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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오창익
작성일 2020-11-30 (월) 05:33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210      
해바라기



197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해바라기

오창익 吳蒼翼



거름을 준 논밭이 아니라도 좋다. 주인의 인정어린 손길이 닿는 화단이 아니라도 무관하다. 시골이나 도회지를 따지지 않고, 진 데 마른 데를 가리지 않고 버려진 한 뼘의 공지만 있으면 가나안의 복지(福地)인 양 뿌리를 내려 기름지게 피는 꽃이 해바라기다.

멀리 북미(北美) 대륙이 고향이라는 나그네 꽃. 이 땅에 귀화하여 영주(永住)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는 확실치 않으나, 오직 태양 하나만을 충성스럽게 우러르며 산다는 고집밖에는 별로 특정지을 것이 없는 꽃. 별난 미색(美色)도 향기도 없다.

그러나 나는 10년을 하루같이 그와 동고동락(同苦同樂), 피어린 분신인 듯 호흡을 같이하며 살아오고 있다. 우연찮게 맺어진 인연 때문이다.

꼭 14년 전, 그러니까 1962년 가을이었던가 싶다. 우연히 H일보에 실린 짧은 글이 인연이 되어 나는 인삼골 가시내 선생을 알게 되었다. 편지가 오가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통, 어쩌다는 두세 통, 나는 그 가시내 선생의 맹랑한 문재(文才)에 끌려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편지 1백여통을 날려보낸 어느 날, 나는 실로 엉뚱한 제의를 했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한 번 상경을 하든가, 아니면 사진이라도 한 장 보내 달라고. 그랬더니 오라는 사람, 기다리던 사진은 오지 않고, 잘 여문 해바라기씨 몇 알이 편지봉투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는가. 실로 맹랑한 짓이었다.

그것을 집어든 나는 "옳다, 먹는 것이로구나!" 어린 시절, 로스께에게 까먹는 재주를 익히 배운 바 있는지라 한 입에 털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필유곡절(必有曲折), 이것이야말로 그저 보아넘길 수 없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아 군침이 도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한겨울 동안 고이 모셔 두었다.

이듬해 봄이다. 나는 그 씨앗들을 하숙집 장독대 옆에다 정성들여 심어 놓았다. 굳은 땅을 뚫고 기적같이 탄생한 세 그루의 해바라기. 나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 한여름을 무성하게 키웠다.

그 해 가을이었다. 세 그루의 해바라기가 노릿노릿 익어 갈 무렵 나는 장가를 들었다. 물론 그 가시내 선생의 해바라기 품으로. 그리하여 해바라기는 하숙집에서 사글세집으로, 다시 전세집으로 전전하기 3, 4년. 쓰던 연탄집게는 두고 올망정 해바라기 씨앗은 꼭꼭 대(代)를 이어 신주처럼 모시고 다녔다. 그러기를 또 수삼 년, 금년으로 꼭 14년이 됐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하고도 또 3, 4년을 그와 같이 호흡하며 고락을 같이하는 동안에 나는 나름대로의 그가 지닌 미덕과 뛰어난 품성을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해바라기는 불타는 정열,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진 신념의 꽃이다. 그를 위압하는 담장의 높이가 열 뼘이든 스무 뼘이든 무슨 상관할 바가 있는가. 기필코 그 담장의 높이보다는 한두 뼘쯤 더 치솟고야마는,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승자(勝者)의 꽃, 담넘어 피는 꽃이다.

해바라기, 그 어떤 속박도 제약도 개의치 않는, 굴레를 스스로 끊어 버린 자유인의 꽃이다. 오씨(吳氏)집 울안에 피었다고 어찌 오씨만이 차지하는 전유물이겠는가. 앞집에서도 만져보니 앞집 꽃이다. 옆집에서도 만져보니 옆집 꽃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도 건너다보며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의 그리운 얼굴을 목축이고 가는 꽃이니 만인의 꽃임이 분명하다.

그를 울타리와 철책 따위로 막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행위는 항상 하늘에 두고 눈으로만 사는 것을, 이글이글 불타는 마음으로만 사는 꽃인 것을.

해바라기, 혹시 담넘어 피려다가 옆집 주인의 심술궂은 횡포로 꽃송이가 무참히 꺾인다 해도 그는 결코 실망하거나 요절(夭折)하지 않는다. 곁가지를 뻗어 다시 꽃피워서라도 끝내 본래의 책임량만치 씨앗을 굳혀 우리에게 주는 사명감에 넘치는 성실한 꽃, 생활인의 꽃이다.

그렇다. 혼자 고독하게 피어 있을 때도 그는 근면자립하는 생활인 본연의 자세를 결코 잃지 않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로운 벌판에 수천 수만 그루의 해바라기가 피어 바다처럼 일렁인다고 하자. 그래도 그들은 일말의 시기나 투기도 없이 서로를 부축하며 공생하는 조화를 결코 잃지 않는다.

해바라기, 찬 서리에 숨죽인 잡초더미, 연기에 그을린 구들장이 여기저기 흩어진 폐허의 땅이라면 어떠랴. 한 그루가 아직도 건재하여 창세기적인 황금빛의 열정을 내뿜고 있는 늦가을 하늘자락을 바라다보자.

진군의 나팔소리와 남아다운 의지, 오직 하나만의 태양을 독점하려는 불꽃 튀기는 전쟁이 거기에 있고, 오상고절(傲霜孤節)이 아닌 선두주자(先頭走者)의 찬란한 승리가 거기 깃발처럼 펄럭이지 않는가.

해바라기, 둘도 없는 내 마음의 꽃이다. 그러기에 추운 겨울밤이 되어도 끝내 그는 정겨운 마음의 벗으로 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두고 온 고향집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 눈 비비고 일어나 책상 위에 꽂아놓은 탐스러운 꽃판을 바라다본다. 명년 봄을 마련하여 늦가을에 꺾어다가 씨앗을 털지도 않은 채 고이 모셔놓은, 잠자는 보름달이다.

그렇다. 보름달을 꼭 닮은 그 둥글넓적한 꽃판이야 말로 내가 자란 내 고향의 정든 밤하늘이요, 질서도 정연하게 박혀 있는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씨앗들은 순(順)이, 남(男)이 손잡고 세어 보던 그 밤하늘의 잔 별이 아니겠는가.

어느새 인삼골 여선생과 나 사이엔 딸들이 주렁주렁… 먼 훗날 그것들이 시집을 갈 때 내 무슨 재산이 넉넉하여 지참금을 따로따로 주겠는가. 앞으로 해바라기나 열심히 심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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