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ㅇ이진숙
ㆍ작성일	2019-12-11 (수) 18:39
ㆍ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429

세 통의 우편물
세 통의 우편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또 한 장의 우편물이 날아 왔다. 벌써 세 번째다. 처음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왔다. 무슨 일일까, 뜯어보니 11월 1일 퇴사, 11월 14일 자격상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라는 안내까지 친절하게 쓰여 있는데, 처음 보는 것이라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마침 딸이 전화를 했길래 물어보니 별 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며칠 뒤 또 한 통의 우편물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왔다. 내용은 역시 ‘자격상실’이란다. 그러더니 이번엔 ‘국민연금공단’에서 ‘지역가입자 자격 취득 신고’양식이 배달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핀란드로 먼저 보내고 주민등록을 전주친정집으로 세 아이까지 같이 옮겼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우편물은 세 아이 이름까지 나왔다. 그 아이들 이름 만 보아도 불현 듯 보고 싶었다. 한국에 있는 회사를 그만 두고 핀란드회사로 옮겨 잘 근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런 우편물들이 오니 마음이 참 복잡하고 나 혼자 심란해졌다.

‘정말 한국과는 이것으로 끝일까?’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내 마음이 허전해지며 세삼스럽게 이 땅에는 우리 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주변 모든 나무들이 잎새를 털어 버리고 서 있는 모습 만 보아도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우리 모습 같아 서럽다. 또 텃밭 채소들은 모두 뽑히고 누런 잎들 만 듬성듬성 널브러져 있는 것도,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풀이 죽어 있는 풀들조차도 서럽게 보였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불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공중제비를 돌며 날아다닌다. 이렇게 심란한 마음에도 먹고 살 것을 챙기는 내 모습이 참 우습다. 땅이 얼면 어쩌나 늘 걱정 만 앞서다가 이런 날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아, 겨우내 먹을 대파를 뽑았다. 칼바람이 손끝을 때리고 지나간다. 누런 잎을 따내고 잘 다듬었다. 또 무도 뽑아 챙겼다. 대파는 잘 손질하여 적당히 잘라 비닐 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넣고, 무는 크게 토막을 내서 밖에 내다 말리려고 널었다. 맛있는 무장아찌를 만들어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보내고 싶어서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말한다. 아무도 없이 둘 만 사는데 김치도 사 먹지 그러느냐고, 편하게 살라고 하는 말인 줄 아는데도 그런 말조차 서운하게 들렸다.

매일 울리던 카카오톡 전화도 연말이라 바쁜지 뜸하게 한 번씩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럴수록 나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진다. 매일매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하는 일마다 열심히 노력하고, 그것에 따른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시간차가 7시간이 나니 시간 맞춰 전화하기도 어렵다. 또 주말이면 식구들끼리 모처럼 나들이를 갔을까 하여 전화를 하려다 멈추곤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에 어둡기까지 하는 길고 긴 겨울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으므로 그 시간마저도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밝고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19.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