 갚아야겠다. 아내에게도 “당신은 아내로서, 네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여 승리한 아내와 어머니가 되었노라” 진심으로 칭찬하며 그 노고를 새겨 감사패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2010.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